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자 본란의 제목을 ‘법정의 판결과 언론의 검증’으로 바로 잡습니다. ‘고급 언론 실종’은 제작과정의 실수로 2월 25일자 본란의 제목이 중복됐음을 사과드립니다.

미국의 연방헌법은 현대적 헌법의 모델이 된 세계적 유산이라고 미국은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정후 2백여년동안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헌법의 해석이 문제돼왔다.

그래서 법학자 해리 웰링턴교수(예일대학교)는 “미국 헌법은 살아있는 문서”라고 말한다. 돌에 새겨진 비문처럼 영원불변의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1928년 연방정부 기관원의 전화감청이 시비거리가 됐다. 전화감청이 제4 수정 헌법의 ‘부당한 수사 및 압수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논쟁이었다.

원래 제4 수정헌법은 전화감청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것은 아니었다. 연방 판사 루이스 브랜디스는 그러나 수정헌법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권리를 확대 해석했다. 정당화될 수 없는 프라이버시 침해는 그것이 어떤 수단으로 행해졌건 모두 제4 수정헌법위반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헌법학자 버나드 슈워츠 교수(털서대학교)도 과거 2세기동안 헌법을 진보적(리버럴)으로 해석한 판사·법률가·대통령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늘 ‘헌법 본래의 뜻’을 고집하는 보수적 근본주의자들과 맞서, 헌법은 ‘당대인을 위해 존재하는 살아있는 문서’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 정치사상 초유의 정권교체로 혼란과 정치공백 상태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언론은 집권에 성공한 연립 여당과 ‘40년 권세’를 놓친 한나라당을 싸잡아 ‘정치권’의 이름으로 ‘정치부재(不在)’를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양비론은 지나치게 막연해서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18세기에 만들어진 헌법의 ‘보편적 규정’을 20세기의 문제를 다루는 구체적 원칙으로 끊임없이 재해석해 온 미국의 경험을 참고로 삼을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문제의 출발점은 ‘연립 여당’의 성립에 있다. 대통령선거를 통해 대통령당선자와 국민사이에 연립여당=연립정부=김종필총리라는 일련의 정치적 약정(約定)이 성립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총리인준권은 미국 보수파처럼 헌법의 조문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 헌정사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조문과 정치현실의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김대중대통령 정부의 연립내각을 ‘나눠먹기식’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권력 나누기식 연립내각은 서유럽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다. 비난해야될 것은 소수파벌에 의한 권력의 독점이지 권력 나누기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한나라당이 김종필총리 인준을 거부하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경제난국을 풀어가기에 적합치않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총리가 경제전문가여야 경제난국을 풀 수 있다는 논법은 성립될 수 없다.
또 한쪽에서는 김종필씨가 ‘내각책임제 개헌론자’라는 점을 반대이유로 꼽고 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경제파탄에 직면한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이유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한가한 말이다. 적어도 개헌에 반대하는 다수당이 존재하는 한 개헌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한나라당 자신이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과거의 집권당으로서 오늘의 경제파탄에 책임을 져야할 입장이다. 한나라당내 강경파의 선봉은 초선의원들이라고 했다. ‘초선’인만큼 과거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하필 그 집단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편리할대로 말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한나라당을 ‘야당’이라하고, 한나라당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반세기 정치사상 야당이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국특유의 의미와 이미지가 있다. 민권과 민주적 원칙을 위해 강압적 권력독점세력과 맞서온 정당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은 정권을 놓친 실권당(失權黨)일뿐, 전통적 의미의 ‘야당’은 아니다. 연립야당의 성립이라는 새로운 헌정사적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은 과거를 반성하는 자세로 보다 겸손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한나라당은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을 법정으로 넘긴 것이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건 헌정사상 중요한 결정이 될 것이다.

언론은 양비론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역할영역을 스스로 넓혀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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