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1년 민자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을 취재중이던 한 신문사 정치부 기자는 청와대에 근무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은밀한 충고를 받았다. 정보기관이 올린 보고서에 당신이 특정 정치인의 계보기자로 분류돼 있으니 처신을 조심하라는 당부였다. 이 정보를 전해준 인사는 다른 진영의 인물. 말 하자면 “당신은 우리 편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흔들리냐”는 간접적인 의사를 전달한 셈이다.

선거때마다 정치권은 기자들에 대한 편가르기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대접이 달라진다. 물론 기자들의 처신도 변화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언론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이러한 핵분열 현상이 가속화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은 동료기자들부터 ‘정치 참모’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계보기자. 일본 언론의 전유물이었던 이 용어가 이제는 한국의 정치부 기자들에게도 결코 낮설지 않다. 특히 여야 모두 대통령 선거 본선에 앞서 당내 예비선거를 거쳐 후보를 확정하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 기자의 91년 민자당 경선 취재 회고담이다. “솔직히 동료기자들과 술자리에 가기가 겁날 지경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인 관점을 달리하는 동료기자들과 숱한 언쟁을 벌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3당 합당으로 민자당에 합류한 이후 김영삼, 김종필, 박태준, 이종찬계 기자 명단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다.”

당시 이종찬 의원이 경선 직전 민자당을 탈당한 것도 소위 ‘00고 언론인 사단’의 충고가 절대적으로 반영됐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한 술자리에선 석간지 기자가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선창하며 축배를 제의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지금처럼 ‘쓸것’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인 60~70년대 정치부 기자들은 ‘준 정치인’ 활동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정치부 구성원들 가운데 정치적 야심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많았고 정치권력 교체기마다 법조계, 학계와 더불어 정치권 수혈의 한 축을 담당했다.

“우리편인데 왜 그러냐?”

그러다가 5공이후 이같은 전통은 ‘정치지향적 언론인’과 그렇지 않은 기자들로 양분화됐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언론인은 있었지만 대통령의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제가 기승을 부렸던 만큼 계보로 나눌만한 분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91년 민자당 경선은 시사적이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가 사전에 당내 경선을 거친다는 새로운 정치적 경험은 정치부 기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최근의 여권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일종의 ‘여론전’ 형태로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각 대선 예비주자들도 과거 어느때보다 언론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기자들에 대한 관리에 강한 집착증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초 최형우 고문은 각 언론사 기자들을 개별적으로 연락해 집으로 초대했다. 당시 최 고문의 초대로 자택을 방문했던 한 기자는 “한번에 4-5명씩 모두 15명 정도가 집으로 초청된 것으로 안다. 저 사람이 정말로 속 깊은 얘기까지 털어 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올때는 용돈까지 받고 왔다”고 말했다. 비단 최 고문 뿐만이 아니다. 공식적인 기자 접촉외에 비공개적인 기자 관리는 각 대선 예비주자 진영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기자 관리는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한때 대선주자중의 한명인 신한국당 A의원을 담당했던 한 기자는 정치부를 떠난 이후에 ‘특이한’ 경험을 했다. 부인의 생일날 대형 케이크가 배달되는가하면 휴가철때마다 휴가비용에 보태쓰라며 봉투가 건네져 왔다. 이 기자는 “솔직히 기억해줘서 고맙더라. 다시 정치부로 돌아간다면 그 의원에 대해 과연 얼마나 냉정하게 기사를 쓸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고백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거물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만이라도 속깊은 얘기를 나눌 취재원을 두고 있다면 취재의 절반은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정치권의 핵심에 위치한 인사를 취재원으로 두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정치부에 막 배속받은 기자들은 기존의 두터운 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정치인들도 ‘질투심’을 유발 하는 수준에서 차별 대우를 한다. 기사를 둘러싼 줄타기와 곡예가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편한 선택은 특정 정치 진영에 ‘투항’하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간의 유대를 둘러싸고 단순 비판만 퍼붓는 것에 대한 정치권의 항변도 없지 않다.

91년 당시 이종찬 전 의원 참모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솔직히 일부 기자들은 거의 우리 사무실로 출근했고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이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적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다. 이런 인간적 정리까지 비난한다면 언론계가 수녀원이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권력재편때마다 언론인 등용

계보기자는 결국 한국적 취재시스템의 부산물이다. 그 해악적 기능에 대해선 부정하고 있지만 현실적 필요성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특히 정치 상황이 정책이나 이념에 따라 좌우되기 보단 인물 중심의 보스정치가 뿌리깊은 상황에서 거물 정치인들과의 유대는 취재 활동의 필수적인 요인이다.

다만 이러한 유대 관계가 유착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할 때 부작용이 발생한다. 기자 개인적으로도 한번 누구누구 사람으로 낙인찍힐 경우 불이익이 적지 않다. 다른 진영의 홀대도 심하고 사내에서도 정치권 동향에 따라 위상이 오락가락할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취재를 내세워 수집한 정보를 자신과 친밀한 정치인에게 흘리고 더 나아가 ‘정치적 참모’를 자임하거나 권력의 반대편 보단 ‘권력 이동’의 물살에 합류하고자 애쓰는 언론인이 있는한 ‘계보기자’라는 불명예는 언론계 안팎을 계속 떠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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