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이 정부를 비판하자 조선일보 진성호 기자가 과거 자사의 최 교수 보도에 대해 "미안하다"며 때아닌 사과글을 조선닷컴 블로그에 올렸다.

최장집 소장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아세아연구' 가을호에 기고한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이라는 논문에서 현 정부의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사회경제관이 갖는 문제점과 사회경제적 문제가 정부정책 의제로 진전되지 못하는 풍토 등을 비판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2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됐다.

   
▲ 진성호 조선일보 기자 블로그.
조선일보 미디어팀장인 진성호 기자는 이날 조선닷컴 기자블로그에 <최장집 교수님, 미안해요>라는 글을 올리고 최 소장의 논문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이 했을 법한 발언" "구절 구절이 공감가는 이야기이고, 사회과학도로서 현 정책에 대한 과학적 비판으로 평가된다"고 소개하면서 조선일보와 최장집 교수와의 '과거사'를 거론했다.

'최장집 사건'을 "이른바 안티조선 운동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가 된 일"이라고 소개한 진 기자는 "월간조선의 최장집 인터뷰 기사로 촉발된 사건으로 이에 대한 최 교수측의 항의, 법적 소송, 조선일보의 가세, 그리고 최 교수측과 조선 측의 대립..."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당시 미디어 담당기자였던 저는 썩 내키지 않는 싸움이었다"고 회상했다.

진성호 "당시 최장집 교수에게 미안한 감정 있어…조선일보 대응도 문제"

진 기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양측이 대립하면서 서로의 입장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최 교수측은 최교수측대로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대로 일했다"며 "결과는 최 교수가 조선일보에 '월간조선 기사 비판을 포함한 내용을 담은 시론'을 싣고 소송을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고 설명했다.

진 기자는 이어 "당시 그 분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며 "최장집 교수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부분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나 월간조선이 이를 다룬 방식으나 내용에 대해서도 저는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 분명 있다"고 최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의 당시 대응방식에 유감을 표명했다.

진 기자는 "당시 사건의 진상을 따져 수치상으로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판단하기도 어렵겠고, 또한 누가 역사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냐는 식의 논쟁은 별도로 치더라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제가 판단하기에는 최 교수가 더 피해자인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조선일보에 실릴 자신의 시론이 들어있는 대장을 보여주러 갔다는 진 기자는 "그날 밤도 그랬고, 지금도 이런 말을 하고싶었다"며 "'최장집 교수님, 미안해요'(이 말속에 저의 자성도 담겨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최장집 사건으로 안티조선운동 본격화…대표적 마녀사냥식 색깔론 평가

진 기자는 "최장집 사건은 그 후 조선일보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실제 존재보다 훨씬 강하게 우파의 인상을 준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며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지지와 같이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입장은 조선일보 분명히 취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 내 많은 선후배 동료들은) 다양한 견해를 조선일보가 받아들여야 하고, 지금도 그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 월간조선 98년 11월호
진 기자가 거론한 최장집 사건은 지난 98년 월간조선이 11월호에서 최 교수의 저서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의 한 부분인 '한국전쟁의 한 해석'에 나타난 시각에 대해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전쟁관 연구>라는 글을 게재하자 조선일보가 이를 받아쓴 뒤 대대적으로 여론화작업에 나서 결과적으로 최 교수를 낙마시킨 사건을 말한다.

당시 최 교수는"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자신의 논문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고 어휘 문장을 의도적으로 문맥과 분리 인용해 자신의 사상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모해했다"며 반론청구소송과 월간조선 판매금지 가처분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조선일보와 전면전을 벌였었다. 조선일보도 거의 매일같이 최 교수를 비난하고 낙마시키려는 보수단체의 성명이나 주장,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발언이나 주장 등을 여과없이 게재했다.

당시 진성호 기자도 '마녀사냥' 대열 합류

이 사건은 최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의 마녀사냥식 색깔론이라는 비난을 사회적으로 불러왔고, 본격적인 '안티조선' 운동을 싹트게 했다. 98년 11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이 주도로 당시 국민승리21(현 민주노동당)·전교조·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참여연대 등 10여개 단체로 구성된 '조선일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조선일보의 선동저널리즘에 대한 공동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98년 10월27일자 조선일보 2면
당시 미디어담당 기자였던 진성호 기자도 이 같은 조선일보의 보도행렬에 합류했다. 진 기자는 98년 10월27일자 <"최장집위원장 사관 건국이념 정면부인">에서 '대한민국건국5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예비역대령연합회' '자유언론수호 국민포럼' 등 극우단체의 성명을 인용보도했고, 같은 해 11월5일자 <한쪽 눈만 뜨고 보는 한겨레신문>에서 최 교수 사상공세를 펴고있던 조선일보를 비판한 한겨레신문에 대해 보수단체의 성명은 한줄도 싣지 않았으며 "일방적으로 월간조선 보도를 무리한 주장으로 몰고 갔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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