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윤홍준씨를 통해 방북을 추진하려다 30만 달러의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은 우리 언론의 방북취재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윤씨는 SBS측에 30만 달러를 요구하며 “다른 언론사는 이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언론계와 정보기관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방북을 추진하는 언론사가 조선(북한)측으로부터 초청장을 얻어내기 위해 조선족이나 재미동포 등 방북 브로커에게 거액의 미화를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사의 경우 SBS처럼 공개되진 않았지만 브로커에게 사기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제일영상 심현우 사장은 조선(북한) 영상물을 들여오기 위해 거액의 미화를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방북취재는 분단된 민족간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교류의 물꼬를 튼다는 차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방북취재가 브로커를 통한 뒷돈거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사들의 방북동기를 의심케 만들고 있다. 방북취재가 사세 과시를 위한 또다른 물량경쟁으로 변질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런 물량경쟁은 결과적으로 브로커들의 몸값과 조선(북한)측의 일방적 결정권만 높이는 ‘제살깎아 먹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짙다.

지난해 통일원은 대기업들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뒷돈을 뿌리고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언론들이 대기업들을 질타하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다. 자신의 뒷거래는 ‘현실’이고 남의 그것은 ‘부정’이라는 우리 언론의 해묵은 이중잣대가 여기서도 읽혀진다.

윤씨가 안기부의 내부 협조자라는 사실도 방북취재 현실의 또다른 단면을 드러내주고 있다. 윤씨 뿐만 아니라 방북 브로커로 행세하는 조선족 및 재미동포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조건상 안기부와 어떤 식으로든 협조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조선(북한)측 인사를 접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한국측 인사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면 안기부의 묵인과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일간지 홍콩특파원은 방북통로 등을 타진할 때 안기부와 협의할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안기부는 언론의 방북취재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정보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조정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사 관계자들은 현재의 남북상황에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북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현실론을 제기한다. 통일원, 안기부 등 정부당국이 선별허용 조치와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있고 조선(북한)측의 초청장이 있어야만 방북을 허용하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 방송사 간부는 “방북취재가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에도 이런 구조가 방치되는 것은 문제”라며 “앞으로 새 정부는 방북취재에 대한 새로운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앞서 언론사들이 ‘경쟁사 따돌리기’와 ‘선점’이라는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순 없겠지만 대국적인 견지에서 방북취재는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각개격파가 아닌 공동대응으로 모색해보는 발상의 전환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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