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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산하 공안문제연구소가 지난 98년부터 참여정부에 들어서까지 언론 보도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 국가정보원, 국군 기무사령부, 경찰청 등 전방위적인 공안 수사기관의 감정 의뢰를 받아 용공, 찬양·동조, 반정부 등의 판정을 내린 뒤 수사기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무사 등 일부 수사기관은 감정 결과 이적성 판단이 내려지면 해당기사를 수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이 공안문제연구소로부터 제출받은 ‘감정서목록’을 분석한 결과, 공안문제연구소는 수사기관의 의뢰를 받아 언론보도 및 기고문, 언론사 출판 도서를 모두 101건 감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안문제연구소 관계자는 “감정한 결과는 모두 의뢰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공안문제연구소는 101건의 언론보도 등 표현물에 대해 ‘용공’ 5건, ‘좌익’ 1건, ‘찬양·동조’ 8건, 선전선동 1건, 반정부 7건, 문제없음 17건, 기타(반정부와 문제없음을 합쳐 적용한 것) 62건으로 판정했다.

공안문제연구소에는 국가정보원이 8건, 국군기무사령부가 8건, 경찰청 보안국 보안4과가 8건,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1, 2대)가 43건, 남대문경찰서가 3건, 경기도 경찰청이 1건의 언론 보도와 칼럼, 언론사 출판 저서 등에 대한 이념 성향 여부 감정을 의뢰했다.

언론사별로는 모두 21건의 기사와 기고문이 감정된 ‘월간 말’과 ‘디지털 말’은 ‘용공’이 1건, 찬양·동조가 2건, 반정부가 6건, 문제없음이 5건, 기타가 7건이었다. 말지의 경우 98년 2월호부터 거의 매달 감정이 이뤄져 용공 또는 반정부 판정을 받았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의 기사 등에 대해서도 모두 16건의 감정이 이뤄져 용공이 4건, 좌익 1건, 찬양·동조 1건, 문제없음 5건, 기타 5건 등으로 판정됐다. 정대화 교수가 98년 10월29일자에 쓴 <한국의 학살>이라는 글에 대해서는 용공의 판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또한 민중의소리 15건(모두 기타 판정), 민족21 5건(찬양동조 1건, 선전선동 1건, 기타 3건), 오마이뉴스 2건(모두 기타) 등 주로 진보 매체에 대해 집중적인 감정이 이뤄졌다. 국정원의 의뢰를 통해 연합뉴스(모두 6건) 정일용 기자의 기사(5건)에 대해 집중 감정이 이뤄졌는데, 이 중 <국가보안법 철폐운동 외면말아야>라는 기사는 찬양·동조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뉴스피플에 실린 문부식씨의 기고문 <문부식이 직접 쓰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5건(문제없음 판정)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기사 9건에 대해서도 감정이 이뤄졌다. 조선일보(문제없음)와 중앙일보(문제없음) 신동아(기타) 한국일보(반정부)의 기사와 기고문에 대해 각각 1건씩 감정했고,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의 글 13건에 대해서도 모두 ‘기타’ 판정이 내려졌다.(표 참조)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은 “국가기관에 의해 언론기사가 기준과 객관성도 없이 좌익과 용공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기자생활을 통해 인권유린의 현장을 셀수 없이 목격한 바 있는 만큼 국가기관의 감정업무가 중지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사자들은 충격스럽다며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중대한 사태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정일용 부장대우는 “공개적인 글 마저 뒤에서 심사를 한다니 섬칫하다”며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엄중한 사태로 언론계가 철저하게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을 실효성 있게 만들기 위한 법적용 이전의 실질적 단계”라며 “언론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8건의 언론보도를 감정의뢰했던 국군 기무사령부 관계자는 “언론보도를 검열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장병들이 인터넷에 퍼 올리거나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 것”이라며 “판정이 내려지면 경우에 따라 (소장하고 있는 매체 기사를) 수거하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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