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9백억 정국 초긴장’ ‘야, 김대통령 해명 촉구’(1면), ‘당황한 검찰 서둘러 불끄기’(2면), ‘공세 가속 망연 자실,벌집 쑤신 정치권’(3면), ‘애타는 청와대 비상구 찾아라’(4면), ‘재계 또 비자금 사건 휘말리나’(5면)

지난 5월 10일자 조선일보 지면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격이었다. 전날 자신들이 단독 보도한 ‘한보의 9백억원 대선 자금 제공’ 의혹을 모두 5개면에 걸쳐 집중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이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데 비해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전날 청와대와 검찰이 일제히 조선일보 보도를 ‘고도의 정치파탄 전략’으로 몰아붙인데 대한 정면 공세였다. 그러나 11일을 고비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는 한결 누그러졌다. 일반 해설기사에서 간혹 이 문제를 언급했을 뿐 눈에 띄는 후속보도는 없었다. 12일 이상철 정치부장이 칼럼을 통해 ‘음모론’을 정면 공박한 정도가 두드러졌다.

이 부장은 이 칼럼에서 “음모라는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선 ‘9백억원을 받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답변이 선행되어야 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대선 자금 의혹을 밝히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돌연한 자세 전환은 무엇보다 청와대를 포함한 민주계 등 일군의 정치세력과 첨예한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데다 대선자금 보도를 둘러싼 정치권의 다양한 이해 관계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듯 하다. 정치권 일각에서 터져 나오는 “언론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국가를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비판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한편 지난 16일 열린 언론중재회의에서 한보 김종국 전 재정본부장으로부터 9백억원을 전달받은 장본인으로 적시된 서석재 의원측과 조선일보는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 등에 대해 이견을 보여 중재는 결렬됐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자칫 법정으로 비화할 공산도 적지 않다. 조선일보측은 대선 자금 보도내용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물증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서의원측은 “한보로부터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어 이 문제는 장기화될 태세다.

결국 조선일보의 김영삼 진영의 한보 자금 수수보도는 일단 휴화산으로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현재 보여준 보도태도는 매끄럽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메카톤급 폭탄을 던져놓고 갑자기 ‘침묵’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도 그렇고 공공연히 음모설이 제기되는 마당에 취재 경위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부족했던 점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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