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동 수무상 도무수유(山不動 水無常 道無水有). 바다의 맨 아래에는 '움직이지 않는 역사'가 있고 그 위에는 '완만한 리듬을 가진 역사'가 있으며 맨 위에는 '표면의 출렁거림'이 있다. 출렁거림에 시선을 뺏기지 말고 바다 제일 아래 구조를 중시하자. 이는 급박한 사회를 다루는 언론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지 않을까."(신영복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출렁거림에 시선을 뺏기지 말고 바다 아래 구조를 보자"

   
▲ 8일 저녁 언론광장 송년의 밤 행사에서 신영복 선생이 <고전을 통해 보는 우리사회의 성찰과 전망>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
8일 '신영복 선생 초청강연 및 2004년 언론광장(대표 김중배) 회원 송년의 밤' 행사가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열렸다. 신영복 교수는 이날 '고전을 통해 보는 우리사회의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주역과 논어 등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언론의 역할에 대한 사색을 전했다.

신 교수는 먼저 '신문과 관련된 쓰라린 추억'으로 말문을 열었다. 실상 '신문지'와 관련된 쓰라린 추억에서 신 교수는 "70년대 초반, 교도소 공장에서 작업재료를 포장했던 오래된 신문 쪽 하나를 밤에 몰래 방으로 가져와 보다가 교도관한테 발각됐다"며 "보안과가 출동해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먹을 만큼 신문지를 찢어 먹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제일 마지막 사람에게 남은 양이 많아 화장실에 들어가 처리하고 나왔는데, 이튿날 화장실의 내용물을 운동장에 다 퍼서 깔자 씹다 만 신문이 나와서 굉장히 경을 쳤다"며 신문에 대한 아픈 추억을 전했다.

그러나 이 '신문지와 관련된 쓰라린 추억'은 바로 신문과 관련된 비판으로 이어졌다. 신 교수는 "출소하고 나니까 많은 신문이 있는데, 오히려 신문 때문에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감옥 안에서는 정보가 하나만 있어 그걸 가지고 대단히 이론적인 사고를 해야하나, 밖에 나오니까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있어 논리성이 낮아지는 느낌을 받게된다"고 지적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 8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언론광장 송년의 밤 행사가 열려 신영복 선생이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
신 교수는 주역의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군자는 가마를 얻고 소인은 거처를 빼앗긴다'(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상구 석과불식 군자득여 소인박여)는 구절을 들어 언론이 사회의 잠재적인 역량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신 교수는 "가을에 잎사귀 다 떨어진 감나무의 '씨 받는 과실'(碩果)은 먹지도, 먹히지도 않는다"며 "거품인 잎사귀를 다 떨어내고 남은 알몸, 즉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한 사회의 뿌리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이고 이를 키워내는 것이 정치 경제적인 구조를 키우는 것"이라며 "군사정권이 형식적으로 청산됐을 때 2만불로 가는 게 아니라 5000불로 가더라도 자립적인 구조로 가는 고민을 한 번쯤 했어야 한다. 언론이 사안만 뒤좇아가지 말고 사회가 가지는 잠재적인 역량에 주목해달라"고 부탁했다.

자본운동논리 '동'(同)에서 평화공존논리 '화'(和)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라는 논어 구절을 들어 신 교수는 자본운동논리에서 평화공존논리로 나아가자고 제언했다.

신 교수는 특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구절을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고 읽는 것은 동양의 대(對)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화(和)란 나와의 차이를 승인하는 것이고 다양성을 인정해 평화공존 하는 것인데 반해, 동(同)은 자기 것으로 동화해야 하는 것이고 흡수합병과 지배통합을 뜻한다"며 "자본의 운동논리인 동이 콜럼부스부터 이라크까지 계속돼왔으나 이제는 화의 논리가 세계와 한반도 통일의 원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 교수는 논어 중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족식(足食), 족병(足兵),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之)이다. 자공이 묻기를 이 셋 중에 하나를 버린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병을 버려라(去兵). 나머지 둘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식을 버려라(去食). 예부터 사람이란 죽지 않을 수 없지만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서지 못한다'(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공문정 자왈 족식 족병 민신지의.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삼자하선? 왈 거병.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이자하선? 왈 거식. 자고개유사 민무신불입)는 구절도 전했다.

신 교수는 이 구절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신뢰(할 만한)집단이  있는지 고민이다. 사법, 행정, 제도정치권, 언론, 교육, 종교 등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신뢰집단이 없는 경우에는 일반 국민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국면을 넓혀 정치목표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혁의 시작과 끝은 언론이 해야 한다"

신 교수는 마지막으로 노자의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매우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라는 구절을 우리 시대의 실천적인 지침으로 제시했다.

신 교수는 "바다는 모든 시내를 다 받아들여서 '바다'다. 오늘날 모든 실천적인 원리는 바로 물의 철학"이라며 "(물이 아래로 흐르듯) 하방(下方)연대를 해야지 상방연대는 권력연습이나 추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20세기 가장 강력한 정치권력이었던 파시스트정권과 프롤레타리아좌파정권도 변혁을 못해냈다. 노동운동은 더 약한 운동으로, 대기업노조는 중소기업노조로,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애정 있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며 "모든 변혁의 시작은 사상투쟁이고 그 변혁의 시작과 끝은 언론이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한편 강연회 이후 시작된 송년회 인사말에서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망년회'는 제국주의나 군부독재 권력이 지나간 역사를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기억하기를 원치 않아 나온 말"이라며 "과거를 불문에 부치는 것은 지배권력이 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말은 '과거를 망각의 동산에 파묻지 마세요'라는 말이어야 한다"며 "전파 및 활자매체로 군림하고 있는 사람들이 뉴미디어도 장악하게 묵과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한국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자"는 뜻을 밝혔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신 교수는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당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신 교수는 20년20일을 복역하다 1988년 8월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등을 강의해왔으며 1998년 3월13일 사면 복권됐다. 저서로는 <감옥으로부터의사색>(1988),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1, 2>(1998)가 있으며,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사람아 아! 사람아>(1991), <노신전>(1992, 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1994, 공역)이 있다.
인터넷홈페이지 http://shinyoungbok.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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