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중앙일보의 대주주이자 전 주미대사인 홍석현씨가 검찰에 출두했다. 국민들은 이른바 ‘X파일’ 사건의 당사자로 참여연대로부터 고발당한 홍씨의 출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00여명의 취재진이 미리 진을 치고 홍씨를 기다렸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X파일 공대위’ 소속 회원들이 홍씨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구속 촉구 기자회견을 준비중이었다. 홍씨가 나타나자 회견을 준비하던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현수막을 펼치며 “홍석현, 이건희를 구속하라”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사주의 경호원으로 전락한 사진기자

   
현장을 담은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은 다음 날인 11월 17일 한겨레 3면에 실렸다. 시위대는 홍씨를 가로막고 구호를 외치고, 이건희 회장의 얼굴을 본 딴 대형 탈을 쓴 시위참가자가 홍씨를 뒤쫓고 있다. 홍씨는 굳은 표정으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쳐다보고 있다(사진 1). 이 때 중앙일보 소속의 한 사진기자가 홍씨 앞에서 구호를 외치던 시위자의 목덜미를 잡아 젖혔다(사진 2).

<사진 4>를 보자. 홍씨의 왼쪽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이 상황을 바라본다. 이 때 탈을 쓴 시위참가자가 자리를 피하려던 홍씨의 팔을 잡아끌고 있다.
시위대를 저지한 사진기자는 왼손에 카메라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시위대의 목을 잡은 상태로 홍씨(사주)와 눈을 맞췄다. 탈을 쓴 시위 참가자는 이 상황이 민망한지 왼손으로 눈을 가렸다.<사진 3>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 재벌 총수가 대선 후보들과 검사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뇌물을 뿌렸고 그와 인척인 거대 신문사 사주가 뇌물 심부름을 했다는 것, 그리고 전달할 돈의 일부에 대해 ‘배달사고’까지 낸 혐의가 사건의 요지다. 이런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참에 그 사주에게 고용된 사진기자가 완력을 행사해 사주를 ‘경호’했다.

카메라는 사건의 대상을 향해야

   
중앙일보 기자들은 홍씨가 귀국하던 12일에도 홍씨를 수행하며 다른 기자들의 취재마저 방해해 ‘경호원 기자’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 날의 완력 행사까지 더해져 자칭 ‘대한민국 일류신문’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완성됐다. 그리고 ‘경호원 기자’의 직장 상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포토라인이라는 룰을 위반해 사진기자가 직접 나서서 응징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물론 시위대가 기습시위를 벌여 포토라인을 망쳐버린 것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위대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카메라에 담지 않고 사주의 경호원이 돼 완력을 휘두른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사진기자들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찰나에 목숨을 건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면 전체 4컷의 사진 중에 그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있는가? <사진 3>과 <사진 4>에서 그의 카메라는 마치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이 들고 있는 총과 같아 보인다. 사건 현장에서 카메라는 총구처럼 빈 허공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대상을 향해야 한다.
정리 / 박제선·민언련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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