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공황 등 F코드(정신질환 질병코드)를 스스로 꺼내 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의 감기’라고 강조하는 것 자체가 F코드를 둘러싼 사회 시선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기자에게 F코드는 더 가혹하다. 냉정을 유지하고 강철처럼 단단해야 할 기자에게 F코드라니. F코드 진단을 받고 입사한 손성원 기자도 자신이 기자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손 기자는 ‘마음돌봄’ 뉴스레터 ‘터치유’를 발행하고 있다. 그는 “기자의 역할이 넓어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권력 감시뿐 아니라 독자에 다가가는 기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통 저널리즘’에서 ‘서비스 저널리즘’으로 나아가는 언론 지형과 손 기자의 자신감은 맞닿아 있었다. ‘감정형(F)과 인식형(P)이 30점 만점에 30점으로 나오는 INFP’라고 소개하는 손 기자를 지난 14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드러낸 이후 “세상 편하다”며 웃었다.

▲ 지난 14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한국일보 손성원 기자. 사진=박재령 기자
▲ 지난 14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한국일보 손성원 기자. 사진=박재령 기자

오픈율 50% 육박… ‘서비스저널리즘’으로 독자데이터 확보

▲ 한국일보 H랩 갈무리.
▲ 한국일보 H랩 갈무리.

한국일보는 지난 6일 디지털 프로덕트 실험 조직 ‘H랩’을 공식화하며 뉴스레터였던 ‘터치유’와 ‘커리업’을 ‘버티컬브랜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뉴스레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브랜드 가치를 살릴 수 있도록 역할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터치유’는 손성원 기자가, ‘커리업’은 ‘일잼원정대’, ‘내러티브 저널리즘’ 등으로 주목받았던 박지윤 기자가 ‘일(Job)’을 중심으로 다루는 뉴스레터다.

“기자 2명과 함께 독자 통계, 커뮤니티 등 다양한 에디터까지 포함됐다. 말 그대로 실험실이고 영상팀과 별개로 7~8명 정도다. 결국 목적이 유료화, 탈포털인 상황에서 독자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다. 어떤 독자가 있고 이분들이 뭘 좋아하는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CMS에 제공해서 구성원 모두가 데이터를 쓸 수 있도록 모듈화도 해야 하고 여러 고민을 안고 있다.”

‘터치유’와 ‘커리업’은 모두 뉴스레터 오픈율이 50%에 육박한다. 손 기자는 “일반적인 미디어 서비스의 뉴스레터 오픈율에 비하면 2배 정도 되는 수치”라며 “로열티‧충성도를 확인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독자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오픈율이 높다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수익 다각화 방안으로 뉴스레터를 시도했지만 뉴스레터의 한계는 명확하다. 각 사 홈페이지로 직접 수용자를 끌고 오지 못해 수익성이 낮고 텍스트 외 다른 콘텐츠가 ‘인박스’ 내 잘 호환되지 않는다. 손 기자는 “릴스는 뉴스레터에서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안 입혀졌다”고 했다. ‘터치유’는 버티컬브랜드가 되고 난 이후 첫 시도로 오디오 인터렉티브 ‘에코 라디오’를 공개했다. 손 기자가 나레이션하며 독자의 호흡법을 안내하는 식인데, 뉴스레터만을 고집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1년을 잡고 이것저것 실험하려 한다. 그중 제일 편하게 빨리 시작할 수 있던 게 오디오였다. 마침 딱 녹음할 때가 요가 자격증을 한창 딸 때여서 도움이 됐다. 수업할 때는 무조건 호흡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발성법 등을 적용할 수 있었다.”

▲ 터치유 오디오 콘텐츠. 한국일보 갈무리
▲ 터치유 오디오 콘텐츠. 한국일보 갈무리

손 기자는 이것을 ‘서비스저널리즘’으로 정의했다. “단순히 ‘이런 기사를 보낸다’가 아니라 독자에 조언해주고, 뭔가를 제공해주고 이런 거다. 준비할 때는 언론사가 아닌 다른 플랫폼 서비스들도 ‘다 우리의 경쟁사’라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를 ‘콘텐츠 에디터’, ‘뉴스레터 에디터’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언론사에서 제공하는 콘텐츠가 ‘저널리즘’을 잊을 순 없다. 단순 유튜브 제공 콘텐츠와 동일해지면 언론의 의미가 사라진다. 손 기자도 이 지점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계속 고민이 된다. 신문사 기자와 콘텐츠 에디터 둘 다 놓치면 안 되니까. 레퍼런스를 하려고 해도 국내에선 시도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디언이 구글이랑 우리랑 비슷하게 시도한 걸 봤는데 결국 베이스는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핵심 기반은 ‘기사’이고, 내용의 의미는 사회적인 것, 공익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마냥 개인적인 것을 언론이 할 필요는 없다.”

