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 언론이 경제 이슈에서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낸 대상은 ‘반도체’였다. 노동 문제를 비롯해 계층 격차, 고령화 등의 이슈는 사설에서 찾기 힘들었다. 경제 분야가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평가 중 상위를 차지했지만 사설은 그러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반도체를 다룬 사설이 윤석열 대통령 관련 사설보다 4배 더 많았고, 조선일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윤 대통령보다 더 많이 다뤘다. 언론이 기업 수익 위주 담론에 빠져 있다며 가치 다양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 빅카인즈에서 9개 일간지와 2개 경제지의 사설을 분석한 결과, ‘반도체’가 기사 건수 기준 1277건으로 1등을 차지했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 빅카인즈에서 9개 일간지와 2개 경제지의 사설을 분석한 결과, ‘반도체’가 기사 건수 기준 1277건으로 1등을 차지했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진보‧중도 성향 신문을 따로 분리하면 반도체가 2순위로 밀렸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진보‧중도 성향 신문을 따로 분리하면 반도체가 2순위로 밀렸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미디어오늘이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경제’를 키워드로 2023년(1월1일~5월18일) 9개 일간지와 2개 경제지의 사설을 분석한 결과, ‘반도체’가 기사 건수 기준 1277건으로 1등을 차지했다. 2등이 중국(1067건)이었고, 3등 민주당(561건)과 4등 윤석열 대통령(369건)은 1등과 큰 차이가 났다. 기업을 주로 다루는 경제지를 제외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고,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진보‧중도 성향 신문을 따로 분리하면 반도체가 2순위로 밀렸다. 해당 건수는 키워드와 뉴스의 연관성(가중치, 키워드 빈도수)을 고려한 숫자다.

‘반도체’가 이슈를 삼키면서 다른 키워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일자리’와 ‘인플레이션’이 언급된 사설은 각각 176건과 139건에 불과해 반도체가 언급된 사설의 10% 수준에 그쳤다. 가계부채와 직결되는 ‘금리인상’ 키워드도 112건에 불과했다. ‘기후위기’, ‘양극화’, ‘고령화’ 등의 사회 문제는 찾기 힘들었다.

시장의 한 구성 요소를 차지하는 ‘가계’와 ‘노동’ 키워드도 순위권에 없었다. 개별 언론사를 따로 분석해야 일부 신문에서 노동자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각 언론의 경제 사설 키워드 상위 50개(가중치순)를 뽑아 빈도수를 계산한 결과, 경향신문은 103개 사설에서 노동자 관련 사설이 13건(8등)이었고, 한겨레는 70개 사설에서 노동자를 7번(12등) 다뤘다. 다른 신문에서 노동자는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최근 반도체 경기 부진,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등 현안이 많이 발생했고, 특히 주식 투자랑 연결돼 사람들 관심이 컸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2일 통화에서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며 “더군다나 지금은 반도체로 인해 수출이 꺾이면서 경기 부진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무역수지 적자 문제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식하고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이슈가 가장 많이 오르내리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각 언론의 경제 사설 키워드 상위 50개(가중치순)를 뽑아 빈도수를 계산한 결과. 왼쪽이 중앙일보, 오른쪽이 경향신문. 자료=빅카인즈
▲ 각 언론의 경제 사설 키워드 상위 50개(가중치순)를 뽑아 빈도수를 계산한 결과. 왼쪽이 중앙일보, 오른쪽이 경향신문. 자료=빅카인즈

언론이 기업 수익 위주 담론을 이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22일 통화에서 “반도체는 당연히 중요한 이슈지만 기업의 수익 위주, 주식 투자자 관점에서만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주로 반도체를 많이 팔아 경제성장을 한다는 것인데, 결국 그것으로 고용 창출이 돼야 의미 있는 것 아닌가”라며 “사실 개인한테 영향을 미치는 건 반도체 제조‧공정의 노동자가 겪는 환경의 위험성이나 용인에 반도체 단지가 들어설 경우 지역소멸이 심화되는 문제 등 다양하게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반도체에서 종합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언론 보도도 그렇고, 재벌‧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시민사회나 노동조합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자신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투자자라고 여기는 인식이 더 많은 것 같다. 가치의 다양성 측면에서 투자자 관점으로 모든 문제를 파악하는 현상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언론 사설은 대부분 ‘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식의 기업 이권에 초점이 맞아 있다. 동아일보는 ‘삼성전자’ 키워드가 113건의 사설 중 10번 등장해 일자리(9번), 고물가(9번), 대통령실(8번)보다 많이 등장했다. 동아일보는 올해 상반기 〈美 신흥 제조벨트의 韓 기업들… 세계 산업 이끄는 ‘등대’ 돼야〉, 〈삼성 300조 반도체 국내 투자… 경쟁력‧고용‧균형발전 보루로〉, 〈용인 클러스터 전력 비상… ‘세계 반도체 허브’ 차질 없어야〉 등의 사설을 냈다.

