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및 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 전아무개씨의 유서 내용이 정치공방 소재로 뜨겁다. 당 대표 측근의 죽음이라는 점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된 해석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서 내용을 파악해 보도하는 것이 미디어의 지상 최대 과제가 돼버렸다.

큰따옴표 안에 있는 문장으로 보도된 일부 유서 내용을 가지고 이재명 당 대표 대 검찰의 수사 책임으로 양분돼 서로 치고 받는 모양새다. 고인의 죽음이 가리키는 그 무엇을, 유리하게 해석해 포장하고 누구 탓으로 몰아가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말자라고 해놓고 ‘알려진’ 일부 추측성 내용을 유서라고 공개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누구의 책임을 덮자는 게 아니다. 정쟁의 파도에 휩쓸리게 만들어 정작 유족의 목소리를 지운 게 문제다. 향후 유족이 동의한 형태로 유서가 공개되고 이에 대한 해석이 이뤄져야지만 고인의 뜻을 곡해(曲解)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에 마련된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모 씨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에 마련된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모 씨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의 책임이 크다. 마치 유서 전문이 공개된 것처럼 제목을 달고 단독 경쟁에 뛰어들었다. 유서 내용 중 한 글자라도 파악되면 속보성 보도를 쏟아냈다. 언론은 정치권의 해석을 덧붙이고 정치권은 언론 보도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유족이 원치 않은 유서 내용 공개에 대한 책임을 서로 희석시켰다.

유서 내용이라고 밝혀놓고 “유족은 유서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문구를 집어넣은 행태도 기막히다. 유서를 공개한 주체가 그 책임을 ‘나몰라라’하고 뒷통수를 치는 꼴이다. 차라리 유족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면 모르겠다. 유족에 대한 모욕이다.

기사 말미 자살예방방지 문구를 넣는 것도 기만적이다. 관련 문구는 말그대로 불가피하게 자살을 언급하면서 낳는 폐단를 막고자 하는 장치인데 언제부터인가 해당 문구를 달면 마치 부적절한 보도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죄책감을 더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유족이 원치 않은 유서를 공개한 것부터 잘못인데 그런 보도를 내놓고 자살예방이라느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 따르면 유족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야 하고,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한다고 돼 있다. 전아무개씨 관련 보도에선 거꾸로 ‘최대한 보도’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현재 보도 흐름을 보면 유서만 확보되면 유족 의사와 상관없이 전문을 공개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사실상 전씨 유족을 향해 유서는 언젠가 공개될 수밖에 없으니 전문을 공개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번 일로 유서보도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유족의 반대에도 유서 메모 일부가 공개돼 논란이 된 대표적인 사례가 나온 것이 불과 3년 전이다. 박지선씨 죽음 당시 유서보도 관행에 많은 질타가 있었고 제동을 걸렸고 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물론 유서 내용 일부라도 전혀 보도하지 않은 매체가 있고 그 노력을 높이 사지만 대부분 매체는 그렇지 않다. 관행은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이라는 뜻이다. 폐단이 있다면 그 관행은 철저히 버려야 한다.

▲ 취재 자료화면. 사진=gettyimagesbank
▲ 취재 자료화면. 사진=gettyimagesbank

보도관행이 바뀌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9년 화물 항공기가 폭발해 기장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기자들은 유족을 취재하라는 지시에 따라 고인이 된 기장의 자택으로 몰려갔다. 늦은 밤 자택 앞에서 만난 기장의 자녀에게 기자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심경을 물었는데 자녀는 사고 소식조차 모르고 있었다. 유족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후 우리 언론은 일명 장례식 현장 취재를 가게 되면 되도록 유족의 입장을 무리하게 묻는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아야 좋은 기자다. 원칙에 벗어나면 단독거리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좋은 기자다. 고인의 죽음에 유족의 상처는 채 가시지 않았다. 퍼즐조각 맞추기 게임마냥 공개를 원치 않은 유서를 활자화하는 관행을 벗어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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