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에서 나온 ‘수인(囚人)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용어가 있다. 은행을 털다가 경찰에 붙잡힌 2명의 수인이 있다.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각자가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유리한 의사결정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명 모두에게 최선의 이득이 되는 선택을 놓친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상대에 대한 신뢰나 정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자는 ‘위험을 회피’하는 개인적 합리성을 따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을 일컫는다. 인터넷 포털로 뉴스소비 시장이 집중화되면서 뉴스 공급자로서 신문사나 방송사가 처한 상황은 ‘수인의 딜레마’ 그대로이다.

‘윈-윈’으로 착각했던 언론-포털 공생

현재의 포털시장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오래지 않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포털시장은 내적으로 높은 경쟁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2000년대 들어서 포털 사업자들은 검색과 메일 서비스와 같은 초기의 ‘단순 매개기능’에서 콘텐츠가 소비되고 담론이 진행되는 ‘정거장 기능’으로 전략을 재편한다. 특히 한국 포털사업자들은 이용자의 체류시간을 높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뉴스 콘텐츠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당시 한국 포털사업자들의 콘텐츠 구매는 뉴스 재판매 시장이 좁은 상황에서 작은 숨통을 열어줬다. 이것은 언론사들이 인터넷에서 가시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를 만들었다. 또한 언론사의 여론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도 포털에 뉴스를 재판매하는 것은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구조는 양자 모두에게 곤란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언론사는 결과적으로 온라인 뉴스 공급 채널로서의 영향력이 떨어졌고, 인터넷에서의 뉴스의 소비는 두세 개 포털사이트로 집중화됐다. 포털은 뉴스이용의 집중화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곳으로부터 ‘공공의 적’이 됐다. 이것은 산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양쪽 매체 모두가 재미를 보지 못한 게임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언론사들이 포털에 뉴스를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한 이분법적 질문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정답은 ‘가부(可否)’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들이 ‘스스로의 수인(囚人) 상황’을 벗어나는 데 있다.

딜레마 원인, 내부 경쟁에 묶인 탓

한국 뉴스 시장은 지역적으로나 전문영역별로 시장이 세분화돼 있지 않고 중복성이 높다. 이것은 뉴스의 표준화를 양산했고, 그 결과 온라인 시장에서도 유사한 뉴스가 과잉 공급되는 현상을 낳았다. 또한 뉴스 시장의 높은 경쟁수준은 대체재를 범람시키고 뉴스 상품의 공급 가격을 낮춘다.

경품 등 판촉 마케팅으로 구축된 신문독자의 낮은 충성도는 독자적인 유료 아카이브 모델의 구현을 막는다. 포털에 뉴스공급을 끊었을 때 자사의 독자가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이러한 고민은 시장 점유율이 낮은 언론사일수록 심각하다. 다매체 환경에 처한 지상파 텔레비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드미디어 수용자와 뉴미디어 수용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 격차도 고민거리이다. 오프라인 시장의 고객들이 노령화되고 젊은 세대의 이탈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포털을 매개로 매체력을 높이지 않으면 언론시장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물론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포털로부터 벌어들이는 뉴스판매비용도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처럼 언론시장 내에 얽혀 있는 복잡한 실타래는 모두의 발을 묶고 있다.

언론사와 비교했을 때 포털은 다소 여유 있어 보인다. 웹2.0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면서 기자가 만든 정보보다 블로그와 같은 이용자 제공 콘텐츠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미디어시장은 시장 진입이 쉬워서 영역별로 특화된 CP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이 기존 언론사의 보완 또는 대체상품이 되고 있다. 뉴스 구매가 아닌 검색으로 전환하더라도 포털의 매개기능이 심각하게 영향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포털시장에서 누구도 먼저 뉴스구매 방식을 바꾸려하지 않을 것이다. 포털사업자들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현재의 서비스를 유지하려는 것은 언론사와의 경쟁보다는 포털사들 간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이다.

언론사와 포털이 처한 ‘수인의 딜레마’는 이 두 시장이 각각 처한 내부적 경쟁구조에 묶여 ‘공동의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델은 미국과 같이 포털은 검색플랫폼 기능에 충실하고, 뉴스 콘텐츠는 개별 언론사의 아카이브로부터 추출되고 이용되는 구조를 떠올릴 수 있다.

미국 포털은 제한된 몇몇 언론사를 제외하고는 뉴스 콘텐츠를 구매하지 않는다. 구글은 다양한 뉴스를 제시하지만 이 뉴스들은 딥링크로 해당 언론사로 연결돼 있다. 일종의 게이트 역할이다. 야후는 AP나 USA투데이 등 특정 언론사 뉴스를 별도 카테고리로 제공하지만 구매 방식이라기보다는 발생하는 이용자 트래픽을
기준으로 광고수익을 나누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물론 포털과 이런 협약을 하는 언론사도 매우 제한적이다.

유사 뉴스 과잉공급 개선만이 살 길

미국 시장 모델의 적합성은 보다 정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개별 언론사의 뉴스 아카이브의 가치를 높이고 자기브랜드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그 방향은 더 바람직해 보인다. 이는 향후 등장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환경에서도 언론사들에게 중요한 자산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포털로부터의 뉴스 판매 수익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언론 시장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언론사가 독자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반대로 포털은 어떤 거래방식이 됐든 뉴스 소비를 분산 또는 공유시킴으로써 집중으로 인한 사회적 비판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 공룡기업인 월마트가 최근 ‘고용과 기회의 존(Zone)’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은 포털에도 함의하는 바가 크다.

   
  ▲ 황용석 건국대 교수. ⓒ이창길 기자  
 
이 프로그램은 월마트가 대도시 주변의 중소 유통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그들을 대신해 광고도 내주고 지방상의에 기부금도 내겠다는 것이다. ‘공생’의 조건을 만드는 비용이 갈등비용보다 적다고 판단한 것이다. 참고로 월마트는 연간 평균 6000여 건의 고소와 각종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영향력은 책임을 동반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비용을 양산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기형적인 뉴스 공급시장을 개선하는 데 있다. 우리 사회가 수용 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서 유사한 콘텐츠가 과잉 공급되는 시장구조를 재편하지 않으면 전통적 매체가 생존할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수인의 딜레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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