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저널리스트를 시험 쳐서 뽑는다고?"
"저널리스트를 시험 쳐서 뽑는다고?"
[기고] 류희림 YTN 편성운영팀장 / 한국식 '언론고시' 이대로 둘 것인가

지난 3월부터 두달 동안 미국 아이젠하워펠로우재단의 국제교류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의 방송국, 신문사와 저널리즘스쿨들을 견학한 YTN 류희림 편성운영팀장이 이른바 한국식 '언론고시'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류 팀장은 수시면접과 스카우트를 통한 미국의 채용제도와 저널리즘스쿨의 교육방식을 소개하며 한국식 '언론고시'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그 대안을 제시했다. 류 팀장은 1985년 경북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해 KBS에 입사했으며, 1994년 YTN으로 옮겨 워싱턴지국장 등을 지냈다. / 편집자


   
▲ 노스캐롤라이나 저널리즘 스쿨 앞에서 국제 커뮤니케이션 전문 학자인 로버트 스티븐슨 교수와 함께 한 YTN 류희림 제작부장. ⓒ 류희림
필자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펠로우(Eisenhower Fellow) 재단에서 주관하는 국제교류 방문 프로그램(MNP:Multi Nation Program)의 일원으로 선발돼 지난 3월21일부터 5월21일까지 두달 동안 미국의 방송국들과 저널리즘 스쿨들을 두루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1953년부터 시작된 아이젠하워 펠로우십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은 해마다 전세계 25개국에서 나라별로 1명씩을 펠로우로 선발해 펠로우가 방문하거나 만나기를 원하는 미국내 기관과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인데 한국에서 방송기자가 선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 언론사들은 어떻게 기자 선발하나"

필자는 이 기간에  미국 방송국 15곳과 신문사 5곳, 그리고 대학 저널리즘 스쿨 6곳과 독립적인 언론단체 6곳 등을 방문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저널리즘 시스템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필자가 이들 미국 방송국들과 신문사 그리고 저널리즘 스쿨들을 방문해서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알아보고자 했던 여러 가지 이슈 중의 한 가지가 미국 언론사들의 기자 채용 시스템과 그리고 대학에서의 예비 저널리스트들 교육과정이었다. 방문하는 곳마다 방송국과 신문사 관계자 그리고  대학 교수들이 필자의 질문을 받은 뒤 빼놓지 않고 묻는 질문이 "한국 언론사들은 어떻게 기자들을 선발하느냐?"였다.

규모가 큰 방송국과 신문사들은 대부분 정기적으로 공개 채용시험을 통해 기자들을 뽑는다는 대답에 놀라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큰 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어떻게 저널리스트들을 시험을 쳐서 뽑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나중에는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들의 질문 뒤에는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이어야 하며 때로는 전문적인 기능을 요구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단순한 몇 과목의 시험으로 뽑을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배여 있었다.
 
기자가 되려면, 또 PD가 되려면 각 언론사에서 시행하는 대규모 공개채용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이번 미국 방문이 한국형 기자 채용시스템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미국 방문을 통해 나름대로 느꼈던  미국식 기자 채용 시스템과 저널리스트 양성과정의 특성을 정리하고 이와 함께 한국식 기자 채용시스템의 개선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공채 시험 없이 수시 면접 통해 채용

미국의 경우 한국처럼 언론사마다의 대규모 공개 채용시험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언론자유를 중시하는 오랜 방송과 신문 출판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종의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라고 뚜렷이 명시돼 있다.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17세기초 영국의 식민지가 구축되면서 170여년간 독립을 추구해 온 정착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언론의 자유였던 것이다.

이후 급속한 산업 발전과 함께 신문과 잡지 등 관련 미디어 산업들도 급팽창을 하면서 크고 작은 언론사들이 필요한 인력을 자체적으로 알아서 충당해왔기 때문에 굳이 공개적으로 대규모 채용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인력이 필요할 경우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나 지면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공지는 하지만 이 역시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접수해 개별적으로 면접을 통해 선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작은 언론사서 옮겨온 CNN과 NBC, ABC, FOX 부장급 기자들

