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 한 사진기자가 어머니와 헤어진지 40년만에 ‘남북총리회담 평양취재단’이라는 이름으로 북한땅으로 향했다. 10여년간 판문점을 출입하며 고향이 같은 조선(북한)기자로부터 어머니와 두 동생이 살아있다는 얘기도 전해들은 터였다.

그러나 정작 평양에서 취재를 하는 동안 어머니와 동생을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평양역에서 누군가 동생의 선물이라며 쇼핑백 하나를 건네준다. 역 건너편에서는 동생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기차는 무심히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최근 동아일보 사진부 김녕만차장이 엮은 ‘특종에 산다’(사진 예술사)-눈물로 돌아선 평양-편에 실린 이 이야기는 이종만 전서울신문 사진부장이 90년 평양취재를 하며 겪었던 눈물겨운 취재담이다.

‘특종에 산다’에는 42명의 사진기자들이 때로는 전쟁터에서, 때로는 역사의 현장에서 겪은 진솔한 이야기들이 ‘사진’과 함께 ‘글’로 기록돼 있다.

한 사진기자가 87년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이한열군 사진을 촬영보도함으로써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나, 자유당시절 야당측의 시국강연회장에 정치깡패 유지광의 클로즈업된 사진을 찍어 신문에 게재함으로써 경찰로 하여금 유지광을 구속케만든 사건 등은 무엇보다 ‘사진’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 60년 4월19일, 총격전이 벌어지는 종로4가에서 촬영하던 사진기자가 총알이 자신의 양복을 뚫고 옆에 있던 운전기사의 복부를 관통하자 한번도 몰아보지 않은 차를 돌려 내내 1단으로 놓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일이나, 79년 보안사령부에서 “충성. 촬영하겠습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사진을 찍었던 사진병이 96년 두전직대통령의 1심 선고공판 재판정에 신문사진 공동취재단 풀기자 자격으로 촬영하게된 사연도 담겨 있다.

이외에도 ‘육여사 저격 사건의 그날 그 자리’, ‘의혹의 사과상자’, ‘카메라가 잡은 소매치기 일당’, ‘마른 하늘에 UFO’ 등 ‘특종에 산다’에는 ‘사진’ 뒤에 숨겨진 42명의 사진기자들의 때로는 눈물겹기도 하고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게도 하는 사연들이 있다.

김녕만기자는 “우리 시대를 최선두에서 지켜보며, 시대가 주는 교훈을 가장 진실하게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취재 경험담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어 이 책을 엮었다”고 엮은이의 말을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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