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고가 있었을 때도 (노홍철) 형님이 꼭 찍어달라고 했다. 만약 사망에 이르더라도 꼭 찍어달라고 하더라.” (유튜버 빠니보틀)
“(사고) 영상을 안 만든다는 걸 내가 계속 만들라고 부탁했지. 왜냐면 우리 셋 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TV에 나오는 여행기들은 항상 예쁜 거, 좋은 것만 보여주잖아.” (방송인 노홍철)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의 채널에서 지난 2월 초 방송인 노홍철과 함께 떠난 여행기가 화제가 됐다. 빠니보틀은 노홍철과 베트남 호치민으로 여행을 갔는데, 노홍철이 오토바이 사고가 난 영상을 가감없이 공개했다. 잔인하거나 불쾌할 수 있는 장면은 모자이크로 처리했지만, 사고 직후 영상부터 30분 동안 응급차를 기다리는 장면, 응급 처치 후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검사를 하는 장면, 사고로 인해 모든 일정이 무너지고 여행이 종료되는 모습 등 현실적인 여행기를 보여줬다.

노홍철 역시 사고 장면을 모두 찍으라고 미리 이야기했다면서 “TV에서 나오는 여행은 좋은 것만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영상은 2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빠니보틀의 유튜브가 보통 한 영상 당 수십만~백만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인기 유튜버이긴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홍철과의 여행 영상은 한 편 당 2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버 '빠니보틀'이 방송인 노홍철과 함께 떠난 베트남 여행에서 노홍철의 사고 장면을 영상으로 전달했다. 사진출처=빠니보틀 유튜브. 
▲유튜버 '빠니보틀'이 방송인 노홍철과 함께 떠난 베트남 여행에서 노홍철의 사고 장면을 영상으로 전달했다. 사진출처=빠니보틀 유튜브. 
▲사진출처=빠니보틀 유튜브. 
▲사진출처=빠니보틀 유튜브. 

엔데믹 상황에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크게 늘어났지만, 비슷비슷한 여행 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 주목을 받는 여행 콘텐츠는 역시 ‘리얼함’을 드러낸 콘텐츠들이다. 리얼한 여행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행 프로그램들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 KBS2TV ‘배틀트립 시즌2’의 경우 지난해 10월 2.2%의 시청률로 시작했고 1~2%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최신 회차인 지난 18일 방송의 경우 1.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 10월부터 SBS에서 시작한 ‘찐친 이상 출발, 딱 한 번 간다면’도 ‘청춘 여행 예능’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SBS ‘11월 시청자 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률이 아쉽다는 대목이 나온다. 시청자 회의에서 “1회에서 다소 어수선한 장면과 산만한 자막이나 지루할 뻔했던 편집, 보기 불편할 정도인 일부 출연진의 영어 실력, 자연스럽게 소화해내지 못한 PPL등 프로그램 시작 초반 제작 현장의 어려움들이 보이기도 했고, 파일럿 예능의 편성 시간대로 인한 영향도 있었던 탓인지 시청률도 많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회의에서는 “뒤로 갈수록 볼거리도 더욱 풍성해지고, 시청률도 더욱 상승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되었으나 2.2%로 시작한 시청률은 점점 떨어져 계속 1%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지난해 12월29일 막을 내리게 됐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최근 지상파 여행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끈 프로는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로 지난해 12월 1화부터 4.6%의 시청률을 기록, 최저 시청률이 3.5%였고 최고 시청률은 5.2%였다. 해당 프로그램은 기안84가 주인공으로 MBC ‘나 혼자 산다’의 또 다른 멤버인 이시언이 출연하고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도 합류했다. 기획의도 자체가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극사실주의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기안84가 페루와 볼리비아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교통 체증과 함께 시위로 인한 폐쇄 등으로 여행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고 기안84는 최소한의 여행 준비도 하지 않는 등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기행을 하기도 한다. 매주 4~5%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기존 6회에서 7회로 연장됐으며 시즌2의 제작도 확정됐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의 김지우PD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방송사에서 만드는 여행 프로그램은 어쩔 수 없이 제약이 생기는데, 여행 유튜버들은 가동성을 가지고 어디든 가니 시청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낀다. 이런 영향을 받아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역시 방송 안에서 날 것 그대로의 여행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극사실주의 여행을 위해 제작진 개입을 최소화하고 제작진 규모를 대폭 줄였으며 기안84에게 셀프 촬영을 하도록 연출했다. [인터뷰 링크]

▲김태호PD의 신작 '지구마불 세계여행'의 포스터. 
▲김태호PD의 신작 '지구마불 세계여행'의 포스터. 

여행 유튜버들을 앞세운 ‘리얼’을 강조한 여행 프로그램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MBC를 퇴사한 김태호PD가 오는 3월4일 공개하는 ‘던져서 세계 속으로-지구마불 세계 여행’은 이러한 특징을 극대화한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가 출연하며 직접 던진 주사위 숫자에 따라 여행지가 랜덤으로 결정되는 포맷이다. 랜덤으로 목적지를 정하면서 예측 불가능한 여행을 보여주는 것인데 ‘날 것’의 여행을 보여주기엔 최적의 포맷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이제 인기를 끄는 여행 프로그램의 핵심은 ‘리얼함’이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경향이 유튜브의 영향 안 받을 수 없는 환경이고 그 차이점은 ‘진짜냐 아니냐’가 가른다”며 “일반 지상파 예능의 여행들을 보면, 물론 100% 거짓이라 보기는 어렵겠지만 전반적인 설정이나 제작진들이 가지고 있는 의도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여행 유튜브는 실제 상황에서 벌어지는 진정성, 예측하지 못한 상황 등이 리얼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몇몇 여행 유튜버들이 보여주는 각종 에피소드는 기존의 여행기나 제작진들이 만들어놓은 루트 안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나오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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