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556호(2006년 7월 19일자) 오피니언 면에 실린 박영희 한국케이블기술인연합회장의 '자유발언대: 누구를 위한 지상파다채널 방송인가' 기고문과 관련해 KBS 정책기획센터에서 반론글을 보내왔다. 미디어오늘은 난시청 해소를 위한 각 단체들의 주장과 제언을 적극 반영해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 / 편집자

먼저 'MMS'(Multi Mode Service : 디지털TV 다중모드 방송)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과 우려를 더해주신 한국케이블기술인연합회 박영희 회장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MMS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고, 이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도 또한 무척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문제를 지적하고 논의하는 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시청자들 스스로 MMS에 대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정보가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상파 다채널 방송' 용어 사용 과연 맞나

   
  ▲ 지상파DTV를 통한 MMS 시연장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 회장께서 제목으로 달아놓으신 '지상파 다채널 방송'이란 말부터 MMS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상파 다채널 방송'이란 말은 개념적으로 조합되기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전파자원을 가지고 온전히 채널 하나를 방송용으로 할당해야 하는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으로는 애초에 다채널 구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약 이 표현을 고집하고 싶으시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다중채널 운용이 가능해 진) '디지털 지상파 다채널 방송'이란 말로 바꿔 써야 한다. 하지만 이 표현에도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맥락이 빠져있다.

'다채널 방송'은 원래 '희소한 전파'가 아닌 추가적으로 무수한 채널 할당이 가능한 위성과 케이블 전송기술의 발전에 의해 보편화된 방송양식이다. 이러한 다채널 방송서비스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방송채널과 프로그램을 선택,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시켜 준 반면 시청자들은 다채널 방송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추가로 시청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위성과 케이블을 통한 다채널 방송서비스는 '유료가입자 기반'의 서비스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유료방송사업자들이 보다 많은 유료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말초적이고 퇴폐적인 프로그램들을 편성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국의 값싼 프로그램들을 무분별하게 방영하는 사례들도 보아 왔다.

지상파방송사들이 디지털 전환과 압축 전송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다중모드 방송 서비스, 즉 MMS를 추진한 데는 바로 이런 유료 다채널 방송시장에 대해, 무료의 보다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방송서비스의 확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박 회장의 '지상파 다채널 방송'이라는 용어사용은 정정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박 회장께서는 영국의 ITV의 실패사례를 "디지털 방송의 수신상태 불량"이었다고 지적하셨는데, 이는 견강부회(牽强附會) 정도가 아니라 사실의 심각한 왜곡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민간 상업방송인 ITV가 영국 최초로 실시한 디지털 방송 '온-디지털(on-digital)'이 파산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조기에 유료가입자(영국의 경우 디지털 지상파 방송의 유료채널사업이 허가되어 있음)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가의 각종 스포츠 중계권을 무분별하게 구입하다 재정적인 압박을 못 이긴 때문이었다.

영국은 이러한 정책적 실패를 바탕으로 공영방송 BBC로 하여금 무료 디지털 지상파 채널연합 '프리뷰(freeview)'를 출범시켜 성공적으로 영국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앞으로 박 회장께서는 사례인용을 하려면 제대로 해주시길 바란다.

'견강부회' MMS 시험방송 화질 논란

다음으로 지난 2006월드컵 기간 동안 MMS 시험방송의 화질 논란에 대해서도 몇가지 잘못 지적된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정을 요구한다.

우선 전송방식(1080i와 720p)을 고려하지 않은 압축 전송률 논란은 이미 여러 분들이 논란 자체가 의미없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며, 지난 6월29일 방송협회 주최로 열린 MMS 시연회에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화질테스트를 실시해 MMS와 일반HD 영상의 화질 차이를 느낀 것으로 답한 응답자(전체 응답자의 37%)들의 52%가 실제 화질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전송방식에 따른 화질차이는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 느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기도 하였다. 이 실험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동적인 영상에서는 720p의 전송 방식으로 방송하는 MMS의 화질의 더 우수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따라서 지난 월드컵 기간 동안 불거졌던 시험방송의 화질 논란은 압축 전송률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ATSC방식의 디지털방송의 표준을 둘러싼 지상파방송사와 가전사들의 협력체계 구축의 실패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사전에 가전사와 충분한 협의와 준비를 하지 못한 지상파방송사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KBS를 중심으로 지상파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MMS라는 새로운 방송기술을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목적으로 개발 구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시험방송 허가를 둘러싼 오랜 논란이 이러한 시행착오의 원인이 되었던 점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난시청 해소와 관련하여 박 회장의 지적은 상당히 복잡하고 긴 역사적 과정을 짚어보아야만 논리적 연관관계를 보다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물론 결론적으로 박 회장의 논리에 대해서 동의하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복잡하고 길지만 다시 그 과정에 대한 약사를 살펴 보고자 한다.
 