이런 미국식 저널리스트 채용 방식이 효율적인 것은 관련 미디어 시장이 어느 업종보다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는 데에도 기인한다. 한국처럼 대규모 방송사나 신문사들이 전국 뉴스를 다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가 속한 지역뉴스를 다루는 지역방송과 지역 신문위주로 돼 있는 미국의 미디어 시장에서 신규 인력을 요구하는 방송 관련 업체들만도 대략 전국적으로 2000여곳이나 되기 때문에 미국 내 언론 산업간 저널리스트들의 수평이동이나 수직 이동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필자가 만난 CNN과 NBC, ABC, FOX 등의 방송국과 워싱턴 포스트와 크리스찬 싸이언스 모니터 등 유수 신문사들의 부장급 기자들은 모두 지역의 조그마한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보통 2∼3군데 언론사를 거쳐 현재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 필라델피아 NBC 방송국 보도국장의 경력사원 인터뷰. ⓒ 류희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NBC 방송국의 보도국장 책상 옆에는 일반 비디오 용 VHS테이프 십여 개가 담긴 박스가 위치해 있었다. 처음에는 '아마도 시청자들이 보낸 제보테이프를 보도국장이 직접 보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달에도 전국 각지에서 여러 명이  자신을 알리는 이력서와 함께 자신의 방송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이처럼 VHS에 녹화해 보내 온다는 것이었다. 보도국장은 이들 응모자 가운데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개별적으로 연락해 간부들과 함께 직접 면접을 본다고 했다. 마침 필자가 방문한 날 조그마한 지역방송국 뉴스 앵커로 일하는 응시자가 면접을 받고 있었다. 이 방송국에서는 대학을 갓 졸업한 기자나 PD는 거의 없다고 했다.

물론 이 방송국을 거쳐 뉴욕에 있는 NBC 본사 등 더 큰 방송국으로 옮겨 간 경력 기자들도 많다고 했다. 규모가 작은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뒤에 자신이 있으면 조금씩 더 큰 규모의 신문사나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력에 따른 이동이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보니 언론 관련 행사장마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름과 경력을 알리는 공개 구직 광고판도 눈에 띄었다. 필자가 이번 연수 중에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NAB(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 전미 방송인협회)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도 이런 공개 구직게시판이 비치돼 있었다.

   
▲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NAB(미국 방송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ing) 전시장 게시판에 걸린 방송 기자들과 PD 등 방송사 종사자들의 구직 자기소개서들 ⓒ 류희림
이 공개 구직판에는 자신의 이력과 경력 그리고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방송 장비와 컴퓨터 실무까지 자세히 기록 돼 있었다. 어떤 구직자는 자신의 명함과 사진까지 함께 첨부하기도 했다. 이들 구직자들의 대부분도 보통 3-4군데 직장에서 기자 또는 앵커 그리고 PD로서 다양한 경력을 거친 것으로 돼 있었다. 이처럼 처음에는 작은 언론사에서 시작해 실력이 쌓이면 그 다음 큰 규모의 언론사로 자리를 옮기는 단계적인 이동이 자연스러운 관행이 되고 있는  미국식 언론사 채용시스템은 한번 입사하면 거의 퇴직할 때까지 한군데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돼 있는 한국식 시스템에 비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었다.       
 
학교와 현장의 상호 교류, 대학에서 NBC방송 제작

미주리주 콜럼비아시에 있는 미주리 대학 저널리즘 스쿨은 1908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저널리즘 스쿨이다. 100년 가까운 오랜 역사답게  대학 건물과 각종 실습 장비들이 다른 대학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학생들은 대학 재학 때부터 방송과 신문기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키우는 한편 실력이 인정된 학생들은 실습 수준을 벗어나 바로 직업적인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 대학의 저널리즘 스쿨에서 대학교 교내  소식을 전하는 교내 방송이 아니라 NBC방송의  제휴 방송국을 직접 운영하고 있었으며 교내 신문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직접 배포되는 상업 일간지를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방송국과 신문사의 중요한 자리는 학교 교수들이 겸직하고 있었지만 기자나 PD 등 상당한 자리를 학생들이 직접 맡아서 뛰고 있었다.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뿐만 아니라 필자가  방문한 대부분의 저널리즘 대학에서는 부설 공영 방송국이나 교육 방송국을 직접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인턴으로 쓰고 있었다. 이와 함께 저널리즘 스쿨이나 방송과 신문 관련 학과 학생들이  방학중이나 졸업을 앞두고 방송국이나 신문사 그리고 잡지사 등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주 보편화 된 저널리스트 훈련 과정이었다. 필자가 방문한 저널리즘 스쿨 사무실 게시판에는 인턴을 구하는 관련 업체들의 공문이 빡빡하게 게시돼 있었다.

