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TV를 가장 많이 시청하는 연령층임에도 불구하고 TV로부터 가장 심각한 소외를
받고 있다. 프로그램 태반이 10~20대 위주의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는데 반해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TV 3사를 통틀어 SBS ‘젊은 인생’이 유일하다.

노인들의 소외감은 비단 이런 양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다. TV에서 그려지는 노인은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기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우스꽝스러운 인물이거나 자식들이 짊어져야 할 짐처럼 비춰지고 있다.

이제 노인들도 당당한 시청자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 송파구 노인종합복지관에 지난 7월4일부터 ‘노인방송모니터팀’이 발족돼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매주 금요일 한 차례씩 모임을 갖는 모니터팀엔 50대 후반에서부터 70대 중반까지의 노인 10명이 가입해 있다. 이들은 매주 모니터할 프로그램을 선정해 각자 시청소감을 적어온 뒤 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정기적인 모니터보고서를 내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이 모니터한 프로그램은 SBS ‘젊은 인생’, MBC ‘여자를 말한다-황혼의 그림자’, KBS ‘세계는 지금’ 등이다.

이들은 모니터 활동을 한 뒤 전혀 새로운 세계에 눈 떠가고 있었다. “과거엔 TV를 흘러가
는 대로 봤지만 이젠 여러가지 앞뒤를 비교하면서 보고 있다. TV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
이 들었다.”(이연옥씨·67)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를 유심히 보고 우리의 처지와 비교를 하니까 큰 공부가
됐다.”(주복희·63)

“노인과 젊은 사람이 함께 시청할 프로그램이 없다. TV는 노인이 자신감을 갖고 가족과
사회에서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이묘재·67)

이들의 비판적 안목은 진행자의 옷차림, 말투 등 세밀한 데까지 미치고 있다. ‘젊은 인생’
을 모니터할 때는 진행자 백남봉씨가 머리칼을 ‘뚜껑’ ‘원단’으로 표현한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노인방송모니터팀이 만들어진 데는 이 모임을 지도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유경씨(37)의 힘이
컸다. 유씨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전 90년까지 CBS 아나운서로 근무하면서 노인 대상 프로
그램의 진행을 맡았고 이후 대학원에서 노인 대상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로 논문을 썼을 만
큼 이 분야의 전문가다. 유씨는 “노인들이 이 사회에서 정보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스스
로 문제 의식을 갖고 방송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모니터팀을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
했다.

이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보적 수준이지만 앞으로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활용해 자신들
의 의견을 방송에 반영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또 단순히 노인 관련 프로그램
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방송환경을 함께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 일조하겠다는
생각들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니터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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