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능력은 있었지만 그동안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지난 13일 MBC 보도국장에 고진(54) 전 보도제작국장이 취임하자 보도국 기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다. 고 국장의 전진배치는 여러가지 점에서 이채롭다. 그는 주요부서를 거쳐 보도국장에 오르는 언론사 ‘정통 코스’를 밟지 않았다. 그는 69년 PD로 입사한 뒤 7~8년이 지난 70년대 후반이 돼서야 기자로 전직했다. 그 후에도 라디오 편집부장, 기획담당부장, 문화과학부장 등 그는 언제나 ‘조연’의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런 고국장의 중용은 벌써부터 MBC 보도국의 중대변화를 예고케 하고 있다. 그는 13일 취임사에서 ‘졸거나 도장만 찍는 창가족’으로 비판받는 간부들에 대해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하라. 이번 인사에선 오직 업무에 대한 열정, 회사에 대한 애정, 상하 인간관계를 평가할 뿐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취임 직후 단행된 부장급 이하의 인사에서 혁신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20일 아침 고국장을 만
나 그의 구상을 들어봤다.

요즘 고국장께서 매일같이 자막, 원음처리 등 기술적 문제부터 간부들에게 골프 채널 시청하지 말 것, 아침보고시 연합통신 참고하지 말고 기자들이 발로 뛴 것을 보고할 것 등 보도국 개혁방안을 협조요청문 형태로 회람시키고 있는데.

“일부 기자들이 ‘포고령’이라고 표현하는 데 그런 것은 아니고 지난 세월 오류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다시는 이런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회람을 시키고 있다. 일에 엄밀하고 뉴스만 생각하라, 공사를 구별하라는 게 협조요청문의 요지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인 취재보도시스템 개혁을 구상중에 있다. 1년만 참아달라. 진실하고 공정하게 보도해 MBC 뉴스에 등을 돌렸던 시청자들을 돌아오게 만들겠다.”

지난해 MBC의 대선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보도시간 등 양적공정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나 엄밀히 따져보면 선거에 대한 취재기자의 인식과 식견, 공정성이 부족했다. 앞으로 진실을 가리고 덮진 않겠다. 여야의 인터뷰 길이를 똑같이 하는 문제 등 아직은 ‘기계적 공정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질적 공정성이 문제다.”

MBC 뉴스가 지나치게 연성아이템 중심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그동안 있었는데.

“그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겠지만 핫 이슈만 소개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게 방송 뉴스다. 철저하게 스트레이트 중심으로 가겠다. 그렇다고 연성 아이템을 전혀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 현상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라면 연성도 괜찮다.”

일각에선 현장 취재경험 부족을 단점으로 지적하는데.

“출입처 취재경험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자유롭고 새로운 개혁을 해나가는데 이로울 수 있다고 본다. 과대한 상상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관행을 과감하게 타파하겠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장이나 기자들에게 물을 준비가 돼 있다. 배울 것은 배우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개혁하겠다.”

고국장을 비롯해 주요 요직에 호남출신들이 대거 포진했다. 지역편중 인사 아닌가.

“취임사에서도 밝혔지만 지역은 절대 고려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누가 그 자리에 적합한가를 떠올리면서 투명하게 결정했다. 능력이 있음에도 그동안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을 중용했다. 그런데 결과는 역사적인 이유 때문인지 호남사람이 많이 됐다.”

인터뷰가 끝난 뒤 만난 한 기자는 고국장이 최근 보도국 회의에서 ‘대학생들 시위가 줄어든다’는 아이템이 올라오자 “대학생이 사회를 고민하지 않으면 누가 하느냐”며 “앞으로 이런 식의 아이템은 올리지 말라고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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