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이하 진실위)는 부일장학회와 경향신문 매각은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중앙정보부의 집요한 개입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진실위는 22일 국정원 회견장에서 개최한 두 사건에 대한 의혹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부일장학회 및 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부산MBC)·한국문화방송(MBC)과 경향신문이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해 헌납 또는 매각됐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므로 합당한 시정조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사회적 공론화의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정희 지시로 부일장학회 강제 헌납"

   
▲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들이 22일 국정원에서 열린 부일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에 따른 의혹조사결과발표에서 사건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백승렬 기자
진실위는 우선 '부일장학회 등 헌납 의혹사건'의 핵심의혹으로 지목받아온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여부에 대해 "당시 중정 부산지부장 박모씨는 박 의장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고 박씨는 박 의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기 직전에 작성된 부산지부의 '정치인 실태보고서'에서는 김지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박 의장 지시에 의해 수상 대상이 돼 구속됐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당시 중정은 수사권을 남용해 재산헌납을 강요할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등 재산헌납 과정에 개입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관련자(신직수·고원증 등)들은 박 전 의장의 지시로 헌납받은 재산을 5·16장학회로 이전했다고 진실위가 밝혔다.

진실위에 따르면 당시 구속된 뒤 부일장학회 등을 강제헌납했던 김지태씨는 62년 4월20일께 귀국해 부정축재처리법 등 9개 혐의로 구속됐고, 5월24일 국내재산도피방지법 등 4개 혐의를 적용받아 군검찰에 의해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김씨는 구형을 받은 다음날(25일) 최고회의 법률고문 신직수에게 포기각서를 제출했다고 6월20일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원증이 작성한 기부승낙서에 서명 날인한 뒤 박 의장의 지시로 공소취소, 석방됐다.

진실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처음부터 언론 3사와 부일장학회 명목의 토지를 자진헌납할 의사가 없었고, 강압적으로 탈취당했다고 생각해 석방 이후 같은 해 7월 김유택 경제기획원장을 만나 재산 반환을 주장하는 등 기회가 닿는 대로 재산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기부승낙서 변조 확인…토지 10만평도 국방부 강제헌납"

또한 언론에서 제기됐던 기부승낙서의 날짜 변조 의혹에 대해 진실위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김지태 명의의 기부증서 등 문건 7건 원본에 대한 필적 동일성과 기부일자 변조여부를 감정한 결과 기부승낙서는 김씨 본인을 포함한 3명이 서명했고, 기부승낙서 상의 날짜도 한자 '六月 二十日'에 한 획을 가필해 '三十'으로 변조한 게 사실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씨가 중정의 의해 구속된 상태에서 강제 헌납한 재산은 모두 8527만원 정도로 주식 5만3100주(부산일보 2만주-100%, 한국문화방송 2만주-100%, 부산문화방송 1만3100주-65.5%)와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명목의 토지 10만평(부산 시내에 소재) 등이었다.

이 중 토지 10만여평은 58년 11월 설립된 부일장학회의 기본재산이었으나 5.16장학회는 이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보유하지 않고 63년 7월25일 국방부에 양도했고, 그 뒤 국방부는 감사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박정희와 대구사범 동기였던 부산일보 황용주 주필의 권유에 따라 재산을 포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황씨는 수감중인 김 씨에게 "생사업체는 해야 할 것이고, 부일장학회는 재산 내놓고 이사장 맡으면 공익사업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그러니 생사부문은 살아야 되고 언론부문은 내놔야 안되겠나"고 종용했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이에 따라 설립된 5·16장학회는 그 기본재산이 전적으로 김씨의 헌납으로 이뤄졌으며 그 이후 박정희 의장이 5·16장학회 설립 지시와 이사진 직접 선임 등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박 전 의장은 장학회 이사진과 장학회 소유 언론3사의 사장에 주로 대구사범 출신 측근들과 친인척 등을 임명했고, 박 대통령 사후에도 유족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박정희 "비판 논조 경향 사장 손 떼게 하라"

진실위는또 60년 대초 경향신문의 보도태도에 대해 "당시 언론사들 중 경향신문이 자유당 시절 독재정권 비판 뒤 폐간됐고, 한일회담·언론윤리위원회법 반대를 주도했으며 정부 경제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을 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로당 연루 전력을 들어 사상문제를 부각했던 논조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향의 '허기진 군상' 시리즈에 따른 경제정책 비판기사가 북의 신문 방송에 인용됨에 따라 반공법상 이적행위 혐의로 이준구 사장을 구속한 뒤 석방했는데도 지속적인 비판이 끊이지 않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 "경향신문에서 이준구가 손을 떼게 하라"고 지시해 강제매각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진실위가 밝혔다.

진실위가 백모 전 중정 조사관을 면담한 결과에 따르면 경향 매각 사건은 박 대통령의 지시로 중정의 전 부서가 동원돼 처리했다.

금융권 재정상황 양호 경향에만 상환 독촉

진실위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는 64년 12월 윤우현씨가 동경지사장 신분으로 이준구 사장과 자신의 고종사촌을 활용해 각종 정보자료 수집 및 간첩 침투를 위한 공작을 전개하다 입북했다고 발표했고, 65년 4월에는 남파 간첩 이문백에 의해 포섭된 이형백 경향 체육부장 등 4명을 검거했다는 소위 '이형백 간첩사건'과 관련, 이형백이 이준구 사장을 포섭대상으로 삼고 농촌의 참상을 과장보도하게 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시(65년 7월3일) 다른 언론사에 비해 부채 규모가 적었던 경향신문에 대해서만 제일은행과 한일은행이 상환을 통보한 데 이어 경향의 부동산에 대한 경매를 신청했고 9월7일 부동산 경매개시를 결정, 경매 부동산은 결국 66년 1월25일 박 전 대통령과 동향인 김철호 전 기아산업 사장에게 낙찰됐다.

진실위는 두 간첩 사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 이 사장의 여죄에 대한 전방위적 정보수집에 나서 '한국전쟁 당시 금전출납 군인 살해 뒤 거액 탈취' 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으나 결국 이 사장의 처 홍연수 씨가 주권을 양도해 66년 4월22일 수사를 종결했다고 전했다.

김형욱 중정부장은 압력을 가할 때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임을 내세우며 "(박 전 대통령이) 당장 가져오라고 해서 그거 빼앗아 5·16장학회에 다 갔다 줬다"고 말했다는 홍씨의 증언과 전 중정 직원의 진술로 미뤄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피해구제·명예회복 조치 위해 사회적 공론화 필요"

진실위는 부일장학회 등 헌납 사건에 대해 당사자 피해 구제 및 명예회복 위해 정수장학회를 재산의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씨의 유지를 되살릴 수 있도록 쇄신해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경향신문 매각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경영상 큰 어려움이 없던 경향신문사가 강제매각과 통폐합 과정에서 심각한 적자에 이름으로써 매달 사옥의 토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등 큰 손실을 입어왔으므로 손실 보전 방안을 강구할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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