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관이 통신 가입자의 개인 정보(통신자료)를 취득할 때 가입 당사자에게 사전에 알리도록 법적으로 규정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관련 법안들에 사전 통지 부분이 빠진 경우가 많다는 우려다.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심사 중인 통신자료 제공 관련 개정안에 27일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통신자료 제공 문제는 지난 2016년 수사 기관과 국가정보원의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등 민간인 사찰 논란,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사찰 논란 등을 계기로 불거졌다. 그간 시민단체, 학회 등은 통신 사업자가 검찰, 법원 또는 수사관서의 장에게 통신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의 위헌성을 판단해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왔다.

통신자료는 통신 가입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또는 해지일 등을 의미한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법원, 검사, 수사관서 장 등이 재판, 수사, 형 집행,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 등을 목적으로 통신자료를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가 이를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정보 관련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개인정보 관련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헌재는 지난해 7월 통신자료 취득 자체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지만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통신자료 정보 주체인 이용자에게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이 사전에 고지되거나 이후 통지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가 자신의 기본권 제한 사실을 알 수 없고, 그 정당성을 다툴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인권연구소는 의견서를 통해 “현재 국회 과방위에서 검토 중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들의 경우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안을 제외하고는 법원 허가나 사전 통제 장치를 다루고 있지 않다”며 “통신자료 제공 사실의 통지에 대한 규정만이 도입된다면 과도한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통제 효과가 미미할 뿐더러 범죄와 무관하게 통지를 받게 될 국민들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처럼 범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통신자료가 광범위하게 제공되는 현실 속에서 사후 통제 장치인 ‘통지’ 제도만이 도입된다면 언론인과 정치인 등에 대한 사찰 논란이 불거져 온 정보·수사기관의 오남용 관행을 근절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며 “무엇보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자신의 통신자료가 정보·수사기관에 제공됐다는 사실을 통지 받는 국민 입장에서는 큰 혼란과 충격에 빠지거나 사회 생활 위축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법·제도는 통신자료 제공 남용을 막기에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2018년 유럽인권재판소는 국내 통신자료와 유사한 정보가 제공되는 ‘커뮤니케이션 데이터’ 보호를 강화하라고 밝혔다. 이후 영국 정부와 의회는 정보·수사 기관 등이 커뮤니케이션 데이터 제공을 요청하려면 원칙적으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 또는 명령을 갖추도록 했다는 것이다.

우리 국가인권위는 2016년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 기관 등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현 송두한 인권위원장 역시 지난해 1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통신자료 제공 절차는 단지 ‘재판, 수사 등을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필요하다면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해 허용 요건이 너무 광범위하다”며 관련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연구소는 “통신자료 제공 제도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후적 통지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주민등록번호 등 통신사실확인 자료보다 그 민감성이나 중요성이 낮지 않은 통신자료가 오래 전 전기통신사업법에 규정됐다는 이유로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된 통신사실확인 자료의 법원 허가 제도보다 낮은 보호를 받아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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