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공보처 산하 언론기관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예산은 물론 운영이나 위상 모두 구 공보처의 직할 기관으로 언론현장과는 거리가 먼 구시대적 행태를 보여 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보처 폐지와 함께 사실상 무주공산 격으로 남아 있는 언론 유관 단체들이 위상 정립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대한 정부,언론계 차원의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산하 기구의 개혁 방안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구 공보처 산하 언론유관 단체의 위상과 문제점을 진단한다.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25번지. 서울시내 한 복판에 서 있는 20층짜리 현대식 건물. 이 곳은 흔히 두 이름으로 불린다. 서울신문사 혹은 프레스센터. 언론인의 전당이란 ‘명예스런 호칭’과 함께 14년간 이곳을 지켜온 프레스센터는 과연 무슨일을, 어떻게 해왔을까.

프레스센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속에서 사라진 한 건물을 떠올려야 한다. 한국신문회관. 지금 서울신문사와 프레스센터 자리에 들어서있던 3층짜리 건물이다. 예식장 임대업까지 겸해 숱한 언론인들이 이곳에서 새 인생의 출발을 알리던, 말 그대로 신문사 종사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이다.

한 원로언론인의 회고담. “좋았지. 지하에 그릴이 있었어. 3류 양식집이었지만 일 끝나면 기자들이 수두룩했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정이 많이 가던 곳이야.”

권력이 주도한 프레스센터 설립

한국신문회관의 실종은 곧바로 프레스센터의 ‘굴절된 역사’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신문회관은 62년 5월 신문편집인협회 고재욱회장 등 언론기관 단체 대표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됐다.

신문회관은 81년까지 임대료 등의 수입으로 각 언론단체에 운영비를 지원하는 등 명실상부한 언론자율 단체였다. 75년까지는 일정부분의 정부지원금을 받았으나 76년부터는 정부 지원금 없이 임대료 등 자체수입만으로 운영·관리됐다.

그러나 81년 정부측이 서울신문 사옥 건립과 함께 한국언론회관 신축 계획을 수립하면서 언론단체들은 신문회관에 입주할 경우 언론회관 완공시 무상입주를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정부에 신문회관을 양도했다. 한 언론단체 간부의 증언. “정확히 표현한다면 뺏긴 것이지요.

당시 신문회관에 있던 모든 시설물들이 정부에서 설립한 한국언론회관에 넘어갔습니다. 심지어 유명화가들이 신문회관에 기증한 그림들까지 고스란히 가져갈 정도로 눈뜨고 당했지요.”

공익자금을 재원으로 건립된 프레스센터는 원 대지를 소유하고 있던 서울신문이 1층에서 12층까지, 공사비를 부담했던 한국방송광고공사는 12층부터 20층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

프레스센터는 형식상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임대 관리권만 행사하고 있다. 이같은 기형적 구조는 한국언론회관이 별도 건물이던 서울신문과 신문회관을 합쳐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신문회관 재설립 추진위측은 “5공 정권이 프레스센터를 신축한다는 이유로 신문회관 철거를 요청했고 언론인 단체들은 당시의 강압적인 사회분위기에 밀려 철거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순수 언론인 단체를 정부에서 강제로 해체하고 나아가 건물마저 빼앗은 만큼 당연히 언론인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율성 상실한 프레스센터

프레스센터는 설립초기 구 신문회관 입주언론단체인 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관훈클럽 등 4개 단체 추천 이사가 전체 비상임이사 9명중 5명을 차지해 형식적인 ‘지배력’을 행사했으나 수차례의 정관 개정을 거쳐 현재는 15명의 이사 가운데 6명이 언론단체 몫이다.

상임 이사가 2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운영이나 언론사업과 관련 언론단체들이 낼수 있는 목소리는 지극히 제한적 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기존의 임원진들은 예외없이 정부에서 낙점한 인사들이었다. 프레스센터 출범후 현재까지 재직한 상임이사는 모두 16명.

