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자기 자랑

지난 해 12월24일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사람들'이란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일보 기자들의 면면과 '활약상'을 소개하는 책이다. 미디어 오늘의 안경숙 기자가 취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책 내용이 대부분 자랑 일색이라 조선일보에서 직접 출판할 경우 외부에서 쏟아질 비판을 고려해 자사에서 직접 출판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인터넷판 1월9일자는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소개하면서 소설가이면서 조선일보 기자, 논설위원로 활동했던 선우휘(鮮于煇, 1922~86) 전 주필에 대해 "군사정권의 압제에 굴하지 않는 기개와 직설적이면서도 정감어린 글로 언론인의 정도를 지킨 거인"으로 한껏 치켜세웠다.

   
▲ 9일 조선닷컴에 오른 <조선일보 사람들(2) - 선우휘 전 주필> 기사.
'언론의 정도를 지킨 거인' 선우휘 전 주필?

조선일보 인터넷판은 기사를 통해 <윤전기 세우고 'DJ 납치사설' 쓰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감사원장 제의 거절> 등의 표제를 통해 선우휘 전 주필을 마치 독재에 항거한 투사나 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또한 1980년대 초 안기부에 불려가서도 민주화 인사를 보호한 일화를 들면서 그의 강직한 면을 부각시키려 한다.

선우휘 전 주필은 지금의 조선일보를 있게 만든 인물이며, 현재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에 비견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과연 그는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독재에 저항한 기개를 지닌 인물이었을까.

'체면 위한 언론자유선언'이 독재에 저항한 기개인가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방우영 당시 상무가 편집국장 직을 제의했을 때 "방 상무가 정도를 벗어나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 말한 일화를 들며 그를 강단 있고 사심 없는 언론인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방우영은 박정희의 독재에 맞서 언론자유 운동이 일어나자 기자 30명을 해고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선우 전 주필은 언론자유 운동에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선우휘는 조선일보 해직언론인들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이때 그는 왜 후배기자들에게 가만히 있느냐고 말했냐는 해직기자쪽 변호사의 질문에 자유언론수호선언이 '옳은 일이니까 해야 한다기보다는 조선일보의 체면을 위해 남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사 2권', 한겨레신문사, 269쪽에서 인용)

이처럼 '체면을 위해' 언론자유선언을 했다고 한 그를 두고 과연 강직한 기개를 가진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언론자유 실천은 주제넘은 짓?

조선일보의 궁색한 자기 미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우 전 주필이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가리켜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나"라고 일갈한 사례를 들면서 조선일보에도 독재에 맞선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부각하려 든다.

하지만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은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며 박정희와 가깝게 지내는 등 유신 권력의 한 축을 상징하고 있었고, 1974년에는 편집국장이 유신지지 발언까지 실었으며, 이에 항의하는 기자 두 명을 '하극상'이라는 군대식 표현을 써가며 해직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선우휘는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독재에 저항하기는커녕 언론자유를 위한 행동에 대해 '주제넘은 짓'이라 폄하하기도 하였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실천을 위해 기자협회 분회의 회보를 발간하였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신문제작을 하는 일도 벅찬데 그런 것까지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라고 말했다. 변호인이 다시 '들어가야 할 기사가 빠지든 깎이든 기자는 기사만 써내라 이 말인가'라고 질문하자 선우휘는 '그렇다'라고 명쾌하게 답변했다. 변호인이 선우휘의 글을 인용하여 '언론이 병들어 빈사상태'에 놓여도 '모든 것을 사장에게 맡기고 가만 있어야 하는가'라고 되묻자 선우휘는 '물론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사 2권', 한겨레신문사, 269쪽에서 인용)

조선일보의 역사 왜곡, 독재에 영합한 과거에 대한 궁색한 미화

'언론이 병들어 빈사상태'에 놓여도 '모든 것을 사장에게 맡기고 가만 있어야'한다고 말한 그를 어찌 언론인의 정도를 지킨 사람이라 일컫는단 말인가. 이는 명백한 역사에 대한 왜곡이다. 정반대되는 사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조선일보의 기술이 무섭기까지 하다.

심지어 선우 전 주필은 1980년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의 자유를 붙잡고 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감상적인 처사"라 주장하기도 하였다.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가 벌어지자 조선일보는 가장 앞장서 '언론자유에 대한 탄압'이라며 목청을 드높였다. 선우휘를 통해 과거를 미화하려 들면서 무슨 생각으로 조선일보가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는지 의문이 든다.

독재에 영합한 과거는 묻어둔 채, 특정 사건만을 부각하며 '독재에 항거한 언론' 운운한다면 가히 개구리가 뱀을 삼키고, 개미가 코끼리를 밟아 죽이는 형국이다. 이런 식의 맹목적 자기 미화는 오히려 과거 독재에 부역한 행위를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지금 조선일보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아전인수식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두웠던 행각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다.



곽상준 / 언론비평웹진 '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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