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조선일보 단독보도로 국가정보원 등의 간첩수사 상황이 공개되면서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저지하는 여론을 키우고 있다. 특히 지난달 18일 민주노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노조 탄압 분위기와 함께 공안정국을 만들어가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간첩수사 관련 첫 기사인 9일 1면 톱기사 제목을 “민노총·시민단체 앞세워 투쟁하라”로 뽑으며 간첩과 민주노총을 연결지었다.

1일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국회에서 주최한 ‘국정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란 토론회에서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의 발제문을 보면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 빅카인즈 기준으로 지난달 9일부터 29일까지 간첩단 수사 관련 보도는 종합일간지의 보도량이 가장 많고, 조선일보가 64건으로 가장 많았다. 빅카인즈는 주요 언론사 54개를 언론보도를 분석할 수 있다.

조선일보 보도 중에서 8건은 <7NEWS>라는 주요뉴스를 간단하게 줄여서 소개해주는 형식의 일종의 큐레이션 보도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56건으로 타사보다 보도량이 많다(기사 요약, 타사 보도 소개, 기사 큐레이션 보도는 타사 보도도 포함되어 있음). 다음으로 세계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순으로 보도량이 많았다.

▲ 1월9일부터 29일까지 간첩수사 관련 보도량. 자료=김언경 발제문
▲ 1월9일부터 29일까지 간첩수사 관련 보도량. 자료=김언경 발제문

 

김 소장은 최근 보도를 두고 “언론의 간첩단 수사중계 사건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여론전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20여일간 사설이 31건인데 제목만 모아서 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만큼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이 민주노총을 간첩조직처럼 규정하거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국정원 등 방첩당국의 주장을 담은 단독보도가 많은 것도 지적했다. 김 소장은 “국정원에서 흘린 정보를 누가 더 빨리 받았느냐를 자랑하는 식의 보도를 단독으로 강조해 보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단독보도는 총 25건이었는데 조선일보 8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각 6건, 국민일보 3건,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이 각 1건씩이었다”고 했다. 

▲ 1월9일부터 29일 사이 간첩수사 관련 사설 제목 모음. 자료=김언경 발제문
▲ 1월9일부터 29일 사이 간첩수사 관련 사설 제목 모음. 자료=김언경 발제문
▲ 1월9일부터 29일 사이 간첩수사 관련 단독보도 제목. 자료=김언경 발제문
▲ 1월9일부터 29일 사이 간첩수사 관련 단독보도 제목. 자료=김언경 발제문

 

이에 김 소장은 “전형적인 수사기관발 일방보도에 수사기관의 의심까지 그대로 중계하는데 거의 모든 보도는 ‘방첩당국이 수사 중이다’, ‘방첩당국이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며 “출처가 명백한 것은 압수수색 영장인데 그것도 방첩당국의 일방 판단이 담긴 문건이니 상식적으로 추가 취재를 할 필요가 있지만 보도에서 생략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보도제목 중 직접 인용 즉 큰따옴표가 있는 보도만 보면 187건인데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105건”이라며 “공안정국 조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민주노총 압수수색 당일날 나온 (민주노총 측) 거친 목소리들이 제목으로 뽑힌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8일 압수수색 당시 국정원 등은 매트리스와 사다리차 등 장비를 동원했고 국정원 50여명 등 병력 700여명이 나섰다. 압수수색 대상이 1명 간부의 사무공간인데 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력과 장비가 동원된 것이다. 김 소장은 “민주노총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하다”며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이 압수수색을 막았다는 프레임으로 거친 발언을 하나하나 보도를 하며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보도가 많았지만 무리한 압수수색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당하는 장면을 구경거리로 보여주는 보도가 많지 않았나 싶다”며 “하루에 하나씩 공개되는 내용의 자극적인 간첩드라마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18일 국정원의 대대적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언론보도는 ‘민주노총 간부도 북한 공작원 접선해서 민주노총에서 활동했으니 민주노총의 반정부투쟁, 반미투쟁 등은 간첩 활동의 결과’라는 수준으로 비약했다”고 했다. 

▲ 국가정보원. 사진=국정원 페이스북
▲ 국가정보원. 사진=국정원 페이스북

 

한 예로 문화일보는 <민노총 간부가 ‘총책’ 정황…反정부투쟁 배후에 北지령 있었나>란 18일자 기사에서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규명 정도에 따라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를 이용한 윤석열 정부 비판, 반미 여론 조성 등으로 반정부 활동을 사주한 북한은 그동안 뿌리 깊게 한국의 각종 단체에 침투해온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김 소장은 지난해 12월 한국일보의 <“국정원장 혼자 다 하는 구조…통제·감시 강화해야”>란 기사를 추천했다. 최근 언론보도의 논조대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것이 문제라면 최근 3년간 이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다각도로 짚었어야 하는데 실제 관련 보도는 많지 않았다는 게 김 소장의 지적이다. 

▲ 지난해 12월16일 한국일보 기사
▲ 지난해 12월16일 한국일보 기사

 

김 소장은 “대공수사권이 경찰에 있어도 국정원에 있어도 신뢰하기 어렵고 우려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언론이 두 기관의 조직 보위 차원에서 하는 주장, 정치적 고려에 기반한 주장만을 받아쓰기해서 보도하기 보다는 더욱 면밀하게 대공수사권을 둘러싼 고민을 던지고 톺아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일보 보도는 좌담 형태로 국정원 개혁이 이뤄졌던 과정, 개혁과정에서 여러 고민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보도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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