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뉴욕에서 출생해 1940년 당시 워싱턴 포스트를 맡고 있던 필립 그래험과 결혼했다.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1938년부터 2년간 샌프란시스코 뉴스지의 다양한 부서에서 기자로 일했다. 1939년 워싱턴 포스트로 옮겨 1945년까지 일했다. 1963년 남편 필립 그래험이 죽은 후 워싱턴 포스트 그룹(위싱턴 포스트, 뉴스위크, 3개의 TV방송국, 50여개의 케이블 TV 등 소유)의 사장에 취임 1973년까지 재임했다.

1973년부터 1991년까지 회장겸 대표이사를 맡아 워싱턴 포스트를 뉴욕 타임즈와 함께 1류 신문의 반열에 올려 놓은 후 회장자리를 아들인 도널드 그래험에게 물려주고 경영위원회 회장자리로 물러 앉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1950년대까지만해도 부수에서 워싱턴 소재 신문 4개중 3위에 그쳤다. 미국 전체 언론에서도 차지하는 위상이 2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캐서린 그래험여사가 회장에 취임한 이후 언론의 진실 보도라는 원칙에 충실, 일약 뉴욕 타임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의 일류 신문으로 발돋움했다.

그래험여사는 펜타곤 페이퍼, 워터게이트 등의 대형 사건들을 보도하면서 정부의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특히 편집국의 기자들보다 더 과감한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이러한 사건들을 다뤄 언론사 사주가 공정보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주의 올바른 언론관이 매체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몸소 실천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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