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에 또 하나의 새로운 영어 조어가 등장했다. DJ, YS, JP, TJ, TK, PK, K1, K2 등에 이어 MK가 등장한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그 어원이 영어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 이름이나, 지역, 출신학교를 영어 머릿글자로 표현하는 줏대없는 짓을 언제 누가 무엇때문에 시작했는지 한번쯤 따져봐야할 때가 됐다. 그 무슨 ‘철학’이 있길래 우리 신문들은 그런 조어를 즐기고 있는가?

MK를 맨 처음 쓴 곳은 한국일보였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 30일자 무기명칼럼 ‘지평선’에서 ‘MK시대’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TK, PK에 이어 이번에는 MK시대’라는 말이 관가에 돌고 있다고 한다. 김대중씨의 대통령당선으로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출신에 의해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목포-광주등 호남출신 공무원들에게도 ‘볕들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바톤을 이어받아 조선일보가 취재기사에서는 처음으로 MK를 썼다. 이 신문은 3월4일자 검찰인사 예상 기사의 제목을 ‘TK-PK 가고 MK온다’로 잡았다. 이 기사는 “법무부-검찰인사에서 세칭 MK(목포-광주의 영문 이니셜로 호남권을 지칭)가 음지에서 나와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면서 ‘신발명품’ MK를 선보였다.

기사작성법의 제1원칙은 간단명료일 터인데 괄호를 써가면서까지 굳이 MK를 쓴 이유가 도대체 뭘까. 영어 조어사용에서도 지역차별을 없애려고 그랬나? 위의 두 신문에 뒤질세라 ‘중앙일보’는 사촌벌되는 조어를 만들어냈다. 3월 19일자 ‘유승삼칼럼’은 MKJ라는 용어를 선보였다. ‘MKJ시대의 명암’이라는 제목의 이글의 한 대목은 이렇다.

“말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 TK, PK, K1, K2 등에 대비되는 MKJ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YS때의 PK독식과 무엇이 다르냐’ ‘호남일색이구나’ 등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칼럼 속 어디에도 일곱개의 영문 조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독자를 무시한 ‘언론인 당신들만의 뒷골목 용어’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한국일보나 중앙일보 칼럼은 “관가에 돌고 있다”라든가 “말짖기 좋아하는 사람들은”이라면서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언론인 자신이 아니며 다른데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 있다.

그 자신들이 영어 조어의 최대 애용자였고 또 신조어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책임자’ 들임에도 말이다. 어쨋든 그렇게 만들어진 MK는 곧 다른 신문들에도 퍼졌다. 문화일보와 경향신문은 3월 20일자에서 검찰인사를 다루면서 MK를 따라 썼다.

무분별한 영어 조어 사용은 정치기사뿐 아니라 경제기사에서도 나타난다. 한겨레 96년 3월 14일자는 또다른 의미로 사용된 MK가 실렸다. ‘현대그룹 MK사단 득세’기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현대그룹에 `MK사단’이 득세하고 있다. MK는 정몽구 회장의 영문 이름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MK사단은 정회장이 그룹회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정회장을 보좌하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쓸데없는 조어를 사용한 탓에 첫 두 문장을 조어설명에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무분별한 영어 조어사용이 한국인의 언어사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 것은 조선일보 97년 11월 12일자이다. ‘MK-MH-JY 재벌2~3세 이니셜호칭 직원들에 확산’이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그런 조어사용에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하나의 ‘멋’인양 취급하고 있다. 왜 분명한 우리말 목포-광주, 대구-경북이 있는데 꼭 영어 조어를 써야 하나? YS, DJ 대신 김영삼, 김대중이라고 쓰면 무엇이 불편한가?

언론의 불필요한 영어조어 사용은 우리말을 갉아먹는 해충을 키우는 일이다. 천리안을 통한 기사검색을 해본 결과 조선일보는 지난해에 TK를 98번 사용한 반면 대구경북은 23번만 사용했다. 중앙일보는 88대 21이었다. 쓸데없는 조어사용에 우리말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어 조어 사용은 쓸데없는 멋부리기요, 말장난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문화의 이면엔 노동하지 않는 자들의 주둥이 노닥거림이 배어 있다. 무언가를 한겹 접어놓은 귀엣말 문화가 젖어있다. 판가르기를 좋아하는 꾼들의 모사가 있다. 김대중을 DJ로 하면 뭔가 색다르겠다고 생각하는 편집자들의 ‘우리말 다루기의 빈약함과 게으름’을 보여준 것이다. 언론계와 정계 모두가 잘못된 관성에 젖어산 탓에 버리지 못한 나쁜 습관이다.

또 하나의 쓰레기 MK를 따라쓰지 않은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겨레 등에 박수를 보낸다. 계속 쓰지 말자. 그리하여 그 단어를 탄생시킨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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