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예술 영역을 파고드는 팬이라면 어느 정도 알 이야기가 있다. 한국은 비슷한 수준의 경제 기반이나 문화·예술 산업이 형성된 나라들 중에서 유난히 정부가 관할하는 심의 및 등급 제도가 많다는 점이다.

출판물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사후 심의를, 영화·비디오·뮤직비디오·외국인 출연 공연물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사전 심의를, 방송·인터넷 콘텐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사후 심의를, 게임의 경우에는 PC·콘솔 게임 중 ‘청소년 이용불가’가 아닌 등급에 해당하는 게임은 민간위탁심의기관인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에서, 이외의 게임들(아케이드, 모바일 게임 포함)은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심의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법적으로 사전 심의는 물론 사후 의무도 규정되지 않은 표현물은 ‘외국인이 등장하지 않은 공연물’이 유일하다.

물론 어느 나라나 정도의 차이는 다를 뿐 표현물에 대해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등급 분류’를 진행하는 일은 존재한다. 1960년대 68혁명이 전세계적으로 번질 당시에는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주도하거나 정부의 압박으로 검열에 가까운 수준으로 존재했던 심의를 완전히 철폐하는 일도 있었지만, 68혁명의 영향이 어느 정도 소강되던 1980년~1990년대를 거치면서 각국별로 폭력적·선정적인 콘텐츠에 대한 업계 차원의 기준 설정이나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다시 등급분류 체계가 서서히 현재 익숙한 모습으로 형성되었다. 주로 각 문화 산업 별로 형성된 민간 협회 차원에서 자체적인 규약을 통해 심의 및 등급 분류를 진행하는 식이다.

오랜 시간 억압적이었던, 여전히 문제적인 한국의 심의 제도

물론 한국의 현재 심의 체계는 해외의 심의가 흘러갔던 길과는 상당히 달랐다. 한국은 무려 1990년대까지 정부 차원에서 ‘검열’ 수준으로 거의 모든 표현물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질적으로는 2001년까지 영상물에 있어서는 ‘검열’에 준하는 수준의 위헌적 등급이었던 ‘등급외’나 ‘등급보류’가 있었기에 연구자에 따라서는 2000년대 초까지 사전 검열이 존재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1987년 한국 사회가 형식적 민주화를 거둔 뒤에도 검열의 문제는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어떤 정당도 비중 있게 검열의 사안에 접근하지 않는 사이 민중 운동과 연을 맺은 사람들이 더욱 해당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영상물에서는 영상패 장산곶매가 ‘닫힌 교문을 열며’와 ‘오! 꿈의 나라’가 사전 검열을 받지 않고 각 대학이나 지역별로 공동체 상영을 진행하다 영화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하자 헌법 소원을, 음악에 있어서는 포크 가수이자 현재까지도 꾸준히 각종 사회운동에 연대 중인 정태춘·박은옥이 7집 음반 ‘아, 대한민국…’을 사전 검열을 거치지 않고 배포하다 고소를 당한 뒤 헌법 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여기에 대중적으로는 1990년대 한국을 뒤흔든 인기 뮤지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시대유감’이 사전 검열에서 가사의 일부 구절이 지적받자 수정 없이 모든 가사를 제거하고 발매한 것이 사전 검열 문제를 환기하는 결정타가 되었다.

▲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와 ‘닫힌 교문을 열며’ 포스터. 사진=나무위키
▲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와 ‘닫힌 교문을 열며’ 포스터. 사진=나무위키

