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조선일보가 확인되지 않은 전언을 토대로 판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사실확인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결국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내고 자신들이 확증 편향 함정에 빠져 사실확인에 소홀했다고 고백했다.

조선일보는 28일 1면 <“재판 왜 많이 시키나” 인권위 달려간 판사> 기사에서 A판사가 선고 업무가 늘어나는 것은 부당하며 인권위 진정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A배석판사가 진정을 낸 것은 2019년 무렵부터 1심을 담당하는 전국 지방법원 배석판사들이 ‘1주일에 3건까지만 판결을 선고하겠다’며 암묵적으로 합의한 일이 배경이 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3월28일 조선일보 1면
▲3월28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전해졌다” “이라고 한다” “했다고 한다” 등의 술어를 사용하며 전언 형식으로 사건을 소개했다. 이는 조선일보가 사실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제목과 부제목은 단정적이었다. 조선일보 기사의 부제목은 <“週 3건만 선고한다는 내부 합의 깨졌다” 부장판사 상대로 진정>이다.

28일 자 조선일보 보도는 오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판사가 재판이 많다면서 인권위에 달려간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인권위는 30일 “현시점까지 기사 내용이 포함된 진정 등을 접수한 사실이 없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사건 접수 여부를 다각도로 점검한 뒤 29일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30일 1면에 <‘배석판사의 인권위 진정’ 기사 바로잡습니다> 기사를 내고 “독자 여러분, 법원, 인권위 관계자들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사실확인 의무를 성실히 하지 않은 점도 인정했다.

▲3월30일 조선일보 정정보도.
▲3월30일 조선일보 정정보도.

조선일보에 따르면 취재기자는 한 법조인에게 ‘업무가중을 이유로 배석판사가 부장판사를 상대로 진정한 사건이 인권위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취재기자는 일부 판사들이 ‘그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자 인권위에 전화해 진정 접수 여부를 물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조사 중인 거다’ ‘언제쯤 접수됐는지 알아보기 어렵다’고 했고, 이를 들은 취재기자는 “진정이 접수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일보는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보도한 것이다. 기자는 인권위 취재원 한 명의 진술을 지나치게 신뢰했다”며 “기자가 ‘진정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판사들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고 하자 인권위 취재원은 ‘정말 황당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취재원의 의도와 달리 기자는 이를 ‘배석판사 진정’을 기정사실화한 대화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취재기자가 윤리규범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엔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쓴다. 사실 여부는 공식적인 경로나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다 △끈질기게 검증하고 구체적인 확인의 수준을 명시한다 △사실 확인의 최종 책임은 기자뿐 아니라 담당 부서장도 함께 진다 등 내용이 있다. 조선일보는 “기자는 인권위의 언론 담당 공식 채널인 홍보협력과에 확인 요청을 하지 않았다”며 “대법원에도 사실확인과 반론을 구하지 않았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져 이중삼중의 확인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일보도 정정보도를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화일보는 조선일보 보도가 나간 뒤인 28일 오후 사설 <“실연당해 재판 못 해”…김명수 사법부 6년 참담한 실상>을 내고 “한 지방법원 배석판사는 최근 소속 재판부 부장판사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부터 1심 배석판사들이 주 3회 선고에 합의했는데 부장판사가 간단한 재판은 예외로 하자고 했다는 게 이유라는 것”이라고 썼다.

▲3월28일 문화일보 사설.
▲3월28일 문화일보 사설.

조선일보의 판사 비판… 결국은 김명수 대법원 비판

조선일보는 재판부와 판사들이 일을 안하고 있다며 일관성 있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화살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향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 체제 이후 판사들의 업무량이 줄었고, 이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것. 조선일보는 김 대법원장에 대해 “실력과 업적을 통한 승진 시스템을 없애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했다. 이번 오보는 김명수 대법원을 무리하게 비판하려다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 “재판 지체 급증” 조선일보 보도가 놓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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