난시청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파가 도달하지 않는 산간벽지나 도서 등 오지의 절대 난시청 지역과, 전파는 도달되나 고층빌딩이나 아파트 등 인공의 건물 등에 의해 발생하는 인위적 난시청이 그것이다.

보편적 서비스로서 지상파방송은 난시청 해소에 노력할 책임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난시청 해소 노력은 KBS가 담당해오고 있다.

그런데 절대적 난시청 지역은 전파의 특성상 어떻게 송중계시설을 설치한다고 해도 완전히 해소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또한 이들 난시청 지역의 수신률 1%를 올리기 위한 비용은 비 난시청 지역 수신률 10%를 감당하는 비용에 맞먹기도 한다는 점에서 지상파만을 활용한 절대적 난시청 해소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KBS는 지난 1975년부터 2002년까지 송중계시설 구축 및 망시설 확장을 위해 1076개 사업에 1579억원을 쏟아부어야 했으며, 더불어 2000년부터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망시설 투자를 위해 매년 1000억원 정도를 투자해왔다.

현재 KBS가 파악한 절대적 난시청 지역은 전체 전파 커버리지의 4% 미만이며 가구수로는 69만 세대 정도이다. 보편적 방송서비스의 공급을 위해 KBS는 이들 절대 난시청 가구의 수신료를 면제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KBS는 이들 난시청 세대에 위성수신 시설을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하여 설치하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난시청의 문제는 인위적 난시청인데, 여기에는 KBS의 책임, 정부의 무관심, 정부 방송정책의 난맥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한 첫 번째 실마리는 인위적 난시청의 법적인 책임관계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의 집앞에 고층건물이 들어서서 TV시청에 장애가 생기게 되면, A씨는 번거롭기는 하지만, 고층건물의 주인에게 원활한 TV시청을 위한 안테나 시설을 요구할 수 있고 고층건물의 주인은 이 민원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A씨의 집 근처에 TV수신을 방해하는 건물들이 여러 개가 되면 A씨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이 모호해진다. 실제 어떤 건물이 직접적인 난시청을 발생시켰는가 하는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이러한 일은 컬러TV가 급격히 보급되고 건축붐 또한 한창이던 80년대에 아주 일반화된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공시청 안테나 등을 활용한 중계유선방송(RO: Relay Operater)사업이 급성장하고 정부와 난시청 해소의 책임을 맡고 있던 KBS는 이러한 중계유선방송사업자들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군부독재시절 KBS의 수신료 징수율을 고려하면, 난시청 지역의 송중계소 설치비용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도 비록 시청자들이 추가적인 난시청 비용을 부담하였지만, 추가적인 정부예산의 지출없이 난시청 민원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계유선방송사업의 활성화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1992년 종합유선방송이 본격 도입되면서 중계유선방송사업은 자연히 케이블방송에 흡수될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TV시청을 위해 이중부담을 해야했던 시청자들이며, 수익을 위해 케이블망을 깔았던 중계유선사업자나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이 아니다.

KBS 난시청 해소 노력 폄훼 말아야

게다가 이제는 법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해져 버린 인위적 난시청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지상파방송사들은 1998년 이후 현재까지 거의 30% 이상의 시청점유율 하락을 경험해야 했고, 상대적으로 케이블방송은 지상파방송의 무료재전송을 바탕으로 매년 30∼40%의 성장세를 보여왔다.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과 MMS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그동안 지상파방송사들이 무료보편적서비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잃어버린 시청 선택권을 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디지털 지상파 방송의 경우 현재 아날로그의 인위적 난시청 지역에서 실내수신안테나만으로도 80% 가까운 높은 수신률을 보이는 전파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반 하에서 수행되는 MMS는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지상파의 우수한 무료보편적 서비스 방송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디지털 무료채널연합인 '프리뷰'를 통해 무료로 30여개의 SD급 채널이 제공되고 있으며, 유료방송 중심의 미국조차 디지털 지상파 방송의 다중방송 서비스를  기존 방송사업자에게 자율적으로 허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지상파의 다중방송사항이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박 회장의 논리는 백번 양보해도 케이블방송의 이해를 위해 전체 방송발전을 가로막겠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최용수·KBS 정책기획센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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