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4월3일 KBS이사회는 이사 12명중 8명의 찬성으로 서울신문 서기원사장을 KBS사장으로 대통령에 임명 제청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KBS노조는 “이사회의 결정은 정부의 압력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6공정권이 KBS에 관선사장을 임명함으로써 방송을 다시 홍보도구로 만들려는 전초작업”이라며 관제사장거부를 위한 총력투쟁에 돌입했다. KBS노조는 4일 즉각 비상총회를 열고 △서기원씨 사장취임 거부 △KBS이사장과 이사들의 즉각 퇴진을 결의하는 한편, 이사장실을 폐쇄하고 관선사장 취임거부 서명에 들어갔다. KBS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이 서기원씨를 KBS사장에 임명한 9일부터는 사장출근저지 시위를 계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KBS사태는 급기야 공권력이 투입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정부는 12일 낮 경찰병력 5개중대를 KBS에 투입, 서기원사장 출근저지 농성을 하고 있던 1백17명을 연행했다. 농성조합원들이 연행되자 KBS사원들은 각 실·국별로 △서기원사장 퇴진 △연행자 전원석방을 요구하며 프로그램 제작 및 업무거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같은 KBS의 제작거부투쟁이 장기화되자 정부는 30일 밤 11시 경찰병력 3천여명을 재투입, 조합원 3백33명을 연행하고 이중 11명을 구속하고 26명을 불구속입건했다.

KBS사태는 KBS비대위가 “방송제작에 복귀한 후 프로그램을 통한 방송민주화운동을 벌이겠다”며 서사장 퇴진 1백만명 서명돌입과 함께 5월18일 제작거부투쟁 36일만에 제작복귀를 결정함에 따라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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