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신문 입맛 따라 기사배치 ‘극과 극’
신문 입맛 따라 기사배치 ‘극과 극’
‘고교평준화 연구 결과’ 이중적 보도

“평준화 학력저하 관계없어”…한겨레 1면, 동아 보도 안해
“고교평준화 학력저하”…조선일보, 동아일보 1면 부각

고교평준화 제도를 둘러싼 신문보도는 언론의 본분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신문사 입맛에 따라 고교평준화 제도 연구결과가 취사선택되고 독자들은 일방적인 정보를 접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고교평준화 연구결과 발표도 그런 경우이다. 연세대 강상진 교수와 서울대 김기석 교수팀에 의뢰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126개 일반계 고교 88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교평준화 제도로 인해 학력이 저하됐다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날인 28일 한겨레 1면에 <평준화 고교 학생이 학업성취도 더 높다>는 제목으로 비중 있게 실렸다.

   
▲ 한겨레 10월28일자 1면
한겨레는 3면 <‘평준화로 학력저하’ 오해 풀리나>라는 기사에서 “그동안 ‘평준화 지역에서는 최상위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월성 교육을 위한 특수목적고가 필요하다’거나 ‘평준화가 사교육 증가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제기돼왔다”며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는 그런 주장들이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도 이날 사회면(7면) 머리기사로 실린 <“평준화 지역이 더 우수”>라는 기사를 통해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 모두에서 학업성취도가 더 높고, 고등학교 3년 동안에 성적 향상 정도도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 제도가 학력저하를 가져온다고 주장해온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달랐다. 동아일보는 관련 기사를 아예 싣지 않았으며 조선일보는 10면에 <“고교생 학업성취도 평준화 지역이 더 높아”>라는 기사를 배치했다.

KEDI의 연구결과를 다루지 않거나 비중있게 다루지 않은 셈이다. 이는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비평준화 지역 고교생들이 시간이 갈수록 평준화 고교생보다 성적이 많이 오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할 당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 동아일보 2004년 2월24일자 1면
동아일보는 지난해 2월24일 <’비평준화 효과’ 논란>이라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연구결과는 ‘고교평준화정책으로 인한 학력저하 현상이 일부 상위권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뒤집는 것이어서 고교평준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고교 평준화에 매달릴 때 지났다>는 사설을 통해 “고교평준화 정책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이 확인됐다”며 “맹목적 평등주의, 평준화 숭배 논리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교 평준화 제도가 학력저하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내용은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던 동아일보가 정반대의 연구내용은 보도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동아일보 독자들은 편향된 정보를 근거로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2004년 2월24일자 1면
조선일보도 KEDI 연구결과는 지난달 28일 10면에 배치했으나 지난해 2월 언론에 공개된 KDI 연구결과는 1면에 실었다. 조선일보는 <”비평준화가 성적 향상에 도움”>이라는 1면 기사를 통해 “고교 평준화의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비평준화 지역 고교생이 평준화 지역 고교생에 비해 전국 석차가 상승하는 효과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28일 3면에 실은 <평준화 지역 학력 더 높다?> 제하의 7단 기사도 논란의 대상이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학계에서는 교육부가 평준화에 대해 내린 결론이 무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연구에 사용된 기초자료에 한계가 있고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연구결과 자체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는 지난달 31일 2면 <”일부 언론 평준화 연구 흠집내기”>라는 기사에서 “일부 언론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흠집내기 물타기 보도를 하고 있다고 연구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교평준화 제도만큼 찬반의견이 뚜렷한 사안도 없다. 교육계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까지 상반된 의견을 펼치는 상황이다. 고교평준화 제도는 1974년 도입된 제도로 현재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 6개 광역시와 경기 수원, 성남, 안양, 부천, 고양, 과천, 의왕, 군포 등 26개 시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고교평준화 제도 폐지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폐지론의 근거로 제시됐던 것이 학력저하 문제였다. 하지만 고교평준화가 학력저하를 불러왔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이철호 부소장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결과는 평준화에 관한 논쟁이 통계적인 자료나 학술적 근거가 아니라 계층간의 이념전쟁 양상을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부소장은 “보수언론은 자신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객관적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보도를 하지 못하거나 작게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회에 잘못된 평준화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교육기회의 불평등 완화라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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