그러한 일련의 사건을 거쳐 한국의 표현물 등급 심의는 현재와 같은 체계로 형성되었다. 사전 심의가 이뤄지는 영상물이나 게임의 경우, 일단은 심의를 신청하는 모든 작품에 합당한 등급을 매기며 검열이라는 함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었다. 사후 심의가 이뤄지는 출판물이나 방송물, 인터넷 콘텐츠의 경우에도 영역마다 조금씩 사정은 다르지만 원칙적으로는 ‘등급 분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한계 역시도 명확하다. 한국의 거의 모든 심의는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게임 일부는 민간위탁을 통해 심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청소년보호법 상 규정으로 성인 등급의 표현물에 대해서는 민간 위탁이 불가능하기에 이러한 등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게임에 대한 등급 분류 심의 역시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심의에 대한 규정이 법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는 동시에, 사전 심의가 이뤄지는 영상물·게임은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법적으로 심의 참여가 의무화되어있는 것도 문제이다. 해외의 일반적인 등급 심의는 민간 기관이 주도하는 심의이고, 심의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유통한다고 하여 바로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지는 않는다. 주로 창작자 개인의 판단으로 성적·폭력적·기타 사회 윤리적으로 강렬한 묘사를 하는 작품들이 이러한 길을 택한다. 비록 심의를 거부하였기에 일반적인 판매 루트는 타기 어렵고, 매우 비좁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유통과 배급망을 구축해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은 법에서 허용하는 일부의 예외 사례가 아닌한, 심의를 거부하고 유통하는 순간 법적인 처벌 대상이 되고 만다. 주류적인 표현과 유통을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정부가 심의를 주도하며 법적으로 심의 외부의 선택을 통제하는 흐름은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독일·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도 정부가 주도하고, 법적으로 이를 명문화시키는 심의 체계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는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는 분명 가장 큰 국가이지만 게임이나 영상물의 자체적인 시장이 절대치로서 크게 형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독일의 경우에는 분명 게임이나 영상물 산업이 독자적으로 구축되어 있지만, 강력한 심의 제도에 대한 불만은 한국처럼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독일 인근의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도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독일의 심의를 우회해 스위스·오스트리아에서 제품을 내고 이를 역수입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공용어로 사용하며, 독일처럼 심의를 우회할 수 있는 방안도 마땅치 않다.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몇몇 게임이 ‘해외 거주 한국인을 위해 한국어를 지원할 뿐, 원칙적으로는 한국 외 유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식으로 우회를 시도하곤 한다.) 즉, 독일처럼 심의에 대한 불만을 조금이라도 빼낼 창구가 없는 상황이 바로 한국이다.

본격 시행 앞둔 OTT 자율등급제, 분명 변한 것은 맞지만

한동안 한국에서 사전 심의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불거진 것은 게임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이후로는 영상물, 특히 OTT에서 문제가 크게 심화되었다. OTT가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의 영상물 유통 상황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영상물 향유 상황은 지극히 영상이 유통되는 개별 국가에 맞춘 방식이었다. 소니, 디즈니 같은 ‘글로벌 직배사’가 존재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상의 유통을 관리하는 차원이었을 뿐, 영상의 향유 자체가 글로벌화된 것은 아니었다. 각국별로 맥락에 맞춰 형성된 영화관 등 오프라인 채널, VOD를 판매하는 온라인 채널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 OTT. 사진=gettyimagesbank
▲ OTT. 사진=gettyimagesbank

