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 관련 신문 사설 제목들.
▲방송법 개정안 관련 신문 사설 제목들.

<‘공영방송 영구 장악’ 노린 민주당 방송법안 폐기하라> (문화일보) 
<공영방송 독립성과 공정성 해칠 방송법 강행 처리> (중앙일보)
<방송법까지 법사위 패싱…巨野 입법독주, 끝이 없다> (서울신문)
<한 정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고 법을 만든다니> (조선일보)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일명 ‘공영방송 정치독립법’이 국회 본회의로 직회부 되면서 22일과 23일 나온 신문의 사설 제목이다. 문화일보는 22일 사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당연한 책무”라고 했다. 본회의 의결 시 국민의힘이 예고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역풍으로 이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여론전에 나선 모양새다. 

방송법(KBS)‧방송문화진흥회법(MBC)‧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 개정안에 의하면 21명의 공영방송 이사 가운데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가 6명(지역방송 관련 학회 추천 2명 포함), 직능단체가 6명(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각 2인)을 추천하고, 각 공영방송사 시청자위원회가 4명의 추천권을 갖는다. 국회 추천권은 5명이다. 

조선일보는 23일 사설에서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이 ‘공영방송 장악법’인 이유가 “이사 배분에서 국회 몫은 다수당인 민주당이 더 차지하게 되고, 방송 관련 학회와 직능단체, 시청자 위원도 친민주당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근거가 없다. 

학회는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진 학자들의 모임인데 이들 대부분이 친민주당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국민의힘 주최 세미나에서 KBS와 MBC가 편향적이라고 발제‧토론하는 학자들도 다들 어딘가의 학회 소속이다. 어디 학회원들의 지지 정당을 전수조사한 통계라도 있나. 

직능단체는 기자‧PD‧기술 등 직군별로 조직된 이익집단인데 이들 대부분이 친민주당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또 뭔가. 방송기자연합회 등 다수의 직능단체가 2021년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건 뭐라 설명할 건가. 

시청자위원회는 방송사의 경영진이 임명하는데, 최근 몇 년간 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경영진을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위원들이 다수다. 출신‧성분도 다양하다. 이들을 모두 친민주당으로 분류하는 건 결국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친민주당이라는 사고에 가깝다.

국회 몫도 다수당인 민주당이 더 차지하게 된다고 했는데, 현재 의석수 구도로 보면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이다. 이게 엄청난 차이인가? 이번 방송법 개정안은 거대 양당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비율을 100%에서 23.8%로 줄이고, 추천 주체를 다양화했다. 그게 핵심이다. 

▲공영방송 3사.
▲공영방송 3사.

일부 신문과 국민의힘은 눈앞의 3년만 볼 게 아니라 지난 30년을 떠올려야 한다. 공영방송의 오래된 정치 병행성 비판은 ‘정치적 후견주의’로 불리는 지배구조가 낳은 필연적 결과였다. 해외 선진국 공영방송처럼 신뢰도를 높이려면 지배구조가 달라져야 한다. 

조선일보는 24일 사설에서 “공영방송 이사 구성과 사장 임명 방식을 야당에 유리하게 바꾼 방송법 개정안”이라고 했는데 학자들과 현업 언론인, 시청자들은 민주당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1번 지지자’와 ‘2번 지지자’로만 사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는 23일 사설에서 “직능단체와 방송·미디어 학회 중엔 친민주당 성향을 보여 온 곳이 많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MBC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불가 통보를 직능단체나 학회가 비판하면 친민주당인가? 그럼 조중동 편집인들이 모인 신문협회도 이를 비판했으니 친민주당인가.

방송법을 바라보는 일부 신문의 논조는 거대 양당 중심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통제에서 벗어나자고 법을 바꾸는 게 어떻게 친민주당인가. 법이 개정되면, 공영방송 이사회는 특정 국면에 따라 ‘친국민의힘’, ‘친정의당’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것이 법 개정이 추구하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국회. ⓒ연합뉴스
▲국회. ⓒ연합뉴스

사장 임명 방식도 마찬가지다. 시민들로 구성된 100명의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는 게 ‘친민주당’이라는 논리인데, 그렇게 ‘친민주당’이라고 여당이 날을 세웠던 박성제 MBC 사장이 지난달 사장 공모에서 3명 중 2명을 뽑는 시민평가 투표에서 떨어져 연임에 실패했다. 여당 논리라면 붙어야 정상 아닌가. 

지난해 12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KBS와 MBC 이사진 비율을 거론하며 “KBS 7대4, (우리가) 여당 7 하나도 못 먹고 있다. MBC 6대3, (여당 몫) 하나도 못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면이야말로 이번 방송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직시해야 할 진짜 문제의 본질이다. 하지만 정작 다수 언론은 이 발언에 침묵했다. 

방송법 개정안은 대통령 거부권과 묶여 정쟁으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 “입법 폭주”라는 표현까지 나오던데, 적어도 ‘폭주’라는 표현은 국민의힘이 당론을 밝히며 협상에 나섰음에도 민주당이 무시했을 때 써야 하지 않나. 민주당 입장에선 당론은 내놓지 않고 반대만 하는 상대를 보며 ‘시간 끌기’라고밖에 판단할 수밖에 없다.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2021년 11월 “KBS의 경우 여야 7대6 추천, 이사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하면 사장 선임이 가능한 특별다수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은 최소한 이 안이라도 당론으로 채택해 협상에 나서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직후 오늘날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탄생했다. 1988년 국회는 민주정의당(125석), 평화민주당(70석), 통일민주당(59석), 신민주공화당(35석)의 다당제 구도였고, 직능단체나 학회, 시청자단체는 태동기 수준이었다. 입법으로 시대에 맞는 지배구조를 완성해 신뢰도 높은 공영방송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것도 국회의 의무다. 

언론은 국회의 의무를 ‘공영방송 영구 장악’ 같은 프레임으로 흔들기보다, 해당 개정안이 정치적 후견주의의 대안이라는 점을 큰 틀에서 인정하고 법이 보완해야 할 지점을 짚어주며 여야가 본회의 합의 처리에 도달할 수 있게끔 공론장을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개정안이 언론현업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5만명의 국민청원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