이들은 전원 정부에서 추천한 인사들이다. 상임 임원의 실질적인 임면권도 공보처 등 정부기관이 행사하고 있다. 현역 언론인들이 이 자리에 임명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공보처 퇴역 관료들이거나 여권과 가까웠던 전직 언론인들이었다.

역대 이사장 가운데 비정치인은 서울신문 사장을 역임한 4대 이우세 이사장이 유일하다. 이광표(1대)·이웅희(2대) 이사장 등은 문공부장관을 거쳤고 박현태(3대)·송용식(5대)·이상하(6대)·조남조(현재) 이사장 등은 모두가 민정당 국회의원 출신.

위인설관식 자리도 적지 않다. 단적으로 상임 감사직. 매출총액이 1백80억원대에 불과한데도 94년 상임 감사직을 신설해 청와대 경호실 출신등이 부임해 왔다. 일반 기업의 경우 매출액이 1천억원을 넘어서야 상임감사직을 신설하는 만큼 퇴역 관료들을 위한 인위적 자리만들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상임기구도 설립 당시 이사장 1명에 상임이사 겸 사무총장, 3개 집행부서로 구성됐으나 현재는 전무이사 1명, 상임 이사 3명, 상임감사 1명 등 8개의 집행부서로 확대된 상태.

이러다보니 프레스센터는 정부 단체의 로비에 약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일반 행정 관서 출입기자들의 외유 통로로 활용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언론 로비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 97년의 경우 프레스센터 자금으로 출입기자단이 외유를 떠난 것만도 10여회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경우 프레스센터 자체 결정이라기 보다는 해당 부처의 로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방만한 사업운영

프레스센터의 97년 총매출액은 1백 81억 5천만원. 임대료 수입 18억원, 정부광고대행수수료 1백 13억원 등이 주요 매출 항목을 차지하고 있다. 총 예산은 2백 2억원선. 이 가운데 인건비와 관리비의 비중이 4분의 1을 넘어서고 있다. 83명의 직원 인건비는 모두 36억원.

1인당 평균 4천 4백 55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건물관리와 정부광고대행이 주 업무인 프레스센터가 80명을 넘어선 직원을 두고 있는 점도 쉽게 지나칠수 없는 대목. 부차장급 중 상당수가 공보처 출신인데다 언론지원 사업이 주업무인 마당에 인건비 비중이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것이다.

기자협회 등 신문회관 재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은 신문회관으로 프레스센터 업무가 이관될 경우 현재 직원의 5분의 1 수준으로 감축해도 운영에 별 어려움이 없다는 시각이다.

적어도 낙하산 형태로 프레스센터에 입성한 간부들만이라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신문회관 재설립위측의 입장이다. 비단 인원문제만이 아니다. 사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프레스센터는 97년 세계화사업비, 지방화사업비, 국내언론사업 등으로 모두 27억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정확히 따지면 이러한 언론사업의 대부분이 언론인 외유에 사용됐다.

실제로 1억 7천만원이 집행된 지방화 사업비의 경우 지방지 사회부장과 정치부장단 해외 시찰에 사용됐고 세계화 사업비 역시 삼성, 엘지, 성곡, 관훈클럽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언론인 해외연수와 별다른 차이를 느낄수 없는 언론인 해외연수 사업비였다.

소위 ‘국내언론사업’도 실속 없는 사업 집행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4억 5천만원이 별다른 내용도 없이 구색맞추기식에 머무른 중앙·지방언론사 세미나 등에 보조됐다. 세미나 공화국이란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는 언론사 세미나의 중요한 젖줄이 프레스센터였던 것이다.

구 공보처 지시로 시행되던 사업도 눈에 띈다. 8억5천만원을 지출한 한국바로알리기 종합 홍보비의 경우 공보처에서 주관한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프레스센터의 전신 격인 언론단체에 대한 지원비는 17억원 정도.

