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언론현업단체 기자회견 모습. ⓒ언론노조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언론현업단체 기자회견 모습. ⓒ언론노조 

임기가 두 달 남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면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인사혁신처가 23일 청문회를 진행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언론현업단체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면직 절차 자체가 현행법에 배치된다”며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공영방송 장악‧미디어 공론장 장악 시도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자는 면직이 가능하다는 국가공무원법 직위해제 조항과 달리, 방통위 상임위원은 방통위설치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 면직이 가능하다. 때문에 기소 단계 면직 절차가 부당하다는 것.

양만희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방송 독립을 위해 방통위원장에 대해선 엄격한 면직 조항을 갖고 있다”며 “한 위원장이 법 위반 의심이 있다며 면직시키는 것은 방통위설치법 취지에도 맞지 않고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상식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 양만희 회장은 “한 위원장 거취에 대해 견해가 다를 순 있어도, 거취를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시켜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언론현업단체는 “공소장에 한 위원장이 점수를 수정하라고 직접 지시한 정황은 뚜렷하지 않다”며 “누가 봐도 억지스러운 ‘면직’ 기도는 점차 속도를 내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기도의 일환”이라고 했다. 방통위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해임하고 KBS의 이사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KBS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검찰‧감사원‧국세청 온갖 권력기관을 동원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면직 시도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에 유리한 언론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고 했다.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언론현업단체 기자회견 모습. ⓒ언론노조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언론현업단체 기자회견 모습. ⓒ언론노조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정부 여당이) 방통위를 장악하면 국민의 대변자인 공영방송 조직을 향한 집권 여당의 칼춤이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 역시 “면직 절차는 방송 장악 시나리오”라며 “올해 가을까지 현 경영진을 해임하려 할 것”이라 했다. 이번 면직 절차에 ‘KBS‧MBC 9월 위기설’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면직 이후 신임 방통위원장이 임명된 뒤 공영방송 이사진을 교체하고 현 경영진을 교체하기까지 3개월가량 걸릴 것이란 전망 탓이다.

이들 언론현업단체들은 “감사와 수신료 분리징수 이슈로 공영방송 흔들기에 열을 올려왔던 윤석열 정권이 한 위원장을 끌어내리고 방통위를 여권 다수 구조로 바꾸어내고 나면, KBS와 MBC의 사장과 이사들을 차례로 해임하고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우리라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이 모습은 언론인들로 하여금 처절한 싸움을 하게 만들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를 떠올리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면직 시도를 가리켜 “제2의 정연주 사태”로 규정했다. 이 대표는 “없는 죄 만들어 기소하고, 기소되었다고 해임. 수년간 고통 받으며 재판해서 무죄 받고 해임 무효 판결 받았지만 이미 다 끝난 일”로 정연주 KBS 사장 해임 사건을 요약한 뒤 “명백한 국가폭력범죄인데 이런 범죄는 시효없이 처벌되고 손해배상하게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한상혁 방통위원장. ⓒ연합뉴스

한편 한상혁 위원장은 청문회 전날인 22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내고 “면직처분에 이를 정도의 명백한 위법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이라는 이유로 보장된 임기를 박탈하려 한다면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 등 처분 자체의 위법성, 위헌성 등의 우려가 있음은 물론이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 방송의 자유 등 대한민국이 지켜나가야 할 헌법적 가치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우려했다.
 
한 위원장은 특히 “공소사실과 동일한 내용의 구속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해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주요 범죄사실에 다툼의 소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임을 전제로 국가공무원법상의 일반적 의무 위반을 확정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위법적 처분”이라고 반발했다. 한 위원장은 또 “검찰의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공소사실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가 비틀린 부정적 내용들이 언론 등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유포됐다”며 “법원에 의한 재판에 앞서 더욱 참담한 여론재판을 받고 있는 심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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