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회장의 주거침입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 수사를 인정해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 김도균)는 지난 28일 방 회장의 아내인 고 이미란씨의 친정 식구들(어머니 임명숙, 언니 이미경, 형부 김영수)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7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방 회장의 처형 부부에게 각 1000만 원씩 총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 지난 2019년 3월 MBC PD수첩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회장 일가의 위법 행위와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봐주기 수사를 직격하며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사진=PD수첩 화면.
▲ 지난 2019년 3월 MBC PD수첩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회장 일가의 위법 행위와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봐주기 수사를 직격하며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사진=PD수첩 화면.

고 이미란씨는 금전 문제로 남편인 방 회장에게 학대를 당했고 지하실에 감금됐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 2016년 9월 한강에 투신했다. 이씨의 어머니와 언니, 형부 등 친정 식구들은 방 회장과 그 자녀들을 상대로 가정 학대 의혹을 제기했다. 

방 회장과 그의 아들 방성오 코리아나호텔 대표는 그해 11월 서울 용산구 소재 이씨 친언니인 이미경씨 부부 집에 침입해 돌로 현관문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피웠다가 재물손괴 및 주거침입 혐의로 피소됐다. 그러나 용산경찰서는 CCTV 영상 등 명확한 물증에도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도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이미경씨는 항고했고, 이를 받아들인 서울고검의 재기 수사 명령에 서울서부지검은 2017년 6월 방성오 대표에 대해 공동주거침입죄 및 특수재물손괴죄로 벌금 400만 원, 방용훈 회장에 대해선 공동주거침입죄로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두 사람에 대한 벌금형은 이대로 확정됐다.

방 회장의 주거침입 사건을 수사했던 용산경찰서 경위 이아무개씨는 이번 2000만 원 국가배상 판결에 앞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씨는 ‘방 회장을 조사할 당시 경장인 안아무개씨가 참여한 사실이 없는데도 참여인란에 안씨의 도장을 임의로 날인했고 이와 같이 위조한 방용훈 피의자신문 조서를 서울서부지검에 제출했다’는 범죄사실(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이 인정돼 지난해 5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가 지난달 9일 항소기각 판결을 내려 재판은 유죄로 확정됐다. 

국가배상 여부를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는 이씨의 허위공문서 작성 행위에 더해 “방용훈의 주거침입 행위가 명백히 촬영된 CCTV 영상이 제출됐는데도 이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행위는 수사기관이 범죄수사를 하면서 지켜야 할 법규·조리상 한계를 위반했을 뿐 아니라 수사기관 판단이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춰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것으로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로 인해 사건의 진상규명이 지연돼 피해자인 원고 이미경(고 이미란씨의 언니)과 그 배우자 김영수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인정되므로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금전적으로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당시 사건을 접수한 후 내부 보고용 당직 사건 처리 현황을 작성하면서 피고소인인 방용훈과 방성오 이름을 ‘불상’으로 기재한 사실 △방용훈에 대한 조사 당시 외근 수사용 노트북을 대여해 용산경찰서 사무실이 아닌 불상의 장소에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사실 △사법경찰관리 참여 없이 이씨가 단독으로 조사를 진행한 사실 등을 근거로 이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방 회장에게 조사 편의를 제공했다고 봤다. 

▲ 코리아나호텔 사옥.
▲ 코리아나호텔 사옥.

이 밖에도 재판부는 △방 회장의 주거침입 행위가 명백히 촬영된 CCTV를 확인했는데도 이씨가 방 회장에게 CCTV 존재 및 촬영 내용을 전혀 신문하지 않았다는 점 △방 회장이 CCTV 영상 내용과 배치되는 진술을 했는데도 추가 조사 없이 방 회장 조사를 마친 때로부터 불과 5시간이 경과한 뒤 방용훈 부자 진술만을 토대로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걸로 수사를 마쳤다는 점 △ 이씨는 불기소 의견 이유로 ‘CCTV 녹화 자료에 방용훈이 방성오를 말리는 장면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CCTV 영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미경 부부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미란씨 친정 식구들은 2019년 9월 항소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방성오 대표와 누나 방○○씨의 범죄(자녀들이 2016년 8월 어머니 이미란씨를 강제로 사설 구급차에 태우려 한 사건)에 있어 당초 방 대표와 방씨를 공동존속상해 등 혐의로 고소했는데도 서울중앙지검이 공동존속상해 혐의는 불기소 처분하고 대신 강요죄 혐의로 기소한 데 대해 “검사가 소추 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고 남용한 위법 행위”라며 국가배상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경험·논리칙에 비춰 도저히 그 판단의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된 처분으로서 위법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당시 검사는 이미란씨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진술(“이미란씨에게서 폭행 흔적이나 상처를 발견하지 못했다”) 등을 토대로 공동존속상해 혐의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한편, 폐암 투병 중이던 방 회장은 2021년 2월 세상을 떠났다. 방 회장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친동생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