그러나 OTT의 등장은 영상의 향유도 글로벌의 흐름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웨이브, 티빙 같이 한 국가에 집중하는 OTT도 있지만 OTT의 유행을 만든 효시인 넷플릭스를 비롯해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같은 글로벌 OTT는 OTT 본사 차원에서 전 세계에 공급할 영상물을 기획, 제작해 예외가 없는 한 같은 날에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원칙으로 한다. 수많은 국가에서 자사의 OTT 서비스에 가입한 소비자에게 월 정액으로 사용료를 받고, 그렇게 모은 금액으로 기존에 제작된 영상물의 판권을 확보하거나 최대한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영상물을 제작해 최대한 전 세계에 동시에 제공한 뒤 기존 가입자들은 꾸준히 해당 서비스의 소비자로 남고, 신규 가입자를 유치해 정기적인 수입원으로 확보하는 것이 OTT의 사업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상물 심의 시스템은 OTT의 사업 구조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유튜브 등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영상물이 아닌 이상) 상업적으로 제공되는 모든 영상물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거쳐 등급 분류가 되어야지만 합법적으로 서비스가 가능한데, OTT의 ‘전 세계 동시 공개 시스템’을 한국에서도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영상물의 심의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글로벌 OTT가 조금씩 도입되기 시작한 2010년대 중반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가 큰 문제 없이 굴러갈 수 있었지만, OTT에 많은 주목이 이어지고 여러 OTT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며 문제가 되었다. 합법적으로 서비스를 위해 이들 OTT가 수많은 영상물의 등급 분류를 신청한다. 그러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위원이나 담당 직원의 수는 쏟아지는 심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늘릴 수 없다. 결국 심의기간이 하염없이 지연되는 적체 현상이 발생했다. 게다가 이 영상물의 제작국이 일본이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2004년을 끝으로 김대중 정부 때 시작된 ‘일본 문화 개방’의 단계가 모두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일본 제작 영상물은 원칙적으로 ‘비디오물’ 심의가 아니라 ‘영화물’로 심의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심의가 적체된 상황에서 심의로 향하는 2차선 도로가 일본 영상물은 1차선으로 감소하는 꼴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영상물등급위원회도 모르지 않았기에 여러 방침을 시행했다. 최대한 심의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제한적이지만 인력 충원도 실시했다. 그러나 현재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에서 영상물에 대한 심의를, 그리고 청소년보호법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대한 정부 기관 심의를 의무적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결국 ‘심의 절차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적체 현상의 큰 원인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OTT 업체들은 최대한 심의를 우회하기 위한 안간힘을 썼다. OTT의 등장으로 중소 케이블 채널이 더욱 침체를 맞이한 상황에서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영상물 등급 심의 예외 규정’을 이용해 심야 시간에 기습 상영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필자가 지난 2021년 제기했던, OTT ‘쿠팡플레이’가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를 DMB 채널을 통해 심의를 우회한 것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 관련 칼럼 : [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낡은 심의규제 쓱 빠져나간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이런 상황에서 결국 산업계에서는 물론 국회 내에서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연일 이어졌다. 결국 2022년 9월, OTT 사업자가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청소년 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 ‘성인만 이용 가능한 등급’이 아니면 자체적으로 서비스하는 영상물의 등급을 자율적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을 골자로한 영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후 지난 3월에는 개정안이 시행되어 3월 28일부터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OTT 플랫폼을 대상으로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접수를 개시했다. 그리고 5월 중으로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최종적으로 선정, 공표될 예정이다. 그토록 영상 산업계가 원했던 ‘OTT 자율등급제’가 비로소 본격 시행되는 것이다.

사회·문화 전반의 개선이 아닌 오직 OTT 만을 위한 개선, 얼마나 유효할까

아직 OTT 자율등급제가 법만 시행되었을 뿐, 제도 자체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것은 아니니 아직 할 수 있는 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동시에 앞서 언급헀던 대로 한국의 문화 표현물 심의 및 등급 분류 시스템이 비슷한 경제 규모나 산업 규모를 지닌 국가와 대비해서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고, 심의를 벗어날 방도가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OTT 자율등급제의 시행은 조금이라도 권위주의적 문화 정책에 있어 숨구멍을 마련했다는 의의는 분명 있다.

그러나 OTT 자율등급제의 의의는 딱 그러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왜 영상물 전체의 개선이 아니라, 동시에 현재 한국의 심의 및 등급 심의 시스템 전반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OTT에만 한정된 개선인 것인가? 물론 그 답은 이미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이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나왔던 여러 기사나 논의에 담겨 있다. OTT가 영상 산업에 대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영상물 등급 체계는 이에 걸림돌이 되니, 경제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빠르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다수였다. 즉, 문화적이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전반적인 정책 점검이나 재설계 없이 사실상 임시방편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 ‘지름길’을 만든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심지어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개시한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지정 가이드’를 보면 OTT 자율등급제는 결코 모든 OTT 플랫폼에 열려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심사 기준에 있어 기업규모, 자본금 등의 요소가 ‘지정평가에 가점 사항이 된다’고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자본금의 하한 규정을 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독립영화·단편영화·여성영화에 특화된 OTT인 ‘퍼플레이’ 같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웨이브나 티빙 같은 한국 대형 OTT 보단 분명 규모가 작지만 영상물의 다양성 확립에 큰 도움이 되는 OTT를 간접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OTT 자료사진. 사진=정민경 기자
▲ OTT 자료사진. 사진=정민경 기자

