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도탄에 빠져도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풍악을 즐겼던 탐관오리들.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강제징수하여 중앙고위층에는 상납하고 자신은 치부하여 곳간마다 뇌물과 온갖 패물, 양식을 그득하게 채우고 향락을 즐긴 탐관오리들은 결국 나라를 말아먹은 주범들이었다.

조선말 고부군수 조병갑은 부정, 부패 관리의 대표적 인물로 온갖 악행, 악정(惡政)으로 굶주린 주민들을 쥐어뜯었다. 불효를 포함한 희한한 죄명을 만들어 보석금을 내게 하고 대동미를 쌀 대신에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저질의 쌀을 사서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은 횡령, 착복했다. 이는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들의 반란을 초래했고 고부지역에서 시작된 농민반란은 전라도 전역으로 삽시간에 확대됐다.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도탄에 빠진 민생은 외면한 채 세도정치, 패권다툼에만 정신이 팔린 국정책임자들의 부패와 무능은 조선을 파멸로 몰아갔다. 어찌 일개 탐관오리 조병갑만의 잘못이겠는가. 일본 침략이전에 조선은 내부로부터 조병갑류의 탐관오리들의 발호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합작으로 스스로 무너진 셈이다.

작자미상의 소설 춘향전에 나오는 탐관오리의 잔치상을 읊은 대목은 현대판 탐관오리유형을 접하면서 다시 생각나게 한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백성의 고혈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 수해재난과 복구가 한창일 때 노래방에서 노래소리 높이는 관리, 정치인들이 현대판 탐관오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해로 전답을 잃고 집마저 사라져 실의에 잠겨있는데 '나이스 샷'을 외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이 하나같이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 관리, 정치인들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아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야당만의 행패는 아니리라 본다. 이미 수해, 산불 등의 재난에서도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국무총리였던 이해찬씨도 골프에 빠져 있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만한 야당이 되는 데는 반드시 이에 동조하는 무능한 여당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법이다.

먼저 현대판 탐관오리 유형1은 '음주가무형'이다. 주민과 집이 떠내려가도, 복구가 시작되어도 사고현장보다는 폭탄주와 노래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시장, 군수들. 2차까지 가서 노래 몇곡만 불렀다는 단양군수가 이에 대해 해명이 있기를 기대한다.

현대판 탐관오리 유형2는 '골프탐닉형'이다. 큰비가 오나 산불이 확산되더라도 골프는 반드시 쳐야하는 국무총리,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과 간부들. 이런 정치인들의 골프행사에는 예외없이 기업가들이 동반되고 경비부담은 이들의 몫이다. 정치권과 기업 사이에 특혜와 이권을 주고 받기 때문에 한국의 정경유착은 고질적, 구조적 부패 유형이 됐다. 수해피해 지역인 강원도 정선군 강원랜드 골프장에서 경기도내 사업가들과 2개 팀으로 나눠 1박2일로 골프를 해서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한나라당에서 징계 이후의 대책을 내놓기를 고대한다.

   
  ▲ 경인일보 7월21일자 1면  
 

현대판 탐관오리 유형3은 '주민외면형'. 주민이 무슨 일을 당하든 시민단체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외유를 감행하고 휴가를 떠나는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기초의원들. 충북 제천시장은 주민과 공무원들이 수해복구에 한창이던 7월 19일부터 3일간 휴가를 떠났다고 언론은 전했다. 이 사실이 알려져 빈축을 사자 시장은 21일 휴가를 중단하고 복귀했다고 한다. 향후 제천시 행정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지역주민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판 탐관오리 유형4는 '권력거래형'. 법조 브로커, 변호사, 기업 등으로부터 금품, 향응, 고가의 선물 등을 '대가성이 없다' '떡값' 등의 명목으로 예사로 챙기는 일부 검사, 판사 영감님들, 국회의원들, 고위 공직자들. 그 직위, 그 직업 때문에 쏟아지는 향응접대, 뇌물을 대신하여 권력행사를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 권력행사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단돈 10만원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이 세상이치다. 권력거래형 탐관오리는 국가전체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사회적으로 일상의 불법, 부정을 합리화,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사자만 옷벗고 나가면 끝이 아니다. 사회에 끼치는 폐악은 국가경쟁력 저하, 민생 피폐화로 이어진다.

평소에는 모든 공직자, 정치인들이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재난이나 위기상황, 향응접대 자리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면밀히 살피면 그 진면목을 간파할 수 있다. 탐관오리가 어찌 부정, 부패만 일삼는 관리로 그 개념을 한정시킬 수 있는가.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자신의 책무를 배반하여 국민의 시름과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폭탄주와 향응접대에 헤어나지 못하는 관리들이야말로 현대판 탐관오리라고 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또 다시 대통령의 '8.15 사면' 운운 소리가 나오니 앞으로도 탐관오리의 행렬은 끝이 없을 것이고 그 최대 피해자는 없는 자들, 가지지 못한 주민들이 될 것이다.

지역의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감시, 견제 역할을 훌륭하게하는 지방신문, 경인일보에 박수를 보낸다. '특종의 신문' 경인일보의 충실한 지역파수꾼 역할은 모든 지방, 지역신문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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