   
▲ 아리조나 대학교에 있는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 게시판에 붙어 있는 인턴쉽 광고들 ⓒ 류희림
필라델피아에 있는 뒤라셀 대학교의 경우 미디어 관련학과의 학생들이 연간 6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관련 업체에 인턴십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들 학생들을 인턴으로 쓰는 관련 업체에서는 일정 급여를 지급하면서까지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보스턴에 본사를 둔 크리스찬 싸이언스 모니터와 몇몇 지역방송국들은 자체 견학 홀이나 코스를 만들어 견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 것도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높혀 학교와 현장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미디어업계의 노력으로 보였다. 

특히 필자가 워싱턴타임스를 방문한 날 열린 공개 편집회의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날 단체 견학을 온 워싱턴 인근 한 고등학교의 미디어 관련 동아리 고등학생들을 위해 워싱턴타임스에서는 그날 아침 편집국장 주재  편집회의를 전체 강당으로 옮겨서 이들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한 것이었다. 한국적 상황이라면 상상할 수 있는 일일까? 
 

   
▲ 워싱턴 타임즈 아침 편집회의가 저널리스트를 희망하는 고교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 류희림
이처럼 미국의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미디어 관련학과 학생들에게 많은 인턴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결국 자신들의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일을 하게 될 예비 저널리스트들이라는 인식 하에 인턴과정을 통해 보다 수준 높은 현장 실무 교육을 시킴과 동시에 졸업 후에 자신들의 직장에서 발탁할 만한 적절한  인재들을 찾기 위한 사전 인물 고르기 차원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겸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장위주 실무교육, 대학방송국에 첨단장비가

위에서 설명했듯이 미디어 관련 학과와 관련 업계의 상호교류가 활발하다 보니 학생들도  학교에서 실무위주의 저널리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방송관련 학과에서는 6밀리 디지털 카메라와 첨단 비선형 편집기를 갖추고 학생들에게 조작 능력을 가르치고 있었다.

   
▲ 보스톤 대학교 방송관련 학과학생들이 비선형 편집기를 이용해 실습을 하고 있는 장면 ⓒ 류희림

특히 보스턴에 있는 방송 인력 양성 전문 대학교인 에머슨 대학에서는 디지털 편집장비로 유명한 아비드사의 협조를 받아 음향과 영상이 디지털로 자동 조절되는 부조정실까지 갖추고 학생들에게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대학의 교수는 아마도 세계 방송국 사장 처음으로 자신의 대학방송국에 이런 첨단 장비가 설치됐을 것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또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미디어의 통합 추세에 따라 통합 미디어 연구실(Converged Media Lab)을 갖추고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이 방송카메라와 편집장비 조작 그리고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능력을 필수 과목으로 공부하게 하는 저널리즘 스쿨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미디어 관련 학과의 현장 실무위주의 교육은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여 졸업 후 취업을 훨씬 용이하게 만들어 줄 수밖에 없다. 관련 학과 교수들 역시 대부분이 방송과 신문의 관련분야에서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단순한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경험을 전달하고 있었다.

   
▲ 아리조나 대학교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 대학원 과정 수업장면 ⓒ 류희림

저널리즘 스쿨에서의 과목도 실무 위주로 아주 다양했다. 한 저널리즘 스쿨에서는  개설한 방송관련 학과의 과목을 나열하면서 그 수강 대상자를 뉴스 앵커, 기자, 아나운서, 편집자, 기획자, 프로그램 기획 제작자, 기사 작성 작가(news writer), 뉴스 진행 감독(program director), 광고제작자, 광고 마케팅 영업자, 컴퓨터 그래픽 제작자로 아주 광범위하게 예시하고 있었다.

