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더 이상 작품의 흐릿한 배경이나 주인공의 절박한 상황설정 정도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본격적인 내용으로 다뤄져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시민군 윤상원’에 이어 지난 16일 저녁 7시5분부터 80분간 광주지역에서 방송된 윤한봉의 밀항기를 다룬 ‘5·18 밀항탈출’을 제작한 광주MBC 오창규 PD(41)의 작업과정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PD는 82년 광주MBC 라디오 PD로 입사해 오랫동안 ‘정오의 희망곡’ MC를 맡다가 87년 TV로 옮겼다.

―다큐드라마 ‘밀항탈출’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지명수배자가 돼보지 않고는 모르는 아픔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문도 그렇다. 나 역시 당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른다. 본대로 들은대로 근거리에서 지명수배자의 처지와 고통을 담아보고 싶었다. 윤한봉은 5·17 예비검속을 피해 광주를 빠져나간후 포위돼 광주로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당시 5·18이 그렇게 확대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동지들과 함께 죽음으로 싸우지도 못하고 평생 ‘5월 27일 당신은 어디에 있었소?’라는 가슴을 치는 물음을 타인에게서 자신에게서 들어야 하는 지명수배자의 입장.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려야 했던 살아남은 자들, 윤한봉을 통해서 자책감과 자괴감을 갖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담고 싶었다.”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어떠했나.

“방송예보가 나가자 ‘왜 하필이면 비겁한 도망자를 5월의 주인공인 것처럼 다루느냐’는 항의전화가 있었다. 이런 시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윤한봉이 스스로를 비겁자요, 도망자라고 고백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망월동에 묻힌 사람들에게 하는 독백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다른 어떤 살아있는 사람에게 비겁자니 넌 그때 어디있었느니 추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윤한봉은 미국으로 건너가 예리한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광주와 5·18을 위해 무섭게 싸워왔다.

난 그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운동가라고 본다. 그런 그에게 도망자니 비겁자니 하는 사람은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잘못된 판단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실존인물의 경우 특히 개인을 미화시키면 시킬수록 재미를 떨어뜨리게 된다. 미화시키지 않고 사실대로 보여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줘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다. 내용에서 어느것 하나 시청자의 재미를 위해 덧붙이거나 왜곡시킨 것은 없다는 점만 밝혀두고 싶다. 다만 화면구성을 위해 밀항하면서 사용했던 화장실에 욕조를 설치했는데 이것 때문에 윤한봉씨가 사실과 다르다며 굉장히 화를 냈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시민군 윤상원’을 제작했다. 5·18을 주제로 꾸준히 작품화해나가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다 학생들에게 5·18을 가르쳐줄 텍스트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자라나는 광주 2세대들은 모래시계를 잘 보다가도 5·18 관련 내용이 나오면 TV를 꺼버리는 등 극단적인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5·18 정신이 제대로 교육되지도 계승되지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후세들에게 역사를 이해시키고 교육시키는 소재를 난 이야기라고 본다.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진상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공연과 대중매체, 보여주기 작업이 많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벌써 17년이나 흘렀다. 현장을 보았거나 같이 싸웠던 증인들이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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