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민용 스포츠칸 교열기자  ⓒ이창길 기자  
 
"교열기자들이 홀대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스포츠칸에서 교열을 맡고 있는 엄민용(43·사진) 기자는 인터뷰 시작부터 작심한 듯 '자아비판'부터 했다.

엄 기자는 "오·탈자는 교열기자의 게으름에서 비롯된다"며 "업무와 전문지식에 대한 게으름, 그리고 열정 없음"을 꼬집었다. 그는 "일부 기자들은 변화하는 현실 언어는 외면한 채 과거의 맞춤법 교본에 기대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신문사 경영진의 책임이 제일 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회사가 어려울 때 교열기자는 '정리' 대상 1순위다. 교열부를 아예 분사시킨 언론사도 있다. 한정된 인력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완벽한 신문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엄 기자는 "오·탈자 때문에 직접적으로 손해 보는 일은 없으니 회사는 가능하면 저임금 인력을 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력의 질이 떨어지고, 대접이 박하다보니 실수도 잦은 것"이라며 악순환을 지적했다. 그는 "오자는 곧 오보"라며 "정품이 아닌 것을 생산해 놓고 제값을 받으려 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교열에 대한 엄 기자의 자존심은 확고하다. 맞춤법은 기본이고 독자 입장에서 읽기에 부담은 없는지, 헷갈리지는 않는지, 나아가 사실적 오류에 대한 검열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엄 기자의 지론이다. 이런 고집 때문에 때로 취재기자와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그만큼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할 줄은 모르지만 중계방송은 하루에 2∼3시간씩 모니터하고 후배들에게도 주말이면 야구장을 찾아 현장감각을 익히도록 한다.

엄 기자는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교열기자 스스로 더 고생하는 수밖에 없다"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교열이 아니라 '나 아니면 안되는' 교열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히 경영진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바람이다.

엄 기자는 마지막으로 정부의 한국어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덧붙였다. 그는 "국립국어원은 사투리 연구에는 1억5000만 원을 들이면서 외래어 표기법 통일에는 예산 탓을 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든 것도 민간의 자발적 연구 노력을 방해하는 엄청난 실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 말글살이 정책을 책임지는 국립국어원장이 문화부 과장의 명을 받는 구조로 돼있다"며 기구 재편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굿데이 교열팀장으로 일했던 엄 기자는 지난해 6월부터 스포츠칸에서 일하고 있다. 국립박물관 전시물의 설명문에 나타난 오류를 바로잡도록 하고, 일본에서 판매되는 한국어 교재의 문제점을 지적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교열기자협회로부터 한국어문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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