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돌연 사퇴 입장을 밝히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하고 후임 실장을 발표해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의전비서관과 외교비서관에 이어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안보실장까지 옷을 벗게 돼 더욱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누가 경질을 주고하고 있느냐’, ‘누구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줄줄이 그만두느냐’며 진상을 투명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29일 오후 돌연 ‘알려드립니다’를 통해 “오늘부로 국가안보실장 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1년 전 대통령님으로부터 보직을 제안받았을 때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 이제 그러한 여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향후 예정된 대통령님의 미국 국빈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어서 새로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고 썼다. 사퇴 사유와 관련해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김 실장은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후 오후 5시55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사의를 오늘 고심 끝에 수용하기로 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후임 국가안보실장에 조태용 주미대사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왜 갑자기 안보실장까지 그만두게 됐는지 뚜렷한 설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전날까지만 해도 교체설을 부인했는데, 오늘 갑자기 사의 수용하고 후임 인선까지 한 것은 문제가 있어 교체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 “당초 어제 말한 건 안보실 장교체 검토한 바 없다”면서도 “그러나 김 실장이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차례 피력했고, 대통령도 만류한 것으로 안다. 본인이 고수해 수용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많은 질문 있을 거 같은데 기회 빌어서 또 말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며 “(공식적 사직 사유는) 김 실장이 오늘 전해 주셨던 글에서 확인하시는 걸로 갈음 하겠다”고 답했다.
김성한 안보실장 교체를 검토한다고 첫 보도한 동아일보는 29일자 사설에서 “대통령실 주변에선 미국이 질 바이든 여사의 의견을 반영해 특별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했지만 외교안보 라인의 대응이 지연돼 한때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대통령의 질책이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며 “한미 정상회담 국빈 만찬장에서 ‘한미 동맹 70주년’을 주제로 양국 스타인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가 합동으로 공연하는 방안이 대사관 등을 통해 최소 5차례 보고됐는데도 제때 처리가 안 됐다는 것”이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보고 누락이 일차적인 원인이 됐을 수 있지만 국가안보실장 거취 문제까지 거론된 데는 다른 이유들이 쌓였기 때문이란 관측도 있다”며 “일본 강제징용 해법 등 외교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외교부 간 손발이 맞지 않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 과정에서 핵심 인사들 간 알력설, 주무 부처와도 정보 공유를 꺼리는 국가안보실의 비밀주의 등에 대한 지적도 흘러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28일자 1면에서 김성한 실장 교체 검토 소식을 첫 보도했다. 이 신문은 대통령실 관계자가 “윤 대통령이 방미 일정 조율 과정 등을 비롯해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쇄신 필요성을 느껴 왔다”며 “김 실장에 대한 교체가 비중 있게 검토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고 썼다.
이 같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석연치않은 사퇴를 두고 민주당은 책임있는 해명을 촉구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저녁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 브리핑에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라인 경질에 대해 책임 있게 해명하라”며 “잇따른 외교참사에도 모르쇠로 버티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경질되었다”고 지적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이래서야 한미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며 “정상회담이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 것 맞느냐”고 반문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김성한 실장이 자신으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힌 대목을 들어 “도대체 그 논란의 실체는 무엇이냐”며 “누가 외교안보라인의 경질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권 수석대변인은 “국민은 대통령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외교안보라인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으며, 누구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줄줄이 쫓겨나고 있는 것인지, 또 누가 이들의 경질을 주도한 것인지 납득할 수 있게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새로 내정된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외무고시 14회로 외교부에 입부해 북미국장과 북핵단장, 의전장, 호주 대사를 거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지냈다. 조 실장은 청와대 안보실 1차장, 외교부 1차관에 이어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지낸 후 주미대사로 재임 중이었다고 김은혜 홍수수석은 전했다. 김 수석은 “주미대사의 후임자는 신속하게 선정해 미 백악관에 아그레망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