오히려 필요한 질문은 2020년대 현재, 왜 한국 정도만 계속 끊임없이 안팎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심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지로 이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1990년대 연속되는 사전 검열 위헌 판정으로 부랴부랴 현재의 심의 체계가 확립되었지만, 법과 제도는 이후의 사회문화 변화를 거의 반영하지 않은채 그대로 이어졌다. 그나마 게임 정도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부분적인 민간 심의 위탁과 현 OTT 자율등급제의 원형인 ‘게임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제도’를 만든 정도이지만, 이 역시 실질적으로는 이미 대규모의 게임 사업체를 운영하는 국내외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중소규모 게임사나, 독립·실험적인 게임을 제작하는 개인이나 동아리는 이 제도의 수혜를 결코 누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로 상징되는 이 심의 시스템의 총 책임을 지닌 정부도, 국회도, 그리고 산업 전반의 흐름을 고려해야 할 산업계 전반도 이렇다 할 말을 하지 못한다. 그나마 1990년대 사전 검열 철폐를 이끌어낸 문화 운동도 이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이미 힘이 많이 빠져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OTT 자율등급제의 도입은 문화를 말함에 있어 정작 문화적 맥락이 사라지고 ‘경제 논리’만 남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초상이다. 특히 영상물에 있어 등급 심의의 큰 제약을 받고 피해를 받던 것은 독립·예술영화나 여러 영화제·상영회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상의 영역을 아우르려는 노력은 OTT 자율등급제 논의에서 완벽하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근래 영화제·상영회의 등급심의면제를 위한 신청 기간이 상영 전 30일 이내 신청에서, 20일 이내 신청으로 바뀐 것이 변화라면 변화지만 참으로 미미한 변화이다.

특히 이러한 정부 주도의 영상물 심의가 2016년부터 그 실체가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자유로운 발표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이 지적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개선이나 심의를 비롯한 문화 정책 전반의 재구축을 논의하는 후속 작업으로 여전히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고민을 낳게 한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다양한 특성을 지닌 시민들이 저마다의 취향으로 최대한 문턱 없이 다양한 영상을 향유할 수 있게 하고, 다시 스스로 영상을 만들어볼 수 있게 하는 움직임은 스리슬쩍 ‘유튜브’ 같은 상업적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넘겨버린지 오래다.

▲ 박근혜 전 정부 당시 문예계 블랙리스트 입안·집행 조직도. 사진=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결과 종합 발표 자료집
▲ 박근혜 전 정부 당시 문예계 블랙리스트 입안·집행 조직도. 사진=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결과 종합 발표 자료집

그리고 남은 것은 여전히 관료 주도적으로 운용되는 허울 뿐인 정책 거버넌스와 최대한의 효율적인 이윤 창출에만 몰두하게 된 판 내부의 흐름이다. 분명 그러한 정책 경향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거둘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성의 논리만 살아남은 채 주류와 조금이라도 비껴선 시도는 모두 고사하고, 정부의 정책마저도 이를 오히려 북돋는 시스템은 지속적인 순환 자체의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마치 아이돌 이외의 무언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한국 음악이나, ‘리니지라이크’ 이외의 시도를 거의 볼 수 없게 된 한국 게임이 근래 들어 자꾸 ‘위기론’을 말하고 결국은 한국 극장용 영화·방송 영상물이 점차 영화관과 미디어에서 뿌리를 잃고 글로벌 OTT의 의존도를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경제적 논리에 입각한. 효율성만 강조하는 방식의 법과 정책이 얼마나 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역설적으로 지금의 위기는 문화 향유와 생동을 고려하지 않고 당장의 효과적인 이윤 창출에만 신경썻던 정부의 정책과 민간의 움직임이 합작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러한 지옥도에서 탈출하는 대신, 그 지옥도를 만들어낸 논리에 다시 의존하는 것은 더욱 크나큰 역설과 침잠만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어떤 의미로 OTT 자율등급제는 새로운 정책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택한 난맥상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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