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직접 모여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2015년부터 7년 넘게 운영했다. 제평위를 잠정 중단하고 새로운 대안 방향을 모색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네이버 관계자)

“지난해 제평위 2.0을 출범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더 많은 의견수렴을 통해 개선을 요구하는 사회적 여론이 점점 커졌다. 제평위를 운영하면서 의견수렴을 하기보다 잠시 멈춰서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양사가 여러 차례 협의한 끝에 (중단을) 결정했다.” (카카오 관계자)

▲네이버와 다음. 디자인=미디어오늘.
▲네이버와 다음. 디자인=미디어오늘.

네이버·카카오가 제평위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포털 양사는 2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운영위원회 회의를 열고 18명의 운영위원에게 제평위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만든 자율기구인 포털 제평위는 2015년 9월 설립돼 언론사 입점 심사 및 제재를 해왔다.

급작스러운 일방 통보에 위원들 반발

이날 회의에선 포털의 일방 통보를 비판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통상 제평위 사무국은 운영위원들에게 회의 전 안건을 미리 알려주는데, 이번 회의 때는 그렇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운영위원들은 불쾌한 심정을 내비쳤다.

회의에서 A운영위원은 “양사 포털이 (운영위원들에게) 제평위 중단을 제안하는 거냐”고 묻자, 카카오 관계자는 “그동안 제평위 운영과 심의에 간섭하거나 참여한 적이 없다. 시작과 끝맺음하는 것에 대해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운영위원들에게 이런 안건을 논의해달라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 결과적으로는 통보의 형태가 됐다”고 답했다.

B운영위원도 “2.0이 출범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위원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만두겠다는 건 신뢰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라며 “안건을 정식적으로 올리고 판단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발했다.

▲2015년 9월2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규정 설명회에서 심재철 한국언론학회 위원장(오른쪽 네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뉴스제휴평가위원회 규정합의안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5년 9월2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규정 설명회에서 심재철 한국언론학회 위원장(오른쪽 네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뉴스제휴평가위원회 규정합의안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평위는 그간의 운영을 점검해 기구와 심사 기준 전반을 개선하는 2.0 논의를 추진해온 상황이었다. 15개 단체가 참여해온 기존 구성을 개선해 3개 단체를 추가하고, 심사 방식도 운영위원들을 풀 형태로 구성하는 등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기수 운영위원회 첫 회의 이후 2차 회의가 무기한 연기됐고, 카카오가 제평위 탈퇴를 검토하는 등 과정을 거쳐 결국 ‘잠정 중단’을 통보한 것이다.

정권교체 후 강해진 정치권 압력

이번 잠정 중단 조치에는 정치권의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회의에서 B운영위원이 “정치권에서 제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포털에 개입하려는 게 보인다”고 지적하자 네이버 관계자는 “맞는 말이다. 일단 외풍 이런 용어를 쓰셨는데, 정치권도 물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주체 중 하나”라며 “언론에서도 제평위 2.0 방향에 대한 논의는 있었다. 여러 부분을 종합한 결과다. 2.0 시작 전에 한번 잠정 중단하고 다음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정치권과 언론의 압박 등을 고려한 조치라는 얘기다.

지난 3월28일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빅브라더 행태를 보이는 네이버의 오만한 작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도 포털을 가리켜 “선정적인 기사, 가짜뉴스, 편파보도, 이런 것들을 조장하기까지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제평위 법정기구화’를 논의하겠다며 지난해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를 가동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제평위 협의체 논의 결과 법정기구화에 부정적 의견이 많자, 2차 협의체를 다시 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가짜뉴스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포털 관련 개선 논의도 추진하고 있다.

▲과천정부청사에 위치한 방통위.
▲과천정부청사에 위치한 방통위.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제평위는 전형적인 시장 주도 자율기구다. 기업이 비용을 대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위원회 형식으로 가겠다고 한다”며 “민간 기구를 법정 기구로 만든다는 건 미디어를 통제하려고 한다는 거다. 시대착오적이다. (포털 입장에선) 그럴 바엔 해체해버리자는 판단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압력이 너무 과하다”고 평가했다.

C언론사 디지털 담당자는 “지난 3월 언론사들이 반발해 네이버는 아웃링크 도입을 철회했다. 언론계에서도 반발이 만만찮고 특히 정치권 눈치를 제일 많이 보는 것 같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정치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제평위 법제화를 하면 속사정을 정치권에서 다 들여다보겠다는 건데 (포털 입장에선) 차라리 제평위를 중단하고 한발 물러서 사태를 보겠다는 거다. 3년 정도 후에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했다. 그는 “무책임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대 포털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엔 ‘제재 무력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2021년 제평위는 기사형 광고를 수천 건 작성한 연합뉴스에 제휴등급 강등 제재를 내렸으나 연합뉴스가 신청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포털에 복귀했다. 2021년 당시 6기 제평위는 12월31일 양대 포털에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을 따르는 것과 별개로 네이버와 카카오가 본안 소송을 제기해 이 문제를 바로잡을 것”을 촉구했지만 양대 포털은 소송에 나서지 않았다. 이를 기점으로 언론의 가처분신청과 소송이 줄을 이었다. 연합뉴스와 같은 이유로 퇴출됐던 스포츠서울도 CP사로 다시 복귀하고, 코리아타임스 등 수십 개의 매체가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합뉴스.

