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기운이 아직 덜 떨어진듯한 완용이 가볍게 앙탈을 했다. 하지만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그녀의 말에서는 끈끈한 음욕의 찌꺼기가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손도 이미 희덕의 허리 아래를 슬그머니 더듬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 아래가 그렇듯 그의 몸은 놀랍게도 충분히 달아올라 있었다. 너무나 상대방의 몸을 잘 아는듯한 두사람은 당연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희같은 쓸데 없는 중간 과정을 생략한채 곧바로 다가올 황홀경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호텔 창 밖의 달은 마치 그런 두사람을 숨죽인채 훔쳐보기라도 하려는지 방의 침대 안쪽을 이미 슬금슬금 파고들어와 있었다. 두사람의 등에 새겨진 적당한 크기의 용과 봉황 문신도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그다지 덥지 않은 5월 하순의 밤이었으나 방 안은 농염한 분위기 탓인지 한여름의 더위가 무색하게 후끈거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도대체 어떤 놈들이 왜 희덕이를 그렇게까지 만든 겁니까?"
잠자코 완용의 입을 주시하기만 하던 재서의 말에 짜증기가 잔뜩 묻어났다. 첫눈에 봐도 색정적인 얼굴이 특징인 그녀가 본론을 벗어난 끈적끈적한 얘기만 자꾸 늘어놓고 있어서였다.
"아, 예…"
완용이 얼굴을 살짝 붉힌채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도 곳곳에서 지난 밤 희덕과 나눈 운우지정의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는 느낌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재서는 순간 자신의 여자가 베이징의 유명 고급 유흥업소와 연예계 물을 한때 잠깐이나마 먹은 경험이 있는데다 너무나 솔직해 차마 맨 정신으로는 입에 담기 어려울 성적인 얘기도 누구에게나 아무 거리낌 없이 잘 한다는 희덕의 고백을 떠올렸다.

"아니 왜? 벌써 가려고…자고 가는게 아니야?"
완용이 극도의 황홀경을 경험한 사람만이 느끼는 피로감에 못이겨 잠깐 눈을 붙였다 깨어난 희덕을 향해 그예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욕정만 풀면 지체 없이 옷을 주섬 주섬 추슬러 입고 어디론가 사라지고는 하는 그의 버릇이 영 못마땅하다는 눈치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내가 무슨 일회용 직업 여성이냐고 항의하는 듯한 표정이 강하게 어리고 있었다.
"허허 그것 참, 한두번 그런 것도 아닌데…요즘 엄청나게 바쁘다는거 잘 알잖아"
희덕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지갑에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무려 한 묶음이나 과감하게 꺼내들었다. 아무리 못돼도 1만달러는 돼 보였다. 완용의 자존심을 최대한 세워주기 위한 배려였다. 그에게도 만만치 않은 액수인 1만여달러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활짝 펴지고 있었다.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자 특징인 얼굴의 색기(色氣) 역시 완연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1만여달러는 적어도 중국에서 만큼은 단순한 화대라 하기에는 엄청난 돈이었다.
"어머! 역시 오빠는 통이 커. 코가 큰 사람은 통이 어쩌면 그럴까 싶게 작다더니 전혀 아니네. 고마워요, 오빠!"
완용이 너무나도 우람하고 풍만해 출렁거리기에도 버거워보이는 가슴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채 옷을 거의 다 입은 희덕의 팔짱을 꼈다. 잘룩한 허리 아래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타월 하나로 간신히 가려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
희덕은 그녀의 엉뚱한 농담과 요염한 모습에서 폭발할 것 같은 강하디 강한 음욕을 다시 느꼈다. 허리 아래가 언제 욕구를 몇차례나 시원스레 해결했는가 싶게 뻐근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타고난 천부적 색녀였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녀가 두 여자 이상이 있어야만 잠을 자고는 했던 자신의 변태적인 난봉끼를 단 하루 아침에 날려버린 평생 다시 만나기 어려운 뜨거운 색녀이긴 했으나 일은 일이었다. 자신만을 믿고 따르는 동생들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것이 이제는 그녀와 나눌 또 한번의 운우지정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까짓 것이 뭐 고맙다고 그래. 그보다는 자네 만난 이후에 주위의 모든 여자들을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사실을 오히려 더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안 그래?"

희덕이 아직 완전히 옷을 입지 않은 완용의 팽팽하고도 미끈한 가슴에 손을 가볍게 얹은채 왼쪽 눈을 찡끗해 보였다. 욕정을 해결한 다음에는 언제나 서둘러 떠나버리는 자신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그녀를 위로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나름의 다분히 자의적 태도였으나 진실과 전혀 동떨어진 행동이라 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그는 몸을 섞은지 겨우 1년에 불과한데도 벌써 만만치 않은 규모의 집까지 사주는 등 그녀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아낌 없이 뿌리는 자신의 변화에 언뜻 언뜻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그는 그녀가 진지하게 묻지 않았는데도 가끔 가슴 속에 묻은 비밀스런 생각들을 불쑥 불쑥 내뱉다 당황해 서둘러 말을 주워담은 기억도 얼핏 뇌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되 그에게 그녀는 시쳇말로 몸과 마음이 두루 통하는 드물게 보는 최고의 섹스 파트너임에는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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