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이라는 보도비평프로그램이 이상호라는 10년차 MBC 기자의 개인홈페이지에 의해서 붕괴된 지 벌써 6개월에 접어들고 있다. 말하기를 '구찌스캔들'이라고도 하고 '구찌고백사건'이라고 한다.

   
▲ MBC 이상호 기자 ⓒ이창길기자photoeye@mediatoday.co.kr
수많은 누리꾼들은 '이상호의 고백'을 두고 엄청난 지지를 보내며 과분한 찬사까지 아끼지 않았던 것이 6개월전이다. 한데 이상호는 그 사건으로 감봉3개월의 징계를 받고, 취재권을 빼앗긴 채 MBC 라디오뉴스 편집을 하고 있다.

당시 필자는 이상호가 미국에 돌아온 직후,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했고, 그가 꿈꾸던 탐사기자의 길과 기자의 양심을 아주 절제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하는가하고 질문했을 때, 이기자는 뜬금없이 18년 전의 한 사건을 들추었다.

"이한열 선배가 연대 경영학과 2학년 과대표였고, 제가 1학년 과대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뒷전에 서 있는 사람이었죠. 18년 전 그날(6월9일)도 가장 선두에 이한열 선배가 섰고, 저는 그 뒷줄에 서서 '독재타도'를 외치는 순간, 한열이 형이 최루탄에 맞아 그렇게 쓰러졌고...이제는 뒷줄에 서서 비겁하게 살지 말아야지요." 그는 빚진 심정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시 홈페이지 마지막부분에 대해서도 물었다.

"오늘 떠나면 나는 내년 초에 돌아올 계획이다. 나의 출장계획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경우,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리고 각오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 일. 이를 위해 기자는 어쩌면 목숨 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할 수도 있다. 불명예와 누명... 자본은 자기 보호를 위해 그 보다 더한 오명을 기자에게 씌우려할 것이다. 두려운 가운데 형용할 수 없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은 이번 출장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분기점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대의 좌판 위로 주사위는 던져졌고, 활은 시위를 떠났다. 그저 담대하게 운명의 길을 걸어가리라..."

하지만 그는 단지 "자본의 정관계 전방위 로비의혹이고 수구언론의 정보취재와 특정 정치인에 정보보고, 그리고 언론사주의 뇌물전달의혹이다. 이 속에 한국에서 권력이라는 권력은 다 걸려 있다. 그들의 탈·불법 문제를 털어야 하고 털고 있기 때문에 정말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쓴 마지막 문단은 사실상 유언이라고 생각하며 썼다"는 말만하면서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하겠다는 말로 그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상호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마이뉴스에서 이상호 특유의 '홈페이지 독설'이 기사화됐다. MBC 메인뉴스 진행자였던 이인용의 삼성행을 비판한 '이인용 전무께'라는 제목의 글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지 못했고, 오히려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에서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 전규찬의 <이상호, 다시 마이크를 잡아라>는 글을 지난 주말에 접했다.

"이상호, 다시 마이크를 잡아라"

   
▲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지난해 7월 16일 방영분.
"....'순금으로 테를 엮고 수표다발로 촘촘히 짠 파리채로 언론사마다 기자 사냥을 벌인다'라고 가차 없이 까발린다. 고발 전문 기자다운 씩씩한 말투가 계속된다. '엊그제까지 공영방송의 앵커였던 보도국 간부'가 '하루아침에 삼성의 대변인으로 옮겨'간 것, 'MBC의 간판을 떼어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연단 받침대로 끌어간 것,' 그리고 'MBC의 기자사회는 자본의 태풍에 간판이 날아갔는데도 놀랍도록 침착'한 것을 자근자근 씹는다. 선후배 관계를 개의치 않고 심문한다. 자기가 속한 회사조차 눈치 보지 않고 질타한다. 몇 군데 우스꽝스러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투는 전혀 풍자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냉소적이지도 않다. 얼음처럼 차게 들리지만, 막상 그의 말투에서는 폭발 직전의 강렬함이 감지된다..."

그리고 전규찬은 마지막에 이렇게 외친다. "보통사람의 알 권리를 위해, 이 기자 나와!"

그래서 필자는 이상호가 미국을 간 까닭에 대해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사실'을 밝히라는 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밤 후배 기자로부터 전화 한 통이 날아든다. "형! 이상호 기자가 미국에 간 이유가 00그룹의 그리고 00일보의 000과 관련 있나요? 97년 대통령선거 불법비자금 문제라는데..." "누가 그런 말을 하데?" "정보기관 꼬리표를 달고 흘러 다니는데요..."
 
아~... 그 순간 뿌옇던 안개가 걷힌다. 지난 1월에 필자는 '수구언론'과 관련된 스캔들일 것이라고 막연한 추측만 했었는데, '그것이 00일보고 00이구나.' 명쾌해진다. '자본'을 '00'으로 대체하면 '00의 전방위적 정관계 로비설', '수구언론'을 '00일보'로 대체하면 '00일보의 정보수집 및 정치권 제공설' 그리고 '언론사주'를 '000'으로 대체하면 '000의 뇌물전달설'? 그렇다면 정치권은 누가 받고 관계는 누가 받았지? 궁금증은 증폭된다.

후배 기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 당시 문건과 녹음테이프도 있다는데요?", "응 그건 알아!" 올 초 이상호는 자본과 관련된 문건과 녹음테이프를 찾으러 불과 1주일 동안 한국과 미국을 무려 4번이나 오갔다는 이야기, 그리고 문건과 녹음테이프를 확보하고 복사본은 제3의 장소에 숨겨두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단지 언론사명과 재벌명만 몰랐기에 당시 필자는 "이상호 기자, 미국 취재출장 그것이 궁금하다"는 제목밖에 달지 못한 것이다.

이제 MBC와 이상호는 재벌기업과 언론기관의 정관계 로비 및 불법 뇌물과 정치자금 제공 비리를 세상에 밝혀야 한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뇌물과 정치자금은 누가 받았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기자로서 언론사로서의 도리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어떤 그룹이며 누군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밝히는 것은 MBC와 이상호 기자의 몫이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욕먹을 각오를 하고 밝히지 않았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양문석 /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

   
필자인 양문석 박사는 저널리즘 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EBS 정책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뉴스비평> <신문의 왕국을 쏘다>(공저)
<미디어비평과 한국 TV저널리즘>(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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