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초등교과서 역사왜곡에 어떤 견해와 입장을 내놓지 않아 배경이 주목된다. 

특히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제3자인 정부 산하 재단이 대위 변제하는 해법을 내놓았다 온갖 비판이 쏟아지자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은 정작 정상회담 2주일도 안된 28일 독도를 일본 고유영토로 왜곡하고, 강제동원에 ‘지원’이라는 표현을 넣어 강제성을 희석해 왜곡 기술한 일본 초등학교 검정안을 확정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대통령실은 원론적인 유감표명만 할 뿐 단호하고 강력한 입장이나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 나온다. 특히 윤 대통령은 아직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28일 오후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안 발표 직전 브리핑에서 ‘일본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통령실 차원의 원칙이나 유감 표명 등의 입장은 뭐냐’는 질의에 “(정부가) 적절하게 대응할 것으로 본다”며 “그 이후에 필요하다면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실 인사가 이후 기자들과 카메라 앞에서 공식브리핑을 통해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다만 SBS는 지난 28일 저녁 메인뉴스인 <8뉴스>에서 ‘“깊은 유감”…대사대리 초치’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주권과 영토에 대한 부분은 단 한치도 허용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며 “사실을 사실대로 후손에게 알려야 진정한 선진국가라고도 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연합뉴스도 29일 오전 기사에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단호하게 대응하겠다,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과 관련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은혜 홍보수석과 이도운 대변인, 이기정 비서관, 대변인실 담당 팀장 등에 29일 오후부터 30일 오후 1시30분 현재까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이들에게 ‘대통령실은 일본교과서 어떤 입장인가’, ‘윤 대통령은 어떤 언급이 있었나’,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과 관련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는 SBS와 연합뉴스 보도 내용은 맞느냐’, ‘야당에서는 굴욕외교 퍼주기외교 결과가 교과서 왜곡이냐, 뒤통수 맞았다,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보라고 촉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 ‘왜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고 있느냐’는 질의를 했으나 아직 답변을 얻지 못했다.

야당은 일본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윤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왜 단호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느냐고 질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0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윤석열 정권이 퍼주기 외교로 굴욕적인 저자세를 취한 결과 일본은 점점 더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식민 침략 범죄를 부정하고, 한국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독도, 위안부 합의와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 다 논의했다고 주장한다. 강력하게 반발하고 강력하게 부인할 뿐만 아니라 앞서서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기가 막힐 뿐”이라며 “물 잔의 반을 채웠으니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는 반 잔을 채우기는커녕 우리가 채운 물잔마저 집어 찼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촉구한다”며 “굴욕외교의 진상을 낱낱이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에게, 그리고 역사에 사과하라. 부당한 역사 침략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전면전을 선포해야 마땅하다”고 촉구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본청앞에서 열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굴욕외교를 국민에게 사과하고 일본과 전면전을 선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영상 갈무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본청앞에서 열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굴욕외교를 국민에게 사과하고 일본과 전면전을 선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영상 갈무리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내주면 일본도 호응할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일본이 어떻게 호응하고 있느냐”며 “‘강제동원은 없었다’ 부정하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일본이 채울 것이라던 물컵은 정상회담 후 12일 만에 산산조각 났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 면죄부란 면죄부는 다 준 덕분에 일본의 우경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고 우리 국민의 반감만 연일 높아지면서 한일 미래 세대들마저 새로운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미래를 위한 결단이냐”며 “이런 대일 굴욕외교를 더는 이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29일 한일정상회담 굴욕외교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김상희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58명은 30일 ‘일본역사왜곡 규탄 결의안’을 발의했다. 결의안을 보면, 국회는 △일본 정부가 교과서 왜곡 기술․표기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승인한 것에 대한 규탄 △이로 인한 일본의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 경고 △일본 정부가 1982년 검정기준으로 국제사회에 약속한 ‘근린제국조항’을 교과서에 충실히 반영 및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 촉구 △대한민국 정부가 당당한 자세로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일본의 잘못된 독도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왜곡을 확실하게 바로잡도록 촉구 등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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