여기에 지역언론 심사 논란도 제기됐다. 권역별 1개 매체씩 콘텐츠제휴(CP)를 맺는 지역언론 특별심사 결과 탈락한 경인일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경인일보는 지난해 10월16일 사설에서 “특별심사라는 이름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언론사를 합격시킨다는 게 이들의 공지인데, 평가점수나 과정 등을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기구 해산 가능성, 언론환경 ‘혼탁’ 우려도

제평위는 사실상 해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제평위 회의에서 양대 포털 측은 향후 공청회를 하는 등 공론을 모아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카카오가 제평위 탈퇴를 지속적으로 검토해온 상황에서 ‘잠정 중단’이 결정된 만큼 양대 포털이 제평위 설립 이전처럼 각자 제휴 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카카오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건 없다. 다양한 방안을 열어두고 고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논의를 주도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제평위 ‘잠정 중단’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포털위원회는 23일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는 그동안 제평위 구성의 좌편향이 뉴스스탠드와 뉴스 검색의 편향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며 “네이버와 카카오는 ‘잠시 소나기만 피하자’는 마음으로 제평위를 잠정 중단할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지적과 비판들을 깊이 새겨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을 촉구했다. 이른바 포털과 제평위 ‘좌편향론’을 내세워 제평위 법정기구화뿐 아니라 제휴 기준 마련 등 논의에 정치권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제평위는 ‘공’과 ‘과’가 공존하는 기구다. 제평위 출범 이후 언론의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 행위가 크게 줄었다. 제휴 언론을 사고파는 관행과 일부 기사형광고 문제에도 제동을 거는 효과가 있었다. 잡음이 많았지만 지역성을 구현하기 위해 지역언론 특별 입점 심사를 마련한 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D언론사 디지털 담당자는 “제평위 출범으로 당시 어뷰징 기사 등으로 혼란한 시장의 룰을 만들려고 했다는 점은 기여한 부분”이라며 “포털과 언론사 외의 시민사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기준을 만들어 자정 작용을 하려고 한 점, 지방지와 전문지도 포털에서 영역을 차지할 수 있게 고민한 점 등은 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경재 교수도 “정량이 됐건 정성이 됐건, 기준을 만든 점은 제평위의 성과”라고 했다.

그러나 심사가 주관적이고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D언론사 디지털 담당자는 “제평위의 정보 공개가 투명하지 않았다”며 “기사형 광고로 제재받았다면 똑같이 한 다른 언론사들도 제재받아야 하는데 받지 않는 곳도 있다”고 했다.

▲2015년 9월2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규정 설명회에서 심재철 한국언론학회 위원장(오른쪽 네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뉴스제휴평가위원회 규정합의안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5년 9월2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설립 규정 설명회에서 심재철 한국언론학회 위원장(오른쪽 네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뉴스제휴평가위원회 규정합의안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을 키우고 ‘과’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시점에 제평위 실험은 막을 내리게 됐다. 언론계와 학계 일각에선 제평위의 결정이 “무책임하다”고 입을 모은다. E 전 제평위원은 “제평위가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그나마 잘한 것이 ‘제재’ 역할이다. 언론과 홍보대행사 등이 제평위 제재를 신경 쓴 점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제평위가 중단되면서 앞으로는 기사형 광고를 비롯한 규정 위반 행위를 단속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C언론사 담당자는 “시장은 더 혼란스러워질 거다. 이 혼란스러움을 정치권의 책임으로 공을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포털 뉴스 환경이 더욱 혼탁해질 가능성도 있다. 미디어오늘 취재에 따르면 언론사들이 포털에 기사형 광고 등을 작성할 경우 제재가 이뤄지는지 문의하고 있다. 현재 포털은 제평위 사무국에서 제휴 위반 행위를 모니터링은 하지만, 제재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포털이 언론과 맺은 계약서에 따른 계약 해지 등 제재가 가능하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제평위가 없던 시절, 옛날로 돌아가는 거다. 당시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입점 심사를 따로 진행했다. 포털에 언론사들이 더 잘 보여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 됐다”며 “CP로 못 들어온 언론사들이 가장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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