신문회관 재설립추진위측은 “30여개 단체에 분산 지원돼 사실상 실질적인 도움으로 연결되고 있지 못한데다 자체언론사업(46억원)의 생색내기식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광고독점

프레스센터의 주수입원은 건물임대관리업이 아니다. 정부광고 대행이 전체 매출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프레스센터는 92년 당시 국제문화협회에서 수행하고 있던 정부광고대행권을 이관,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프레스센터의 정부광고 대행에 대한 법적 근거는 총리실 훈령이다.

프레스센터는 이후 정부에서 집행하는 광고의 11%를 수익으로 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정부광고대행 수수료 수입은 97년 회계보고서 기준으로 1백 13억원. 정부가 프레스센터에 정부광고 독점 대행권을 이관한 것은 해외언론인 초청 등 정부 차원의 국가 홍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프레스센터는 국제교류사업비 등으로 16억원을 사용했다. 국제언론 교류 사업의 경우 사실상 해외공보관 등에서 선정한 해외언론인들이 주요 초청 대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광고 독점 대행은 일반 광고대행사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제일기획의 한 관계자는 “광고시장이 한정돼 있고 더구나 IMF 한파로 광고대행사들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광고대행은 하나의 탈출구가 될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새정부도 시장경제원리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정부광고 대행을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일기획, 오리콤 등 주요 광고대행사들은 공정거래위 등에 정부광고 개방을 촉구하고 있으나 공정거래위의 관심은 미약하다. 이와 관련 공정거래위도 지난 93년 프레스센터의 정부광고대행을 ‘독점적 사업자’로 규정, 이에 대한 제재조치를 추진했으나 프레스센터의 반발로 무산됐다.

당시 프레스센터는 각 언론단체가 84년 무상임대를 조건으로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는 것을 이용, 언론단체의 연대 서명을 받아 공정거래위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언론단체의 무상 임대를 자신들의 존립 기반으로 이용해 온 셈이다.

프레스센터 어떻게 변해야 하나

신문회관 환수위측의 시각은 비교적 간명하다. 프레스센터를 해산하고 사단법인 형태로 신문회관을 재설립, 프레스센터에서 임대 관리권을 행사하고 있는 건물을 소유주인 광고공사가 신문회관에 무상기증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광고공사측은 세금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무상양도의 경우 3백억원 가량의 세금 납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문회관 재설립 추진위측은 “광고공사가 정부에 프레스센터 건물을 기증하고 정부에서 이를 다시 신문회관에 돌려주면 된다”며 과다한 세금 부담은 양도 의지가 없는 변명에 불과할 뿐 현실적인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신문회관 재설립위측은 언론단체들이 자율 운영할 경우 연간 10억원 정도의 언론기금 적립이 가능하고 이러한 재정을 기반으로 효율적인 언론지원 사업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정부광고 대행은 법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만 건물 임대 업무만큼은 언론단체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스센터의 입장

기본적으로 언론단체들의 환수요구가 부담스런 눈치이다. 프레스센터 사업부와 총무부측은 “현재 상태에서 프레스센터의 입장을 밝힌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사실상 정부에 의해 ‘생존권’이 맡겨져 있는 상황이고 특히 주무부서인 공보처가 폐지된 마당에 프레스센터 향후 위상 정립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부담스런 모습이다.

조남조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이사회에서 “신문회관 재설립 요구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시기상조”라며 언론단체에 양도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프레스센터 일각에선 언론단체들의 프레스센터 환수 요구를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연말 감사원이 언론단체들이 무상으로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리자 이에 대한 반발로 신문회관 재설립 등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 뒤에는 ‘정권 교체’라는 미증유의 정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프레스센터의 출발이 5공 정권의 유산이고 이러한 ‘원죄’가 새로운 정치 상황에서 어떻게 정리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새정부 언론정책에 간여하고 있는 국민회의의 한 의원은 “프레스센터 등 언론유관 단체의 경우 대대적인 통폐합과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이사장제 폐지 등을 포함해 거품을 뺄수 있는 방안을 검토중에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언론인의 전당’을 갖는 것이 이제 꿈만은 아닌 듯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