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과 ‘관계자’ 발 노조 때리기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보수언론은 민주노총이 ‘북한 지령’을 받고 윤석열 정부 퇴진을 구호로 채택했다며 사실과 다른 보도를 냈다. 일부 언론은 ‘경찰 관계자’를 출처로 건설노조 수사 상황을 실제와 다르게 전했다. 정부가 노조를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언론이 익명에 기댄 보도로 힘을 싣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화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민주노총 간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령문”을 발견했다’고 지난 13~14일 보도했다. 이른바 ‘방첩당국’을 출처로 밝히면서 북한이 10‧29 이태원 참사 뒤 북한이 지령문에 윤석열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적시했고 이들 구호가 실제로 쓰였다고 했다.

북 지령에 ‘앵무새’ 구호? 채택한 적도 없는데

문화일보는 13일 1면과 온라인에 보도한 <북한이 하달한 “퇴진이 추모다” 구호… 앵무새처럼 따라 한 노조>에서 “방첩당국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북한의 지령문 등이 실제 투쟁구호나 현수막 문구로 쓰이기도 하는 등 반정부 투쟁에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보도 출처로는 “방첩당국”과 “정부 관계자”를 언급했다.

▲13일 문화일보 1면
▲13일 문화일보 1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다음날 지면에서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과 이어지는 기사에서 “‘퇴진이 추모다’ 등 반정부 시위에 동원된 구체적 구호가 북 지령문에 적혀 있었다”며 “반정부 투쟁에 북한이 배후조종을 시도한 것 아니냐”고 했다. 동아일보는 ‘공안당국’, 조선일보는 ‘정보당국 관계자’를 출처로 밝혔다.

이들 보도는 실제 민주노총 내부에서 윤석열 정부 퇴진을 구호로 채택하고 사용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사실과 달랐다. 민주노총은 최근까지 내부 회의에서 산별 대표자 등 제안으로 윤석열 정부 퇴진을 구호로 사용할지 논의했지만 현재까지는 채택하지 않은 상태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뉴스톱 등이 이를 기사화했다.

▲14일 동아일보 12면
▲14일 동아일보 12면
▲13일 문화일보
▲13일 문화일보

그러나 ‘당국’발 보도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민주노총을 상대로 공안몰이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민주노총을 언급하며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못하게 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한 사실이 기사화됐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는 14일 페이스북에서 각각 “민노총이 노동운동을 빙자한 종북 간첩단이 암약하는 근거지” “북한은 이런 방첩당국의 수사조차 공안탄압으로 몰아가라는 지령까지 내렸다고 한다”고 발언했다.

‘당국’ 받아쓰기로 언론이 ‘유죄 선고’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김진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이들 보도를 두고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 받는 당사자는 현재 기소도 되지 않은 상태다. 검찰 등이 수사 내용을 흘려 기정사실화하고, 검증 없이 받아쓰는 언론, 정권이 이를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삼박자가 합쳐져 결국 재판도 받기 전에 언론에 의해 ‘유죄 선고’ 받는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13~14일 문화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지면 보도 표제 및 부제 갈무리
▲13~14일 문화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지면 보도 표제 및 부제 갈무리

보도한 매체들은 기사를 수정하지 않은 상태다. 기사를 쓴 김민서 조선일보 기자는 보도의 근거와 민주노총이 ‘정부 퇴진’을 구호로 내건 적 없는 사실을 아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사실관계를 직접 판단해 보시라”고 말한 뒤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최지영 문화일보 기자는 같은 질문에 “나름대로 취재를 해서 쓰는 것이며 경로를 밝히기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 기대 ‘조직범죄’ 시사, 정작 경찰은 부인

정부가 전방위 노조 때리기에 나선 가운데 수사 상황을 앞세운 ‘아님말고식’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 15일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월례비(성과금)’ 일부가 상급 노조에 ‘상납’됐다고 단독 문패를 달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경찰 관계자”를 출처로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동아일보가 ‘상납’이라고 밝힌 것은 노조 통장에 입금되는 정기 노조 운영비라고 해명했다.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측은 노조 운영비가 수사 대상이 아니며 보도 내용은 수사대 측에서 확인해준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경찰청. ⓒ연합뉴스
▲경찰청. ⓒ연합뉴스

정부가 공안몰이로 민주노총에 공세를 가하고 전례 없는 노조 때리기에 나선 상황에서 언론에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건네고, 보수언론이 사실확인 없이 이에 응하면서 노조 탄압 정국을 형성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준태 민주노총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정부가 올들어 이른바 ‘건설현장 폭력행위’ 수사를 대대적으로 벌인 뒤 건설노조를 다룬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노조와 당사자 입장을 묻는 취재 접촉은 최근까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월부터 경찰과 국토부 발 보도자료와 수사 자료가 쏟아졌지만 취재 요청이 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라고 했다.

‘아님말고식 노조 때리기’ 행렬엔 언론이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수사기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출처를 밝히지 않고 보도하는 관행도 활용되고 있다. 노동계와 공안탄압 사건 전문 법조인들은 언론이 이 같은 관행에 기대 정부 입장을 일방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원. ⓒ민중의소리
▲국정원. ⓒ민중의소리

 

▲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월1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월1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흘리기’ 검증 않고 정국몰이 반복하나

‘정권위기 국면전환용 공안탄압 저지 및 국가보안법 폐지 대책위원회’의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는 “수사 중 기소 전에 피의사실과 관련한 내용을 공표하는 것은 당사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기 전 유죄를 예단하도록 여론을 형성하는 행위”라며 “정권 차원에서 문화일보 등에 정보를 주고 국민의힘이 받아 발언하는 정국몰이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변호사는 “언론이 이걸 받아 쓰도록 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언론은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범죄라는 신호를 주고, 보도하는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한동한 잠잠했던 색깔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언론에 수사 정보를 건넸는지와 보도된 내용의 근거, 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보도 내용이 맞다는 취지로 답변하면서 “다만 해당 매체들의 보도 경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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