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에는 빼앗긴 나라 찾기에 전념하며 수많은 정간과 압수, 폐간 등을 겪으며 일제에 저항했다. 해방 후 혼돈기와 경제성장기에는 나라 만들기에 주력하면서 언론활동이 크게 위축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조선일보에게 사실 민주화된 이후가 더 힘든 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져 온 10여 년의 세월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고 밝혔다.

"문민, 국민, 참여 등의 권력은 우리를 그대로 놔두지 않아"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이창길 기자 photoeye@
방 사장은 3일 조선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창간 86주년 기념사에서 "지난 93년, 저는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모든 세력과 집단으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한 입장에서 독립적으로 신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굳게 다짐했다"며 "하지만 '문민' '국민' '참여' 등의 이름표를 단 권력은 우리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대로 놔두지 않은' 사례에 대해 방 사장은 세무조사와 언론관련 법안,  공정위 지국 및 본사 조사와 경영자료 제출 등을 예로 들었다.

방 사장은 "그들은 신문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언론에 '수구'란 딱지를 붙여 공격했다"고 말했다. 방 사장은 "대북정책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사상 유례없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천문학적 추징금 부과, 발행인 구속 등을 자행했고, 기자들에게는 갖가지 취재봉쇄조치도 모자라 언론피해구제법 등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법들을 만들어 글쓰기를 위축시켰으며 경영측면에서는 공정거래위의 지국 및 본사조사와 경영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0여년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언론을 말살하기 위한 권력의 공격이 끈질기고 강도높게 진행됐던 시기"라고 평가한 뒤 "하지만 우리는 집요한 공격과 압박을 이겨내고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으로 나서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권력이나 특정집단과의 갈등 및 대결 지양해야"

방 사장은 "지난 시절 권력으로부터의 언론자유와 오피니언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힘든 세월을 겪어 오면서 중요한 부분에 소홀한 점이 있었다"면서 "미래를 향한 신문제작과 우리의 내일을 준비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권력이나 특정세력 및 집단과의 갈등 및 대결을 지양하고, 우리 사회의 통합을 구현하는 신문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며 "우리와 견해가 다른 모든 주의주장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방상훈 사장의 창간기념사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바깥 날씨는 아직 쌀쌀하지만 올해는 봄은 일찍 오는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는 창간후 지금까지 갖가지 어려움과 시련속에서 86년이란 연륜을 쌓아 왔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빼앗긴 나라 찾기에 전념하며 수많은 정간과 압수, 폐간 등을 겪으며 일제에 저항했습니다. 해방후 혼돈기와 경제성장기에는 나라 만들기에 주력하면서, 언론활동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 냈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조선일보에게 사실 민주화된 이후가 더 힘든 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93년, 저는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모든 세력과 집단으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한 입장에서 독립적으로 신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문민’ ‘국민’ ‘참여’ 등의 이름표를 단 권력은 우리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문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언론에 ‘수구’란 딱지를 붙여 공격했습니다. 대북정책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사상 유례없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천문학적 추징금부과, 발행인 구속 등을 자행했습니다. 기자들에게는 갖가지 취재봉쇄조치도 모자라 언론피해구제법 등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법들을 만들어 글쓰기를 위축시켰습니다.

경영측면에서는 공정거래위의 지국 및 본사조사와 경영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해오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여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언론을 말살하기 위한 권력의 공격이 끈질기고 강도높게 진행됐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독자와 국민만을 바라보며 언론으로서의 바른 길을 꿋꿋히 걸어왔고, 집요한 공격과 압박을 이겨내고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으로 나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 어떤 세력이나 집단의 공격이나 압박도 이겨낼 수 있는 저항력과 내성을 갖게 됐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이겨낸 사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거듭 거듭 감사드립니다.

사원 여러분.

우리는 지난 시절 권력으로부터의 언론자유와 오피니언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힘든 세월을 겪어 오면서 중요한 부분에 소홀한 점이 있었습니다. 미래를 향한 신문제작과 우리의 내일을 준비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권력이나 특정세력 및 집단과의 갈등 및 대결을 지양하고, 우리 사회의 통합을 구현하는 신문을 지향해 나가야 합니다. 열린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우리 사회를 살펴보고, 우리 이웃을 돌아봅시다. 따뜻한 가슴으로 소외된 계층까지 끌어안고 가는, 가슴을 활짝 연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제하 조선일보가 주도했던 신간회 정신을 되살려, 빈부 지역 세대를 뛰어 넘어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길을 열어 주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하면서, 우리와 견해가 다른 모든 주의주장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내부통합을 이루고 그것을 토대로 남북문제에 접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중산층 붕괴와 그로 인한 빈곤층 확산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찾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우리 신문은 바로 그런 문제에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사원 여러분.

작년 한해는 우리 모두에게 마음 아팠던 한해였습니다. 적지 않은 사우들이 회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원 여러분은 물론이고 사장인 저로서도 정말 안타까웠던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신문산업의 어려움속에 더욱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불행히도 사내 일각에서는 지난 연말 명예퇴직 이후 여전히 여러가지 걱정을 하는 사원들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사원 여러분의 장래나 회사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할 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더 나은 조선일보를 향한 열정과 의지를 갖고 열심히 일해 주기 바랍니다.

사원 여러분.

이 자리에서 저는 사원 여러분에게 몇가지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선임기자제를 도입하면서 이미 말씀 드렸듯이 이제 열심히 뛰고 글 잘 쓰는 기자는 정년이 없습니다.

둘째, 열심히 하는 사원과 어려운 일을 하는 사원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 줄 것입니다. 아울러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많은 사원들이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습니다.

끝으로, 회사는 사원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면서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체제를 올해안에 갖춰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열심히 성실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맡은 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조선일보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사원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내일을 위한 미래의 쌀을 준비해 나가기 위해 전력 질주해야 됩니다.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미디어 융합시대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와 설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연초 약속대로 교육을 통해 여러분의 역량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높여 조선일보를, 그리고 사원 여러분을 최고의 콘텐츠 센터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열심히, 자신있게 일하는 것만이 남은 과제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생일을 자축하며 열심히 다함께 앞을 향해 달려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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