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사용자의 연월차 수당 지급 의무를 사실상 면제하는 행정해석을 내린 데 이어 헌법재판소가 도산 기업 노동자들의 퇴직금 우선변제를 규정한 현행 근로기준법 조항을 사실상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등 최근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처가 잇따르고 있어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소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인 데 이어 26일 오후엔 서울역 광장에서 2천여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한 ‘퇴직금 우선 변제 위헌 판결 전면 백지화 및 생존권 사수 대회’를 개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에서 헌재의 퇴직금 우선 변제 조항의 헌법 불일치 판결을 “노동자의 생존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기본권을 유린하는 ‘노동자죽이기’ 판결”이라고 비난하면서 △헌재 위헌 결정의 백지화 △헌재 재판관의 총사퇴 △임금채권보장법의 즉각 개정 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또 8월 29일 있을 ‘전국 단위노조대표자 수련대회’에서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한 대응책을 집중 논의할 방침이다.

한국노총도 지난 25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에서 개최된 ‘헌법재판소 규탄및 생존권 사수대회’에서 “헌재의 자본편향적 판결을 규탄한다”며 퇴직금 우선변제의 위헌 판결 철회 등을 주장했다.

노동계가 이처럼 강력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노동부의 내부 방침이나 헌재의 결정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크게 위협하게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헌재가 이번에 헌법 불일치 판결을 내린 근로기준법 제37조 ‘임금채권우선변제’ 조항은 기업 도산시 최종 3개월분의 임금과 퇴직금, 그리고 재해보상금을 질권과 저당권에 우선해 변제토록 규정한 것으로, 회사가 부도 등으로 문을 닫게 될 경우 생계는 물론, 전직이나 재취업 등에 따른 비용을 우선 변제토록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호한다는 입법취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헌재가 이 법률 조항 가운데 퇴직금의 우선변제 부분에 대해 ‘헌법 불일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이후부터 노동자들은 회사가 망할 경우 퇴직금을 우선 변제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근로자의 생활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만을 앞세워 퇴직금 전액에 대해 범위나 한도에 대한 아무런 제한 없이 질권이나 저당권에 대한 우선변제수령권을 인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질권이나 저당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담보 물권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기업금융의 길을 폐쇄하면서까지 퇴직금의 우선 변제를 확보하자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기존 임금채권우선변제 규정이 적용되고 있어도 기업 도산으로 인해 체불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지난 94년의 2만5천여명에서 지난해는 3만5천여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헌재의 결정은 그나마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였던 퇴직금 보상 마저 어렵게 할 소지가 크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노동부가 “사용자가 휴가사용을 적극 권고했는데도 노동자가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 사용자의 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할 수 있다”며 사실상 사용자의 연월차 수당 미지급을 허용한다는 행정해석을 내린 데 대해서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21일 성명에서 “연월차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1년에 많게는 40일분의 임금을 깍아 노동자들의 생계를 압박하게 된다”며 “노동부는 노사자율로 해결할 문제에 개입하지 말고 그같은 행정해석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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