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복 어린이의 생가. ⓒ 연합뉴스
이번 사건에서의 쟁점은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 있었느냐 여부이다. 재판부는 조선일보가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인정해 조선일보와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재판부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조선일보가 제출한 필름 원본 15장을 제시했다. 사진에 대해 언론사가 타언론사에게 필름을 통째로 제공하지 않는 점, 필름에 조작한 흔적이 없고 완벽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조선일보 사진기자가 68년 12월10일에 촬영한 사진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선일보 강인원 기자와 경향신문 강한필, 이봉섭 기자가 서로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조선일보 사진기자 노형옥씨가 이봉섭을 봤다고 진술했다는 점도 들었다.

재판부 "조선일보 기자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제출한 사진이 결정적"

재판부는 또한 다른 신문사가 살해장소가 방안이라고 지적했지만 조선일보는 마당이라고 쓴 것과 관련, 다른 신문 기사에도 '마당' '퇴비장' 등이 나오는 등 오류가 많아 조선일보가 현장에 없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조선일보 강인원 기자가 송고장소라고 밝힌 대관령 목장에서도 송고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피고인 김주언 한국언론재단 이사(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와 김종배 시사평론가(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는 재판부가 조선일보와 검찰측이 제기한 정황과 개연성만을 근거로 채택했다며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고쪽 변호사인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부가 결정적인 증거라고 인정한 조선일보 제출사진에 대해 "현장에 조선일보 기자는 없었으며, 조선일보 지국장이자 사진관을 했었던 김진우씨가 찍은 것을 얼마든지 입수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그 사진을 조선일보가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조선일보가 촬영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피고인측은 조선이 제출한 사진의 논리구조가 완벽하다는 판결에 대해서도 "조선의 사진 15컷은 경향신문 강한필의 동선을 따라가고 있고, 사진에 강한필이 자주 등장해 이를 보도용으로 쓰기 위해 찍었다고 입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피고인측 "재판부, 검찰-조선일보가 제기한 정황만 채택" 

피고인측은 또한 "(살해장소에 대해) 당시 방안은 피가 흥건했고, 마당엔 참외만한 혈흔 외엔 없었는데 조선 기자가 현장에서 이를 봤다면 마당에서 살해됐다고 도저히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송고장소가 대관령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엔 집집마다 전화가 있었던 때가 아니고, 대관령쪽으로 간다고 해도 전화송고 장소는 횡계우체국이 가장 가까웠다. 또한 한국일보 박주환 기자는 강인원 기자가 강릉지서에서 송고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한 점을 고려해볼 때 강 기자는 동시에 두 군데에서 송고했다는 것인데 이는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사법부가 증거에 의한 판결보다는 반공이데올로기에 벗어나지 못하는 등 과거의 잘못된 신화를 파헤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정치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가 현장에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법적용에 있어서는 기사를 쓴 김종배 전 국장과 김주언 전 사무총장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김형태 변호사는 "취재해서 기사를 쓴 사람에 대해서는 위법성조각사유를 적용해 무죄 선고를 내려놓고 이를 근거로 전시한 사람에 대해서는 사실확인 노력이 없없다며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면서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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