尹보다 ‘文’ 더 많이 다룬 조선, 정부 견제 잘 이뤄지고 있나

▲ 지난 7일 오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 연합뉴스
▲ 지난 7일 오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 연합뉴스

정부에 대한 평가도 반도체 업계의 판단을 기준으로 이뤄졌다. 한국경제는 반도체 산업 현장과 소통하려 하고, 세제 혜택을 줬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경제는 지난 10일 〈尹정부 어느새 1년… 대한민국 미래 경쟁력 초석 놓으라〉 사설에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한 윤 대통령이 기업 기(氣) 살리기와 세일즈 외교에 진력하는 일관된 모습도 인상적”이라며 “정부가 반도체 배터리 등에 이어 전기차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해 최대 35%의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한 것도 고무적”이라고 했다.

지난달 12일 사설 〈대통령의 잇따른 기업 방문…투자 활성화, 현장에 답이 있다〉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기업 현장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제 그만 오셔도 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현장을 찾고, 기업인과 만나 함께 국부(國富)를 키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임기가 끝난 뒤 그런 대통령으로만 기억되더라도 절반은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30% 후반대 지지율을 보이는 윤 정부는 경제 상황 대처가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이번달 초 진행된 각종 취임 1주년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언론 사설에선 이러한 분위기가 잘 두드러지지 않는다. 9개 일간지와 2개 경제지의 경제 사설에선 민주당이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보다 많이 다뤄졌다.

▲ 지난달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 지난달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의 경제 사설 키워드 상위 50개(가중치순)를 뽑아 빈도수를 계산한 결과. 자료=빅카인즈
▲ 조선일보의 경제 사설 키워드 상위 50개(가중치순)를 뽑아 빈도수를 계산한 결과. 자료=빅카인즈

조선일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윤 대통령보다 더 많이 겨냥했다. 빅카인즈에서 경제 사설 키워드 상위 50개(가중치순)를 뽑아 빈도수를 계산한 결과, 조선일보의 84개의 사설 중 ‘문재인’은 13번 다뤄졌고 ‘윤석열’은 11번 다뤄졌다. 민주당 관련 사설이 21개 나온 것을 고려하면 정부 견제보다 조선일보가 ‘야권 때리기’에 골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일보와 세계일보 역시 윤 대통령보다 민주당을 더 많이 저격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0일 〈1분에 1억원씩 느는 나랏빚, 머지않아 한계 상황 올 것〉 사설에서 “국가 채무는 문재인 정부 5년간 가파르게 늘었다. 코로나 대응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재정 건정성을 무시한 채 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0차례나 추경을 편성해 퍼주기 국정을 한 탓이 컸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 지난 16일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지난 16일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도 공론화가 필요한 지점은 많다. 침체 국면에서 정부가 긴축재정을 고집한다는 점, 각종 세수 부족으로 인한 ‘펑크’ 우려에도 감세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 등이 학계의 주요 비판 대상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달 통화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국민 후생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취해야 하는데 재정건전성을 주문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감세 정책을, 한쪽으로는 지출 통제를 주문하는 건 정책 간 정합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중관계에 대한 언론 보도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반도체가 화두가 되면서 정부의 외교정책 또한 기업 목소리를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평가가 갈렸다. 정세은 교수는 “미국은 중국이라는 무역 파트너가 필요하고, 중국은 새로운 형태의 반도체를 만들 게 아니라면 기술이 필요하다”며 “결국 미국과 중국은 나중에 화해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그 이후의 한국 포지션에 대한 논의가 없다. 지금처럼 미국 일변도 외교를 하면, 이후 그룹이 생기는 과정에서 찬밥신세가 된다”고 우려했다.

▲ 사진=gettyimages
▲ 사진=gettyimages

하반기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상황, 반도체 이외에 언론이 주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무엇일까. 고금리‧고물가 시대에 한국의 극심한 가계부채는 ‘폭탄’으로 불리는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부분은 물가다. 물가는 실질 경제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금리 정책에도 상당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지금 중요한 부분인데 좀 덜 보도된 측면이 있다. 물가를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 조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성 교수는 “현재 스테그플레이션(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물가를 제어할 수밖에 없고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할 수도 있어 경기 부진 우려가 크다”며 “결국 언론에서도 경기 부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논의가 있어야 한다. 금리를 낮추긴 어려운 상황에서 가계부채 문제도 생길 수 있다. 현재 이슈가 많이 없는데 지속적인 문제 소지가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