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내린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보라빛 수건’들을 적시고 있었다. 3월 18일 오후 2시 탑골공원 정문 앞.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소속의 양심수 가족들은 3·13 특사를 계기로 다시는 열리지 않길 바랐던,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를 또다시 열고 말았다.

2백21번째를 맞이한 이날의 목요집회에는 소위 문민정부가 단행했던 1백44명의 특사 규모의 절반에 불과한 김대중 정부의 3·13 사면조치에 대한 양심수 가족들의 실망와 배신감이 쏟아졌다. 한 마디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는 심정이었다.

“그날 옷가지를 챙겨들고 새벽같이 교도소로 달려가, 나오지 않는 자녀를 기다리다 오열을 터뜨리며 뒤돌아선 어머니를 차마 볼수가 없었다.” “50년만의 정권교체로 민주주의와 자유가 보장되는 체제가 갖추어졌구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첫 시험대였던 양심수 사면에서 보인 정부의 태도는 양심수와 그 가족들을 기만한 것이었다.”

남파 공작원으로 31년간 옥살이를 하고 이번 사면으로 출옥한 홍경선씨는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나와 무엇하겠느냐. 젊은이들이 나와야 한다”며 “내가 만난 그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며 다만 이 나라의 민주와 통일을 바라는 순수한 젊은이들이었다”며 한총련 관련 구속자들의 석방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3일 박상천 법무부 장관이 사면의 변을 통해 ‘체제전복자’와 ‘반성하지 않는 자’는 석방에서 제외했다고 밝힌 데 대해 이날 양심수 가족들은 이렇게 되물었다. “내란죄를 저질렀던 전두환, 노태우의 석방은 어떤 논리로 해명하겠는가. 그리고 과연 그들은 국민들 앞에 반성을 했는가.”

아직도 4백여명의 양심수를 가둬놓고 있는 현 정부가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 지 궁금해지는, 비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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