이처럼 대학에서 집중적인 실습교육을 통해 그리고 방송현장에서 실전훈련을 거친 학생들의 방송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애리조나 대학의 저널리즘 스쿨을 방문한 날 마침 녹화로  진행됐던 졸업생들이 고별 뉴스프로그램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진행 기법뿐만 아니라 장비 역시 한국의 조그마한 방송국 수준을 능가하는 것이어서 미국방송의 발전의 뿌리가 바로 대학에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 아리조나 대학교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 대학졸업반 학생들이 마지막 뉴스진행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류희림

이상에서  나열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채용시스템과 그리고 양성 교육의 특성을 어디까지나 미국의 미디어 환경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그동안 한국 언론사들의 공개 채용 시스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온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고 본다. 디지털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는 이 시점에 몇 가지 과목의 필기시험과 며칠 안 되는 실습 평가만으로 필요한 인물을 뽑는 낡은 방식의 대규모 공개 채용시험제도(이런 필기시험으로 기자들을 뽑는 공채 시험 제도가 있는 나라는 선진국들 가운데 한국과 일본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를 언제까지나 유지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언론계뿐만 아니라  예비 저널리스트들을 양성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대학에서도  아래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전문성을 측정하지 못하는 소모적인 시험

단순히 원고지에 기사를 손으로 쓰고 그리고 녹음 리포트에 맞춰 그림을 편집하던 과거의 언론사 종사자들과 달리 디지털 시대에 사는 저널리스트들은 이전보다 몇 십 배나 높은 전문지식 습득에 따른 업무강도와 이에 따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요구받고 있다. 사회전체가 전문화되면서 모든 직업들이 치밀한 사전 준비와  자격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 입사자들에게는 몇 십 년째 거의 비슷한 일반적인 교양과 글재주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비록 영어를 못해도 시사 상식이 부족할 지라도 또 시험장에서 당황스러운 주제에 따라 써내려가는 글은 잘 못 쓸지라도 장기적인 기획이나 심층 취재를 잘 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저널리스트들도 있지 않을까?

규모가 큰 언론사들이 지금과 같은 형태의 대규모 공개 채용시험 시스템을 계속하는 한  무수한 젊은이들을 이른바 '언론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위한 시험에  매달리게 됨으로써 언론 현장과 유리된 소모적인 시간 낭비만 계속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길게는 2∼3년씩 '언론고시'에 매달린 예비 저널리스트들은 언론사에 입사한 이후 거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한다. 자체 회사 연수에서부터 언론관련 단체에서 제공하는 연수까지 입사 후 첫 1∼2달은 연수에 매달려야한다. 그래도 막상 현장에 나가면 새롭게 다시 배워야 한다.

몇 년 전 모 방송사 기자가 생방송되는 사고 현장에서 희생자 가족에게 불쑥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라고 묻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슬픔을 추스르지 못해 가슴이 메여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가족이 무슨 소감을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사고현장에서 희생자 가족에게는 그런 황당한 질문이 아니라 "숨진 아드님의 나이는 얼마였습니까?" "숨진 따님을 마지막 보신 적이 언제였습니까?"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풀어 나가야한다는 인터뷰에 관한 기본 지식만 가졌어도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이나 이를 TV로 지켜보는 시청자들까지 가슴 답답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 때가 있었다.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런 저널리스트로서 기본 자질쯤은 언론사 시험을 위한 공부로 길러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전 훈련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문제는 보통 수 천명의 지원자들을 상대로 치르지는 지금과 같은  언론사의 대규모 공채시험이 현재와 같은 과목과 절차를 유지하는 한 아무도  이런 사전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과 산업현장, 산학협동은 커녕 산학괴리