▲ 요가에 대해 다루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소개하고 있는 손성원 기자. 사진=박재령 기자
▲ 요가에 대해 다루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소개하고 있는 손성원 기자. 사진=박재령 기자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유료화를 꾀하는 건 외신의 공통된 흐름이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를 강화해 기업광고에 의존하지 않게끔 자생력을 키우는 수단이다. 뉴욕타임스는 구독 상품에 게임, 요리 레시피, 제품리뷰 콘텐츠 등을 포함시켰다. 손 기자는 외신을 보면 갈수록 기자의 ‘전문성’이 인정받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페이지에선 요가를 즐기는 한 뉴욕타임스 기자가 본인의 요가 영상과 함께 기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일상의 불행, 익숙해져 있지만 익숙할 필요 없다”

손 기자는 사내 공모를 통해 관심사를 출입처로 맡게 됐다. “기자가 권력 감시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한테는 일상에 필요한 정보를 기자가 줄 수도 있다.” 손 기자는 본인의 ‘마음돌봄’을 위해 요가 지도자 전문 과정을 수료하고 MBTI 전문자격증을 땄다. 개인 취미 차원이었지만 자연스레 콘텐츠에 도움이 됐다. 관심사가 일이 되니 스트레스 받지 않냐고 물었더니 손 기자는 오히려 ‘시너지효과’가 난다고 대답했다.

▲ ‘터치유’ 뉴스레터, 스티비 페이지 갈무리.
▲ ‘터치유’ 뉴스레터, 스티비 페이지 갈무리.

“관심 주제를 하다 보면 ‘어 이거 약간 아이템이 되는데’라는 식이다. 지금 심리테스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MBTI 공부했던 게 도움이 된다. 보통 여행, 건강, 이런 라이프스타일 주제를 쓸 때 기자들은 대개 그냥 보도자료로 쓴다. 하지만 내 경우엔 주제가 관심사이니 ‘내돈내산’으로 직접 가게 된다. 제주도 웰니스 리조트를 갔을 때 거기 사람이 ‘기자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이렇게 직접 영상하고 체험해보는 사람은 처음이다. 대부분 전화로만 하는데 놀랐다’고 했다. 나는 콘텐츠의 생산자이면서 시장의 ‘소비자’다.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왜 하필 ‘마음돌봄’일까. 아직 언론사 내에선 기자가 ‘마초’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성을 채용하기 기피한다는 소문도 만연하다. 세월호 참사 때 소방관만큼 트라우마 수치가 높았던 기자들에겐 다소 가혹하게 느껴진다. 손 기자는 본인이 고민했던 만큼 기자들에게 “털어놔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사실 작년에 ‘터치유’ 뉴스레터에 대한 기자협회보 기사가 나가고 나서 기자들한테 연락이 많이 왔다. 자기도 그런 문제가 있다고. 기자들도 트라우마에 노출되는 직업이다. 근데 그 상황에 당연히 견뎌야 한다는 마인드가 너무 큰 것 같다. 기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털어놔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 저는 사실 털어놓고 세상 편한 상태다. 마음 건강은 청년 세대만 챙겨야 하는 게 아니다. 뉴스레터 독자 중에는 중년 남성도 많고 회사 높으신 분의 바이라인도 본 적이 있다.”

▲ 지난해 11월17일자 터치유 뉴스레터 갈무리.
▲ 지난해 11월17일자 터치유 뉴스레터 갈무리.

뉴스레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해달라 했을 때도 그는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 모두가 ‘일상의 불행’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은 결코 ‘익숙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불편함을 가진 채 살고 있는 사람들, 꼭 기자뿐 아니라 그들 모두에 어떤 가이드를 드리고 싶었다. 어쨌든 안고 가야 하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레터 중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유튜브 ‘뇌부자들’ 인터뷰를 했다. 그분들이 하신 말 중에 ‘정신과를 갈까 말까 하면 가야 되는 거다’라고 한 게 있다. 생각보다 정신과에 가면 정말 바글바글하다.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알게 된다. 주변 기자들 중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갔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내면을 돌아보는 과정, 이건 꼭 거쳐야 하는 거였다고. 특히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진짜 많았다. 그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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