'고담대구'라는 신조어가 지난해부터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인터넷 동호회 디시인사이드 사건사고 갤러리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영화 배트맨 시리즈 주인공이 살고 있는 가상의 도시 '고담시티'와 대구시를 합친 단어다. 대형사고가 잦은 대구시가 음울한 ‘고담시티’와 비슷하다는 뜻으로, 대구시를 폄훼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지역성에 풍수지리학까지 보태 대구시가 '고담대구'일 수밖에 없는 기사는 인터넷에 떠돌아도 정작 이 도시의 중요한 문제를 조명한 기사는 쉽게 유통되지 않는다. 인터넷 특유의 선정·엽기적인 단발성 기사만 손에 잡히지 지역신문들이 연일 보도한 '고법상고부'나 '대수도론'은 이른바 중앙언론이 보도해야 파장이 나타난다. 지난 2003년 여름 방폐장 논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뉴스의 전국단위 유통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림=이용호 화백  
 
▷"지역은 제3세계인가"=문종대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서울에서 유통되는 지역뉴스는 마치 제1세계가 제3세계를 다루는 수준"이라며 "태풍이나 사건사고만 보도될 뿐 지역의 절실한 의제는 온데간데 없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중앙지'도 주목표 시장이 서울이기에 지역의 이해를 반영하지 않는다. 부산에 '6억 이상 아파트'가 몇 채나 되겠나. 청계천이나 기부금 입학이 지역에서 무슨 소용인가"라며 "정책결정에 중요한 여론을 '중앙언론'이 좌우하는 상황에서 지역여론은 과소 반영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왜곡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지역이 '중앙언론'에 대한 기대를 접더라도 전국적 뉴스유통 공간에서의 직접적인 소통도 쉽지 않다. 인터넷 포털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네이버와 직접 계약을 맺은 지역신문은 현재 강원일보·대전일보·매일신문·부산일보·제주일보 5개 사에 불과하다. 다음은 한 곳도 없다.

   
   
 
지역신문 기사는 주로 CBS 노컷뉴스와 국민일보 쿠키뉴스를 거쳐 유통된다. 노컷뉴스는 국제신문 경인일보 등 24개 사, 쿠키뉴스는 영남일보 전북일보 등 10개 사와 콘텐츠 제휴 중이다. 인천일보 등은 포털 직접계약도 노컷뉴스·쿠키뉴스 제휴도 하지 않고 있다(표 참조). 이런 직·간접적인 콘텐츠 유통에서 얼마간의 금액을 받는 곳은 부산일보 정도다.

부산일보 최낙상 미디어부장은 "지역신문의 기사가 제 값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을 떠나 아예 받아주는 데가 없다"며 "지역일간지가 있음에도 지역뉴스를 지역의 뉴스생산자가 아닌 다른 곳이 공급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최 부장은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시장도 없다"며 "포털 뉴스 홈에 들어가 보면 부산일보가 1면 톱으로 설정한 의제가 지방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사고로만 분류돼 있다"고 지적했다.

제휴사를 통해 포털에 기사를 보내고 있는 한 지역신문 경영기획실장은 "지역의제를 중앙으로 끌어올리자는 것과 '중앙지'가 베껴 쓰는 게 많으니 우리 크레디트 기사를 유통시키자는 생각에 시작했다"며 "포털에 우리 기사가 노출되니 기자들이 힘도 내고 여러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마이너신문의 몸부림은 거기까지였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결국 아쉬운 건 우리였다. 특정 포털과 직접 계약을 추진했지만 '공짜로 줘도 더 이상은 못 받는다'며 거절당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기자들이 힘을 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제 값을 못 받는 것 외에 다른 문제도 하나 둘 생겼다. 그는 "어느 순간부턴가 기자들이 제목을 '섹시'하게 뽑는 등 포털에 노출되기 위한 선정성 경쟁을 하고 있었다. 도내 일에 불과한 사건을 마치 전국뉴스인 것 마냥 꾸미는 모습도 더러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왜 전국 유통을 꾀하나=최근 경인일보가 '수해골프' 특종을 터뜨리자 인천일보의 한 기자는 개인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경인일보의 특종은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사건이다.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경인의 기사는 수백만의 눈을 집중하게 만들었다…'만약 인천일보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체라곤 지면과 자체 홈페이지가 전부인 인천일보에서 똑같은 기사를 실었다면 지금과 같은 파급력을 가졌을까. 통신사나 다른 언론매체에서 기사를 받았다면 시간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파장은 대동소이했을 터이다. 그러나 인천일보의 이름은? 인천일보와 인천일보 기자의 바이라인이 들어간 기사를 네티즌이 볼 수 있었을까?"

이 기자의 토로야말로 지역신문들이 줄기차게 자사 콘텐츠의 전국유통 또는 서울진출에 골몰하는 이유 중 하나다. 다른 언론사, 특히 유통에 한계가 있는 지역신문의 기자들이 공들여 취재한 기사가 순식간에 출처 없는 '보도자료'로 둔갑해 버리는 언론계 내부의 관행 때문이다.

신문·방송이 관성적으로 범하는 이 같은 '고질병'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연합뉴스마저도 이 문제를 시인한 바 있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를 따라갈 때는 늘 '아무개 신문이, 아무개 방송이…라고 보도했다'는 식으로 정직하게 출처를 밝히라고 당부하건만 무슨 오기인지 잘 지켜지지 않는다."(이문호 전 연합뉴스 상무 <뉴스에이전시란 무엇인가> 발췌)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2000년 자사 발행부수의 10%도 안 되는 한 지역신문의 기사를 베낀 기자를 해고하고 편집국장을 문책한 뒤 지면에 이 사실을 알린 적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국단위 일간지끼리 또는 통신사의 기사를 표절한 일만 간혹 문제가 됐을 뿐이다.

지역신문들의 2003년 기준 총 매출액이 전국단위 일간지 총 매출액의 14.7%에 불과한 상황에서 지역신문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서야 했던 절박함 뒤엔 관행에 맞서야 하는 자존심 문제도 있었던 것이다. 지역신문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포털공간에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 값도 못 받고 콘텐츠를 퍼줄 수밖에 없던 것과 지역의제가 가치에 맞게 전달되지 않는 데 대한 대책을 모색 중이다.

▷"뭉쳐야 산다"…일본 사례 주목=이들은 먼저 '디지털뉴스 아카이브 사업’'(일명 아쿠아 프로젝트)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쿠아 프로젝트 참여신문사가 가입한 뉴스저작권자협회의 뉴스 판매를 한국언론재단이 대행하면 뉴스이용을 원하는 기업과 공공기관은 이 상품을 사야 한다. 하지만 새지역신문연대조직(준)은 이 수준을 넘어 지역신문만의 포털사이트 설립을 꾀하고 있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사를 중심으로 12개 지역신문이 모인 새 지역신문 연대조직(준)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지역신문 멀티미디어·네트워크 협의회(MMN)'다. MMN은 지난 96년 9월 일본 각지의 18개 지역신문이 모여 설립한 단체로, 2001년에는 회원사가 39개로 불어났다. 이들은 협회 홈페이지를 새 단장한 '오늘의 일본'(www.todays.jp)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향후 이 사이트를 지역신문 콘텐츠를 모은 전국 뉴스포털로 바꿀 계획이다.

결국 관건은 '연대'에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올해 2월 새전북신문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서울 중심적 소통구조는 국가적 재앙"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시대착오적인 것 같지만 적어도 지방신문에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제1의 생존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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