필자도 대학에서 언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학과를 전공 한 뒤 여러 언론사의 입사 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신 뒤  몇 가지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방송사에 입사한 전형적인 '언론고시'출신이다. 기자 등 저널리스트들이 사회 현상을 전문적인 지식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상식인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관찰한다고 볼 때  대학에서의 전공과목이  저널리스트로서의 꿈을 가지는데 장애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에서 저널리즘과 관련한 학과를 전공한다면 그들의 공부가  언론 현장과 유리돼서는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이런 관점에서  적어도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언론관련 과목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미국의 저널리즘 스쿨과정을 살펴봤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언론 관련 학과를 공부하면서 언론 현장과 유리된 공부를 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방송관련 공부를 하면서 카메라나  편집기 등 방송현장에서 실제 쓰이는 장비 한 두 가지쯤은 다룰 수 있는 기능을 익혀야하는 것은 기본이 아닐까 한다. 대학 저널리즘과정에서의 실무위주의 교육이 실효를 거두려면 결국  언론현장과 연계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방송과 신문에서는 대학과의 연계를 꺼리고 있다. 인턴 대학생들이 오면 오히려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나  따로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귀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일부 신문사에서 대학생 인턴 기자 등의 명목으로 인턴기회를 제공하지만 극히 소수에게만 기회가 돌아갈 뿐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의 교육과 언론현장에서의 실무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면서  산-학 협동은커녕 산-학 괴리라는 기현상을 초래하게 해 대학과 언론현장간 괴리의 간격을 갈수록 더  벌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학에서 언론관련 전공을 하는 것이 언론사 입사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예비 언론인들 가운데 언론관련 전공자는 물론 비 전공자들까지도 언론 관련 과목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현상으로 인해 '언론고시'과목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설 학원이 성업을 하는가 하면 이에 편승해 제법 이름 있는 방송국들까지 무슨 무슨 아카데미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수업료를 받고 학원생들을 모집하고 있는 학원 경영까지도 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인사 적체와 내부 의사소통의 부재

이러한 대규모 공채 시험을 통한 언론사 입사 제도는 조직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른바 공채기수로 대변되는 마치 군대조직과 같은 연공 서열화는 상명하복과 같은 경직된 문화를 초래해 가장 자유로워야 할 언론사 내부의 의견 개진 등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배 기수에게 모멸감을 주는 언어 폭력은 물론 신체 폭력사태까지 일어난 사례를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찾아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공채 시험으로 대변되는 독특한 조직 문화 때문이다.

같은 날 입사를 했다고 해서 모두가 능력이 같은 것이 아닐진대 입사 연월일의 우선 순위가  능력의 앞섬으로 간주되는 현재와 같은 공채 기수 문화는 조직 전체의 발전에 정체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사에서는 심각한 내부 인사적체와 구성원간의 불협화음을 야기하기도 한다. 능력보다는 선배기수의 우선 승진 등으로 인해 후배 기수의 인사 적체를 가져오기도 하고 또 후배기수가 먼저 승진한 경우 선배기수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공채기수'라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동지의식은 외부의 우수한 인력이 중간에 끼여 들어오는 것을 반길 리가 없다. 과거처럼 직업의 분야가 한정돼 있고 또 시청자와 독자로 대변되는 수용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원천이 기껏 방송과 신문 등 몇 가지 안 되는 시대에는 저널리스트들은 수용자들보다 앞서 접하는 통신기사나 현장 발표만으로 제법 정보 입수의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자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가 일반 수용자들에게 열리면서 수용자들은 언론사 종사자들보다 더 빠르고 더 깊은 정보를 수시로 접하고 있다.

이제 가장 경직되고 배타적이라는 공무원 조직까지 외부의 전문인력을 공개모집하고 있는 마당에 정보의 첨단에 서서 가장 앞서나가야 할 언론사의 채용제가 아무리 훌륭한 자질을 가졌다고 해도 그날 하루 컨디션에 따라 당락을 좌우하는 몇 과목의 필기시험에 언제까지 의존할 것인가는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미국언론사들의 경우 철저한 능력위주로 평가가 이뤄진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특종이나 탁월한 방송 진행 능력 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는다. 그럴 경우 다른 언론사에서 많은 연봉을 주고 스카웃의 손길을 뻗치기도 한다. 우리 언론사의 전문기자나 대기자제도가 잘 운영되지 않는 것도 그 이면에는 이러한 공채 시험으로 파생된  공채기수제도의  연공 서열화라는 암적인 병폐가 도사리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면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진 한국 언론사들의 공채 시험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미국식으로 단번에 개별 스카웃이나 개별 채용식으로 가기에는 마치 대학 입시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여러 가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또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돼 온  미국의 언론관련 산업 현장과 관련 대학 학과의 긴밀한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한국의 대학과 언론 관련 산업 현장에 억지로 강제할 수도 상황에서 우리 언론사들이 채용시스템을 어떻게 전향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언론사들과 대학간의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한다. 따라서 우리 언론사들과 대학이 현재의 공채 제도가 가지고 있는 병폐를 개선하면서 체계적인 전문 언론인 양성교육을 위해 이른바 산-학 연계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언론인 양성전문 연수기관은 어디에

