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법정기념일이 된 5·18을 맞으면서 새삼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보게 되는 것은 바로
언론 때문이다. 80년 신군부의 광주 학살 17년만에 역사는 결코 학살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언론은 역사가 드러내주는 이같은 사실확인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그 어떤 교훈도
배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과오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지난 4월 대법원이 12·12및 5·18사건에 대해 군사반란및 내란죄를 적용,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총칼로 정권을 찬탈했던 신군부세력을 준엄하게 단죄하자
이를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했었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굴절되고 왜곡된 역사에 대해 분명한 청산과정이 없이 넘어가기만 했던
우리삶의 어두운 부분 하나가 이번에 정식으로 청산됐다고 의미지웠다. 또다른 신문은 짓밟히고
넘어진 정의를 이 땅에 새롭게 일으켜 세우려는 작업이자 앞으로 다시는 힘이 법을 유린하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엄한 교훈을 얻자는 국민적 합의를 실천한 것이라며 정의의
실현을 강조했다.

이런 언론들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과오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그 어느 언론 하나 80년 5월
당시 광주의 시민들을 폭도로, 무장난동자들로 매도한 것을 국민앞에 제대로 고백하고
사과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언론의 역할을 포기한채 신군부의 폭압적인 정권찬탈을
미화하고 그들의 집권에 길잡이 노릇을 한데 대해서도 단한마디 공개 사죄하거나 책임을
진적이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신군부의 위세에 마지못해 짤랐다는 해직언론인들의 복직등 원상회복마저
외면하고 있는 처사이다. 상당수 해직언론인을 복직시킨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들 또한
안팎으로 불이익과 차별대우에 시달리고 있다.

진정으로 과거 잘못을 참회하고 역사와 국민앞에 죄과를 씻는 참회의 자세로서가 아니라
마지못한 흉내내기이다. 그런 언론이 굴절되고 왜곡된 과거사의 청산을 말하고 짓밟힌 정의의
곧추섬을 강조한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같은 위선의 탈이 더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우리 언론은 깨달아야 한다. 어떤 위장으로도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희는 바람 풍하라는
권위주의적 문법은 더이상 이 시대의 문법이 아니다.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는 일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더더욱 어림없는 일이다. 언론의 과거사 청산은 언론사주나 과거 5,6공 언론계
인사들의 책무만은 아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언론인들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왜냐하면
오늘의 언론은 바로 80년 5월의 그 굴욕스런 언론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자유언론수호투쟁을 배반하고 짓밟고 선 언론 사주와 경영진들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그런 언론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사회적 공신력이나 품위는 제쳐둔채 상업주의적 경쟁으로만 치닫는 한국의 언론풍토
또한 언론의 굴절되고 왜곡된 과거사에 잇닿아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공신력이나 언론인으로서의 명예와 도덕성, 신망을 저당잡힌 언론과 언론인이
줄달음칠 곳은 시장논리로 포장한 천박한 생존경쟁 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깨어있는 사회의 양심으로서 언론인보다 세련된 언론기능인을 선호하는 풍토 역시 이런 점에서
다시한번 점검해보고 경계할 일이다. 자본의 논리와 현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영역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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