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민간인(천공)의 관저이전 개입 의혹을 제기한 전직 국방부 대변인과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일은 법정에서 인정 받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고 법적 판단을 얻기보다 언론 보도에 대한 위축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은 지난 3일 “‘천공이 왔다고 들은 것을 들은 것을 들었다’는 식의 ‘떠도는 풍문’ 수준의 천공 의혹을 책으로 발간한 전직 국방부 직원과, 객관적인 추가 사실확인도 없이 이를 최초 보도한 두 매체 기자들을 형사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발 대상은 최근 저서 ‘권력과 안보’를 펴낸 부승찬 전 대변인과 뉴스토마토, 한국일보 기자들이다.

고발의 적절성을 따지기에 앞서 이번 의혹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 전 대변인은 자신의 과거 일기를 엮은 저서(권력과 안보)에서 천공 관련 전언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임기 마지막 달이었던 지난해 4월1일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에서 남영신 당시 육군 참모총장을 만났고, 남 총장이 총장 공관을 관리하는 모 부사관으로부터 “최근 인수위 소속 아무개와 천공이 (한남동) 총장 공관과 (육군) 서울사무소에 들렀다”고 보고한 사실을 전해들었다고 주장한다. 책 후반부에선 “며칠 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에 알려야 하냐고 물었다. 총장은 자기는 괜찮지만 현역인 부사관이 걱정된다며 절대 비밀을 지켜달라고 요청했다”는 후일담도 덧붙였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연합뉴스

이 주장을 기반으로 한 2일 뉴스토마토 보도에는 몇 가지 주장과 정황이 추가됐다. 지난해 3월 천공의 공관 방문에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과, 국민의힘 A의원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세 인물이 한 차에 타고 있었다면서 “김 처장이 ‘뒷차는 그냥 통과를 시키고, (출입)기록도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천공 등이 총장 공관을 사전 답사한 시점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였다고 했다. 이 매체는 남 전 총장은 천공 의혹에 대해 “소설”, 대통령경호처는 “가짜뉴스”라며 부인했고 천공의 경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같은 날 한국일보는 출간을 하루 앞둔 부 전 대변인의 저서 중 천공 의혹 부분을 조금 더 상세히 소개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 경호처가 “김용현 경호처장은 천공과 일면식도 없으며, 천공이 한남동 공관을 둘러본 사실이 전혀 없음을 거듭 밝힌다”고 반론했으며, 육군은 오후 늦게 “천공의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방문 의혹 제기는 사실이 아님을 거듭 밝힌다”는 입장을 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해당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나 근거 제시 없이 “터무니 없는 가짜 의혹”이라며 “풍문이 정치적 목적으로 가공될 때 얼마나 허무맹랑해질 수 있는지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사례를 통해 국민들께서 목도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관저 관련 의혹과 청담동 의혹을 동일선상에 두는 것부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청담동 의혹과 천공 의혹의 보도 내용은 수준과 결이 다른 보도”라며 “애초 천공 관련된 의혹들은 구체적 의혹이 제기되는 데 반해 투명하게 해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잠재워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한 첼리스트가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장관, 대형 로펌(김앤장) 변호사 등 수십 명의 술자리를 가졌다는 내용이다. 첼리스트의 지인이 이를 온라인 매체 더탐사에 제보한 것이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으로 알려졌는데, 목격자로 언급된 첼리스트는 경찰 조사에서 ‘술자리 얘기는 지어낸 것’이라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역술인 천공.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천공이 지난해 3월 대통령 관저 이전을 결정하는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부 전 대변인과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천공은 윤석열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멘토로 주목 받은 인물로 윤 대통령 부부와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유튜브 jungbub2013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역술인 천공.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천공이 지난해 3월 대통령 관저 이전을 결정하는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부 전 대변인과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천공은 윤석열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멘토로 주목 받은 인물로 윤 대통령 부부와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유튜브 jungbub2013

김 위원장은 “(천공 관저개입 의혹은) 취재원이 불확실하지 않은 공적 인물이고 보도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업무를 했던 고위 관계자의 증언이 있었다”며 “뉴스토마토 보도를 보면 용산 대통령실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 등 익명이란 한계는 있지만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당사자들에게 반론을 듣기 위해 충분히 노력한 점도 보인다.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인용 취재가 아니면 담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고 봤다.

한국일보 보도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전 정부 국방부 대변인이 육군참모총장이라는 군 고위장교에게 들은 내용을 출판물로 냈고, 당사자에게 내용을 입수해 그 주장에 대한 해명 취재를 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실 입장에서 사실이 아닌 보도가 잘못됐다고 본다면 구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해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할 단계를 생략하고 소송으로 가는 것은 이 언론사나 다른 언론사들의 후속 보도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애초 대통령실은 명예훼손 고발 주체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순 변호사는 “대통령실 예산으로 이런 고발을 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본다”며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나 천공, 김건희 여사 또는 전직 참모총장 등의 명예가 훼손된 것일 텐데, (대통령비서실의 고발은) 고소권·고발권 남용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선 지난 2014년 4월 한겨레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현장 방문 사진이 연출됐다는 의혹을 보도했던 사례가 거론된다. 당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은 한겨레가 허위사실 보도로 명예훼손을 했다며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서울중앙지법)는 보도의 직접적 대상이 아닌 비서실 관계자들을 보도의 피해자로 볼 수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대법원은 또한 2011년 MBC ‘PD수첩’ 광우병편이 허위사실로 주무부처 장관 등 명예훼손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며,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며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성순 변호사는 “사인간 사적 관계에 대한 보도는 실제로 사실 확인이 안 되면 처벌로 가는 경우가 많다. 공적 사안에 대한 보도는 그렇지 않다. (명예훼손 재판에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취재 노력에 따른 사실확인 가능 여부 등을 보게 된다”며 “이 의혹은 계속적으로 있어왔던 것이고 원천적인 최초 발언자의 목격, 전언 등을 타고 올라가 봐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민사소송법상 적격(당사자능력)이 없는 기관도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대통령비서실도 언중위 제소는 가능하지만 민사 소송, 형사 소송은 하지 않아야 맞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이 항상 ‘법치주의’라고 하는데 이번 고발이 법에 근거한 것인지 의문이다. 허술하고 느슨한 영역을 형사 소송으로 걸어버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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