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정태수총회장이 지난 92년 대선때 민자당 김영삼후보측에 6백억원이상 1천억원 미만을 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사실이 있다고 지난 8일 동아일보가 단독보도한 후 정국이 대선자금문제로 또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야당은 곧바로 한보사건의 ‘몸통’이 김대통령의 대선자금임이 드러났다며 강도높은 정치공세를 폈다. 그러나 청와대와 검찰은 기사내용을 정면으로 부인하지 못한채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였다.
한보사건 재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심재륜 대검중수부장이 “나는 (한보사건 1차수사) 당시 중수부장이 아니어서 잘모르겠다. (1차수사팀에서)전해들은 바도 없다”고 해명한 것이 검찰의 유일한 공식반응이었다.

한보사건 재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심재륜 대검중수부장이 “나는 (한보사건 1차수사) 당시 중수부장이 아니어서 잘모르겠다. (1차수사팀에서)전해들은 바도 없다”고 해명한 것이 검찰의 유일한 공식반응이었다.

이어 조선일보가 지난 9일 한보그룹 김종국 전재정본부장이 신한국당 서석재의원에게 지난 92년 네차례에 걸쳐 대선자금으로 9백억원을 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자는 한보의 대선자금 제공기사를 쓰면서 검찰이 기사내용을 쉽게 확인해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보의 대선자금제공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대통령이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고 자칫 하야로 이어질 수 있는 핵폭탄과 같은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노태우전대통령이 지난 91년 수서특혜분양사건과 관련해 한보 정총회장에게서 1백억원을 받았으나 지난 95년 노전대통령 비자금 사건때 사실로 드러났듯이 차기정권에서나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확인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지난 9일 1면 머리기사로 한보의 대선자금 9백억 제공기사를 내보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비록 동아일보가 먼저 1보를 띄웠으나 조선일보가 이를 더 확인취재해 구체적인 내용을 기사화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사명 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한편으로 국민적 관심사인 한보의 대선자금제공을 밝히는 물꼬를 텄다는 자부심때문에 잠시 흥분하기도 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권은 조선일보 기사가 나가자 일부내용을 문제삼아 ‘시비’를 걸고 나섰다. 서의원은 자신이 김종국씨에게서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했고 청와대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강력대응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권의 이같은 대응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필자는 한보사건 1차수사가 끝난뒤 검찰 고위간부에게서 ‘정총회장이 검찰에서 김대통령측에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특종’의 희열을 느끼면서도 고민에 빠져야했다. 한보사건 1차수사가 미진해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한보의 대선자금 제공사실을 보도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한보사건 재수사 진행도중 ‘한보가 남긴 것’이란 시리즈를 통해 김대통령의 대선자금 실상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자연히 김대통령이 스스로 대선자금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서는 한보의 대선자금을 기사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진실을 계속 묻어놓을 수 없다는 심적인 부담도 작용했다.

김대통령은 한보의 대선자금 제공사실을 보도한 언론을 원망하기에 앞서 자신이 정말 한보에서 대선자금을 받았는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서의원이 김종국씨를 통해 대선자금을 받았는지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대통령은 자신이 한보에서 대선자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면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를 보도한 언론과 야당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을 영원히 은폐할 수 없다. 검찰내부에서 한보의 대선자금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은 진실이 곧 햇빛을 보게 되는 서곡(序曲)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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