언론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보편적인 사회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전공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동의를 한다. 그러나 저널리스트를 희망하는 예비 저널리스트들에게 사전에 저널리스트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은 특정 방송국에서 영리목적으로 운영하는 사설학원이 아닌 공적 자금으로 설립된 언론인 양성 전문 연수기관이 이러한 역할을 맡아야할 것이다. 그 형태가 미국과 같은 저널리즘스쿨의 형태가 되든 단기 연수기관의 형태가 되든 어떤 형태로든지 저널리스트를 희망하는 그들에게 진짜 저널리스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책임과 사명감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자는 것이다.
 
그들이 현재와 같이 고시원 골방에서 그리고 도서관 귀퉁이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언론 현장에서의 실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소모적인 필기시험 공부에 매달리는 시간을 보다 생산적으로 바꿔주자는 것이다. 강의 형태도 낮시간 강의실 출석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야간 강의도 개설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인터넷 등 온라인 수강도 가능하게 해주면 희망자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 언론 재단에서 3년째 운영하고 있는 예비언론인 과정에 매 기수마다 지원자가 쇄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언론인 양성 전문기관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각 언론사에서도 이런 연수를 이수한 예비 저널리스트들에게 가산점을 준다든지 일정 과목을 면제시켜준다든지 특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야할 것이다. 

산업현장과 언론학계의 유기적 협동 필요

현재와 같은 한국의 언론사 공개 채용시스템이 바뀌기 위한 가장 큰 전제는 대학에서 언론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해야하고 언론사는 이들 예비 저널리스트들에게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실습현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의 저널리즘 관련 학과에서의 공부가 꼭 언론사 입사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언론사 입사를 원하는 예비 저널리스트들에게 언론사들은 현장 실습의 기회를 제공 해줘야할 것이다. 그리고 대학도 이들 학생들을 위해 현장 실무 경험이 풍부한 언론인들에게 강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대학과 언론 현장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잘 구축된다면 언론사는 언론사대로 사전에 충분히 훈련된 양질의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데다 퇴직하는 언론인들이 대학에서 후진 양성을 위해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남으로써 퇴직 언론인들의 경륜을 잘 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또 대학은 대학대로 언론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할 수 상호 보완적인 발전을 기할 수가 있을 것이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대학 교육은 언론현장과 상당히 유리돼 있다는 것이 언론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가운데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적인 경험이 없는 순수한 사회과학자들이 많은데도 그 원인이 있는 데다 현재 한국 언론인들의 상당수가 입사 전 전문적인 저널리스트로서의 양성 교육을 받지 않고도 지금까지 훌륭히(?)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굳이 사전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도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가히 미디어 혁명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언론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무섭게 바뀌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대학과 언론 현장이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신입공채와 경력 공채 적절히 배분해야

지금과 같은 필기시험 위주의 공개 채용제도를 당장에 바꿀 수가 없다면 특정 전문 분야에서라도 그 분야의 경력 있는 저널리스트들을 면접을 통해 뽑는 경력 공채를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의학 전문기자나 경제 전문기자 그리고 북한 전문기자와 패션 전문기자와 같이 각 분야의 전문성을 살린 저널리스트들을 경력심사만으로 뽑아나가면서 그 비율을 점차 늘려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일반 기자의 경우도 다른 언론사에서 경력을 쌓은 기자들 가운데 능력이 우수할 경우 과감하게 채용할 수 있는 스카웃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도 현재와 같은 경직된 채용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한 방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에서 미국식 저널리스트 채용과 양성 시스템을 우리의 공개채용시험제도와 비교해  우리 언론사가 보다 양질의 저널리스트를 양성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을 살펴봤다. 적어도 공개 채용시험을 거쳐 현직에 있는 언론인이라면 한국식 저널리스트 채용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론사 스스로 그리고 예비 저널리스트들을 양성하는 책임을 가진 대학 모두 이런 오랜 관행을 고쳐보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양측이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이해관계를 벗어 던지고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이에 따른 대학의 발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류희림 / YTN 편성운영팀장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