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수준의 예산으로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TBS가 각종 비용을 없애고 프리랜서 작가들을 내보내는 등 사실상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연말에 발생한 외부 진행자 줄하차에 이어 ‘해시태그’, ‘변상욱쇼’ 등 남아있는 프로그램들마저 없어지면서 구성원들의 절망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현재 TBS는 엑셀, 포토샵 등 각종 프로그램의 라이센스 비용도 지불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사진=TBS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사진=TBS

TBS 내부에 따르면 새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제작비는 현재 ‘0원’이다. 기존 프로그램을 유지하기도 어려워 작가, PD, 진행자로 꾸려지던 라디오 제작진 구성을 PD와 진행자로 바꾸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작가들에겐 모두가 원치 않는 ‘계약만료’를 통보할 수밖에 없다.

TBS A작가는 14일 통화에서 “라디오작가는 길게는 몇년씩 장기간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식구처럼 일했던 구성원인데 예산 때문에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개편 시즌이 지났고 제작진이 보통 팀단위로 구성된다. 프리랜서 작가가 중간에 다른 곳과 계약하기가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TBS라디오 ‘라디오를 켜라 정연주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는 정 아나운서는 통화에서 “작가님이 없으니 출근시간을 당겨 직접 원고를 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도 작가의 전문성이 있으니까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해부터 이미 제작비 절감 차원으로 원고료를 삭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절감이었는데 이번엔 절감할 게 없이 아예 제작비가 0원”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15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구성원들이 조례폐지안에 반대하고 있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 지난해 11월15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구성원들이 조례폐지안에 반대하고 있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TBS는 2년 연속 예산이 크게 삭감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2021년 출연금이 55억 원 줄어들었고 지난해에도 88억 원이 깎였다. 232억 원의 올해 출연금은 TBS의 지난해 인건비(230억 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삭감된 예산안이 확정되자 지난해 연말을 끝으로 ‘김어준의 뉴스공장’, ‘신장식의 신장개업’,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 등의 프로그램들이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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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폐지를 피했던 ‘정준희의 해시태그’도 지난 2월 막을 내렸다. 변상욱 대기자가 ‘우리동네라이브’에서 1월 하차한 데 이어 유튜브 ‘변상욱쇼’ 역시 1월 끝이 났다. 유튜브 ‘짤짤이쇼’는 폐지 대신 주 2회 방송에서 주 1회로 시간을 줄였지만 계속 방송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작가는 “제작진들에게 프로그램은 자식과 같다. 인기가 없어진 거면 아프지만 받아들일 텐데 돈이 없어서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있으니 받아들이기 다들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 지난 1월30일 유튜브 ‘짤짤이쇼’에서 변상욱쇼 시청자에게 영상편지를 전하고 있는 변상욱 대기자.
▲ 지난 1월30일 유튜브 ‘짤짤이쇼’에서 변상욱쇼 시청자에게 영상편지를 전하고 있는 변상욱 대기자.

‘짤짤이쇼’ 등을 담당하고 있는 김호정 PD는 “방송은 굴러가야 하니 아나운서들이 돌아가면서 방송을 채우고, PD들이 원고를 쓰고 네이버를 검색해서 날씨와 생활정보를 찾아 방송을 만들고 있다”며 “자연히 그런 콘텐츠들은 시장성이 낮다. 수익이 생길 수가 없는 구조”라고 했다.

정연주 아나운서는 “라디오에 출연하던 외부 인원은 지난해 다 이별하고 방송국 구성원들로 ‘가내수공업’하고 있다. 아나운서는 프로그램에 투입될 때 3000원 가량의 ‘출연자료비’를 받는데 그것마저 없어질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며 “출장비 0원에 차량도 렌트할 수 없어 보도부 기자들은 취재할 때 손수 운전해서 출장간다고 한다”고 말했다.

TBS는 법적으로 상업광고를 할 수 없다. 서울시 출연금이 깎이면 마땅히 재원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공공기관 협찬이 있지만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시의회 구성과 여당 출신 서울시장, 대통령 아래에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공공기관 협찬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어준 등의 외부 진행자 하차 이후 추가경정예산(추경) 등의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측이 강경하게 지원 불가를 내세우고 있는 상태다. 현 인건비 수준의 예산마저도 ‘TBS 조례 폐지안’ 가결로 2024년 1월 전부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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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구성원들이 조례폐지안에 반대하고 있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구성원들이 조례폐지안에 반대하고 있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김호정 PD는 “선거 이후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보수언론이나 후보자들 모두 발전적으로 TBS를 어떻게 키워나갈까에 대한 고민보다 그저 특정 프로그램을 공격하기 바빴다. 돈줄을 막는 방식으로 회사를 압박하다 지금은 방치의 상황”이라며 “방송사가 독자적으로 성장해나갈 재원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데 아직 그 과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예산을 끊어버렸다. 그냥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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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 PD는 “현재 TBS는 라이센스 비용을 내지 못해 알집은 계약이 종료됐고 MS오피스 등 일반 사무를 위한 프로그램도 이달 말 계약 종료가 예정된 상태다. 더군다나 포토샵, 프리미어처럼 방송 제작에 핵심적인 프로그램에 필요한 ‘어도비 라이센스’도 종료 예정일이 다가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라며 “몇몇 PD들은 개인 노트북으로 구매한 라이센스를 통해 회사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아침에 방송이 폐지되고, 온 마음을 다 바쳤던 방송이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들을 보며 직원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TBS가 그래도 노력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공염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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